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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을 위한 칭찬

by 회색달

서른 중반에는 일주일에 몇 번이고 집 근처 서점에 들렀다. 지하에 마트가 있었던 덕분이기도 했다. 비닐 백을 오른 손목에 걸고 계단 몇 개를 올라가면 입구에서부터 책 냄새가 가득 났다. 이곳에 얼마나 많은 책이 있는지 마음먹고 세본다면 분명 얼마 안 가 포기할 만큼 많았다.


수필 분야에 종일 머무르다 점원의 눈치에 못 이긴 척 방금까지 읽고 있던 책을 내려놓고는 제일 마지막에 읽으려 아껴둔 책을 골라 계산한 적 많았다.

아직도 책이 나온다니. 요즘 세상에 누가 종이책을 쓰나 했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쉽게 읽을 수 있었으니까. 가격도 훨씬 저렴했다. 물론 평생 소장도 가능했으니 자기만의 도서관을 인터넷 세상에 만들 수 있는 장점도 있었다. 그 외에도 어디서나 다시 꺼내어 읽을 수 있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전자책의 장점을 더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 그만 써야겠다.


고백하자면 나 역시 작가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집에 쌓아놓은 책만 해도 300권이 넘는다. 처음에는 책에 번호를 써놓다가 포기했다. 얼마나 많이 읽는지 내가 책을 정말 좋아하는지 궁금했다. 몇 년 동안 직접 구매하고, 여기저기 선물 받고, 서평을 청탁받아 읽다 보니 그사이 이사를 몇 번 하면서 비워도 금방 쌓였다. 그렇대도 모든 책의 구석을 읽은 건 아니다. 오로지 쓰기 위해 읽은 적도 많다. 그게 가장 큰 문제인가 하면 이 정도라도 읽지 않으면 쓸 힘이 부족하다 보니 이렇게라도 읽어야 했다. 읽지 않는다는 건 말하기를 배우기 전 듣기를 하지 않는 것과 같았으니까. 읽기와 쓰기, 어느 쪽이든 반복하지 않으면 능력은 금방 퇴화를 향할 테니까. 이 당연한 사실을 오랜 시간 잊고 있었다. 쓰는 일 자체가 힘들고 고독과 싸우는 일이니 금방 포기했다. 쓰지 않으니 읽을 필요도 없었다. 아마 뜻밖의 경험이 없었더라면 지금도 나는 책을 읽고 쓰는 삶을 포기하고 지냈을 터다


24년 7월 공저 출간 제의를 받았다. 네 편의 글을 써달라는 주문에 내심 인정받는 기분이었다. 그동안 마음속에만 묵혀둔 먼지를 털어낼 기회였으니까. 잘하건 못하건 신경 쓰지 않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살이 이 킬로 정도 쪘고, 허리디스크가 재발하는 바람에 물리치료와 침을 몇 번이나 맞았다. 퇴근 후에도 졸린 눈을 비벼 가며 몇 번이나 퇴고했다. 그런데도 막상 출간하고 오탈자가 보였을 땐 ‘책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주제는 정해 졌으나 내 할 말은 정하지 못했다. 당최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했다. 애꿎은 노트북 화면만 바라보다 그대로 엎어져 잠든 날도 있었다. 네몇 편이었지만, 나 하나 때문에 다른 공저 작가까지 피해 볼까 봐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안 되겠다 싶어 우선 읽었다.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다. 공저 장르는 수필이었지만 실력이 부족하니 도움 될까 다른 장르도 도서관에서 빌려와 읽었다. 피곤했다. 힘든 시간이었다. 그런데도 예전의 내 모습을 찾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머릿속 떠오르는 생각 하나를 옮겨 적었던 모든 순간이 있었지 않았던가.

생각은 자연히 나의 일기로 이어졌다. <안네의 일기>, <쓰지 않으면 사라질 것들>과 같은 유명 저자의 삶은 아니었지만, 나에게도 그런 날이 많았지 않은가. ‘이만하면, 나도 잘하고 있지 않을까?’의 대답을 듣고 싶은 그런 날.


의자를 바짝 당겨 앉았다. 마우스 커서가 깜박이지 않을 때까지 쉬지 않고 나만의 일기를 써 내려갔다. 금방이라도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말과 달리 글은 눈앞에서 사라지는 법이 없다. 영원하다. 자꾸만 부족해 보이는 글에 도돌이표를 반복했다. 인정하기로 했다. ‘나는 부족하다’

글쓰기로 처음 칭찬받은 날이 생각났다. 초등학교 시절 담임선생님의 ‘참 잘했어요’ 도장 하나 받으면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시를 쓴 적도 있었다. 몇 줄 이상을 써오라는 숙제에 나름의 꾀였다. 단어 몇 개에 줄을 바꿔 쓰면 책상 앞에 앉아 있어야 하는 괴로움은 금방 해결됐다. 물론 이조차도 얼마 못 갔다. 시 쓰기는 금지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었다. 글을 써야 하는 내가, 꼼수를 부렸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니 창피하지만 동시에 지금도 쓰고 있는 내가 신기할 뿐이다.


아쉽게도 그때의 일기는 세상에 없다. 서른한 살에 모두 세 절기에 갈아 버렸다. 당시에는 삶을 포기할 생각으로 모든 걸 정리하던 시기였다. 힘들었고 내 편 하나 없다고 원망했다. 더 이상의 추억팔이는 하고 싶지 않았다.


구태여 그날의 일기, 기록을 억지로 떠올리려는 이유는 잘 버텨왔기 때문이다. 겪어보니 어른의 칭찬은 ‘참 잘했어요’가 아니었다. ‘고행했다’라는 말 한마디였다. 아직도 내 글은 먼지가 득이다. 노트북 키보드로 열심히 털어내는데도 손바닥으로 한번 훑으면 또 까맣다. 그래서 좋다. 계속 쓸 수 있지 않은가. 깨끗하면 쓸 수 있는 소제도 없을 테니까.


오늘의 기록이 곧 나만의 역사 한 페이지다. 사소하다 못해 재미조차 느끼지 못할 수도 있는 어른의 일기지만 오늘의 나를 증명하며 역사를 남긴다는 생각뿐이다. 내일도, 그다음의 내일도 나는 계속 쓰고 있을 터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해 길 위에서 방황하고 있는 나를 붙잡아 준 건 순간마다 남겨둔 일기였다.

어른이 되니 잘하고 싶은 마음 더 잘 버티고 싶다. 어른의 칭찬은 잘하고 못하고 가 아니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버텨내는 모든 과정 그 자체니까. 오랜 나의 기록이 오늘의 나를 칭찬했다. ‘참 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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