brunch

꽃 가루

by 회색달

2년 전 여름, 지방 출장이 잡혀 한 달간 을 비워야했다. 평일에 급한 일만 정리하고 주말마다 돌아오기로 했건만 주말에도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니 그럴 새가 없었다.


처음 약속한 기간보다 보름 정도 길어졌다. 집이 걱정됐다. 혼자 지내는 집이라 창문도 꼭꼭 잠그고 온 것이 문제였다. 근처 사는 동생에게 가끔 들러 환기해 달라 했건만 워낙 덜렁대는 성격이라 그걸 까먹었단다. 전화로 몇 번 부탁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한 번도 않갔다.


일을 마치고 곧장 집으로 운전했다. 네 시간 넘도록 휴게소 한번 쉬지 않았다. 베란다에 내어놓은 화분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작년 아파트로 이사할 때 선물 받은 ‘몬스테라’와 ‘테이블 야자’, ‘금전수’, ‘아이비’ 였다. 관리도 쉽고 워낙 생명력이 강하다고 해 특별히 신경 쓸 거리가 없었다. 한 달에 두 번 정도 물 주고 영양제를 사다가 꽂아두기만 하면 됐기에 편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거의 버려두다시피 놔뒀으니 ‘햇볕에 타지는 않았을까?’ ‘물을 주지 않아 시들지는 않았을까?’ 걱정됐다.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었다. 사람 살지 않는 집 냄새가 났다. 화분을 살피기 위해 베란다로 갔다. 아니나 다를까, 다섯 개중 한 개는 잎이 진한 갈색으로 변해 있었고, 나머지도 상항은 비슷해 보였다. 하나씩 들어 화장실로 날랐다. 샤워기로 듬뿍 물을 줬다. 마음이 무거웠다. 말도 못 하는 식물이었지만 내 잘못 때문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쓰였다. 가망 없어 보이는 건 흙을 정리해 신문지에 쌓아 종량제 봉투에 담았다.


그 뒤로 남은 화분 중에서도 세 개 역시 정리해야 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건 테이블 야자 하나. 상대적으로 크기가 큰 덕분이었을까 처음 시들했지만 금세 살아나 원래 모습을 찾았다.


작년 봄의 일이다. 하나 남은 화분을 꾸밀 목적으로 자갈 몇 개를 깔아놓을 생각에 흙을 조금 고르는데 처음 보는 새싹이 하나 보였다, 저번 물 주기 때까지만 하더라도 없었으니 얼마 안 됐다. 아파트라고 하지만 층수가 낮아 가끔 바람 불면 조경 나뭇잎이 날아오곤 했는데 그중 하나인 듯했다. 마침 꽃가루가 한 참 날리던 때였으니까. 창문을 아무리 잘 닫아도 내가 알지 못하는 틈이 있는지 며칠 지나지 않아 베란다는 가루가 날릴 정도였다. 마침 집에 놀러 온 후배 일행 중 한 명이 그걸 봤다. 평소 ‘나중에 작은 화원 운영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던 후배였다. 생명공학을 전공해 졸업 후 연구원으로 관련 일을 해보니, 적성과는 맞지 않아 좋아하는 일을 찾다 재배 관련 직장에서 막 일하던 차였다.


“종종 심어둔 화분에서 다른 종이 같이 피기도 합니다. 처음 분양할 때 화분 흙 안에 있던 씨앗이 뒤늦게 발화한 것일 수도 있고요”


신기했다. 어디서 날아온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함께 있었던 것인지는 몰라도 긴 줄기 사이 키 낮은 얼굴 하나가 보이니 반갑기까지 했다.


이런 일이 또 있을까 해서 인터넷으로 내용을 검색해봤다. 흔치는 않아도 비슷한 경험이 많았다. 다들 같은 반응이었다. 신기함과 반가움 더 관심을 가져보겠다는 다짐까지.


직장을 옮기는 바람에 집을 이사했었다. 힘든 시기였다. 마음처럼 되는 일이 얼마나 있겠냐만 유독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우울증세도 생겨 불면증까지 있었다. 처방해준 약을 먹고 기절하다시피 침대에 누운 날이 많았다.


조금씩 마음이 정리되기 시작한 건 조금씩 집에 화분이 하나둘 생겨나고부터다. 내가 관심 가져주지 않으면 안 됐다. 주기적으로 환기도 시켜줘야 했다. 덕분에 부지런해야 했다. ‘반려식물’이라는 말이 왜 생겨났는지 깨달았다.


하루에 한 번 화분을 돌려줘야 한다고 들었다. 그래야 골고루 빛을 잘 받는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키 작은 얼굴은 몸을 흔들어 춤을 췄다. ‘피식’ 웃음이 났다.


아무리 추운 겨울 일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봄이 온다. 언제 그랬냐는 듯 생명은 다시 핀다. 두껍게 얼어있던 강물도 녹는다. 무엇도 영원하지 않다는 말이다. 힘든 일도 버텨내면 웃을 날이 온다. 어떻게 알겠는가, 또 어디서 이런 행운 같은 일을 겪을지. 웃자. 죽음과 사투 벌이다 떠난 빈 화분 앞에서 나는 살아 있지 않은가. 화분을 몇 개 더 들여야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