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남쪽 지방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사는 곳보다 평균 기온이 몇 도는 낮아 얇은 긴 팔 하나 입어도 될 정도였다. 목적지까지 운전 중 잠시 나른함을 쫓을 겸 길옆으로 차를 대고는 잠시 걸었다.
아직은 때가 아닌데도, 길 주변 해가 잘 드는 곳에는 듬성듬성 푸르스름함이 보였다. 성격이 급했다. 봄이 올 기미는 없는데 벌써 마중 준비라니.
양팔을 벌려 기지개를 켰다. 차로 돌아와 운전석에 앉았다. 스마트폰을 열어 유튜브 창에 ‘봄과 어울리는 가사 없는 음악’을 검색했다. 대부분 교향곡이었다. 베토벤, 모차르트, 슈베르트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음악의 천재들. 영어로 소개되어 있었는데 그중 알 만한 단어 몇 개를 알아봤다. ‘spring’ ‘fluid’ ‘dynamic’.
봄은 기온이 오르는 것에서 넘어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계절이다. 유동적이고, 역동적인 움직임이 곧 봄의 모습이다.
유튜브에서 제공하는 알고리즘에 이끌려 빠져나오지 못하고 스마트폰 액정을 스크롤하고 있는데, 이번엔 익숙한 노래 제목을 발견했다. ‘꽃피는 봄이 오면’이다.
알만한 사람은 안다. 대한민국 여자 가수 중에서 노래 잘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BMK’가 불렀다. 회식 후 노래방에서 몇 번 따라 부르려고 고개까지 젖혀가던 모습이 생각났다. 물론 얼마 못 가 포기했지만.
그만큼 자주 들었다. 가수의 얼굴을, 가사를 제대로 알지 못해도 BMK의 목소리로 노래 몇 소절만 들으면 졸음이 달아날 정도였다.
자꾸 날 꾸짖고 날 탓하고
또 그래도 난 너를 못 잊어
다시 돌아올까
네가 내 곁으로 올까 믿을 수가 없는데
믿어주면 우린 너무 사랑한
지난날처럼 사랑하게 될까
그때 그 맘과 똑같을까
계절처럼 돌고 돌아 다시 꽃 피는 봄이 오면
-꽃피는 봄이 오면 BMK
서정적인 가사도 마음에 든다. 이별을 겪은 뒤 후회하고 그리워하지만, 겨울을 이겨낸 봄이 꽃을 피워내듯 연인과 나눈 사랑을 찬란한 봄으로 기억하겠다는 내용의 가사였다.
힘을 조절해 가며 노래 부르는 가수를 보자 나도 모르게 조금씩 흥얼거렸다. 가사를 음미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오지 않은 봄 대신 마음속 자신의 봄을 마중 나갈 수 있다.
봄은 새로운 시작이다. 동시에 희망을 의미한다. 그런 이유로 인터넷 검색창에 ‘봄’을 검색하면 관련 검색어로 ‘도전’ ‘출발’ ‘힘’ 등과 같은 역동적인 연관 검색어가 등장한다.
누군가는 자기 삶의 봄은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고 하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 봄이 찾아왔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완전히 느끼기도 전에 바람에 날려 갔을 수도 있고, 지금도 가까운 곳에서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 알아차리지 못한 건 오로지 자신의 잘못 일뿐, 계절도 삶도 아무 잘못 없다.
시동을 걸었다. 아직 남아 있는 졸음을 쫓을 생각으로 창문을 내렸다. 봄의 입김이 느껴졌다. 끝내 마음속 남아 있던 겨울 먼지 하나까지 날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이번 봄은 이전보다 빨리 오리라는 걸 확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