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몰라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잘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남들 가는 방향대로 따라가다 중간에 포기한 적 많았다. 어렵다는 자격증 도전했다가 포기한 일, 전국 여행이 유행이라 SNS에 올라오는 맛집 투어, 여행 장소를 찾아다닌 일 등등.
직장을 옮기는 바람에 이사했다. 일이 많았다. 몸을 움직이는 일을 하다가 책상 앞에 앉아 모니터와 오랜 시간 붙어 있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바다에서 즐기던 스쿠버 다이빙도 접어야 했다.
제일 좋아하는 일이라 생각했다. 직장 다니면서 여유 시간에 일을 할 수도 있어 그동안 내가 꿈꾸던 ‘좋아하는 일’에 가장 가까웠다. 환경이 바뀌고 당장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하다 보니 그렇게 좋아하던 일도 조금씩 마음에서 지워졌다. 마음껏 하지 못하니 다시 이직을 생각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지도 못하는데 나는 앞으로 행복할 수 있을까?’
우습게 들리겠지만 바다에서 실컷 보낸 시간보다 지금이 더 만족스럽다. 좋아하는 일과 해야 하는 일, 싫어하는 일까지 조금씩 조화를 이룬 삶이다. 좋아하는 일만 한다고 해서 평생 행복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쪽도 치우치지 않은 지금 순간이 제일 좋다.
‘돈을 많이 버는 일’을 좋아했다. 친한 후배가 차린 실내장식 업체에 들러 술 한잔할 때마다 ‘오늘은 얼마를 벌었다느니’ ‘다음 달에는 몇천만 원의 작업을 진행한다.’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신기했다. 비교됐다. 나도 일을 배우고 싶었다. 돈을 많이 벌어 비싼 외제 차도 운전하고 싶었다.
그 마음 접게 된 계기가 있다. 고생하는 일이다. 사람을 만나 접대도 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늦은 시간까지 술은 기본이다.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을 갈아 넣고 있다’라는 말을 들었을 땐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라고 물은 적 있다. 후배의 대답이 당찼다.
“돈이 좋으니까.”
그의 사정을 알고 있다.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았다. 스물부터 이일, 저 일 다 했다. 나보다 다섯 살이나 어리지만 한 업체의 대표가 비결이었다.
후배 나이 서른다섯 살이었다. 자고 있는데 갑자기 몸에 열이 올라 응급실을 찾았더니 큰 병원으로 가보란다. 다음 병원에서는 궤양이라고 했다. 병은 나이를 봐주지 않는다. 자기 말만 한다. 때가 없다. 다행히 후배는 오랜 시간 치료 끝에 건강을 찾았지만 일하지 못하는 동안 수익이 없어 모아놓은 돈으로 근근이 생활해야 했다.
지금도 나아지지는 않았지만, 부모님과 살 땐 형편이 더 어려웠다. 번번이 실패한 사업에 미련을 가진 가장의 뒷모습을 본 사람은 돈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안다. 그래서일까 무작정 돈을 벌고 싶었다. 어른이 되기만 하면 집에서 당장 나가고 싶었다.
돈을 많이 벌기만 하면 좋을 줄 알았다.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만 하며 잘 사는 줄 알았다. 행복이라고 착각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었다. 그만큼 미친 듯이 반복해야 하는 노력이 필요했고, 어떤 곳에서는 재능이, 위험이 뒤따랐다.
후배의 소식뿐만 아니라, 지인 중 몇몇 역시 사업하느라 건강 상한 경우를 많이 봤다. 꼭 술이 문제는 아니었겠지만, 그만큼의 돈을 벌 수 있다는 건 무언가를 내어놓아야만 하는 교환법칙을 알 수 있었다.
돈을 많이 버는 일이 좋아하는 일인 줄 알았지만, 뒤늦게 깨달았다. ‘건강과 자유를 포기하면서까지 돈을 쫓고 싶지는 않아’.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어느 정도는 잘 못 하는 일과 해야만 하는 일, 싫어하지만 조금은 양보해서라도 꼭 해야 하는 일을 미루지 말아야 하는 법이다.
지금은 글쓰기에 빠져 있다 보니 어떻게든 회사 일을 빨리 마무리하고 퇴근해 노트북 앞에 앉는다. 좋아하는 일은 어떤 방해가 있더라도 반복할 수밖에 없다. 조금 더 노력하는 과정에서 삶의 보람도 오른다.
많은 돈이 아니라, 좋아하는 일의 반복이 삶을 완성한 셈이었다.
그러니 에세이스트라는 부케를 완성하기 위해 밤잠을 미루어 가며 쓸 수밖에.
슈베르트의 교향곡 8번은 미완성 교향곡이라고도 한다. 이유가 기존 악보의 구성과 비교하자면 무언가 한 부분이 부족해 보여서란다. 그 외에도 다양한 근거가 있다지만, 정작 곡의 주인은 세상에 없으니 그 진실을 알 길은 없다. 오직 무덤 속 슈베르트만이 안다.
천재 작곡가는 악보에 음을 그려 넣었다. 천재 작가는 아무것도 없는 흰 여백에 글을 쓴다. 이쯤 되니 삶은 하나의 악보를 완성하기 위한 노력 이다. 마치 하나의 교향곡을 위한 천재 작곡가의 작업 말이다.
꼭 삶을 누군가의 인정을 받아서, 돈을 많이 벌어서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일 하며 살고 싶다. 적당히 싫어하는 일도 섞을 수 있다면 조금의 노력에도 더 빛이 날테니까.
나에게 천재의 IQ는 없지만, 시간만큼은 그만큼 가지고 있다. 계속해서 써봐야겠다. 비록 오늘의 마침표가 어색할지라도 슈베르트의 곡 역시 미완성이라 더 유명하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