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없건마는

35.마음공부, 초콜릿 하나면 충분해

by 회색달

이름처럼 늘 강해지기를 위해 노력을 멈추지 않는 강혜진 작가를 알게 됐다. 늘 에너지 넘친다. 초등학교 담임, 두 아이의 엄마, 사랑하는 아내의 역할하면서도 매일 글쓰기를 빼놓지 않는다.


25년도 1월 사석에서 만났을 땐, 한강 작가에게 ‘1호’ 타이틀을 빼앗겨 아쉽다는 농담을 했다. B 작가가 대답했다. ‘대한민국 1호가 아니면 어떻습니까, 2호, 3호, 그것도 아니면 죽기 전 이루고 싶은 꿈으로 이미 정해두었으니 이미 제 마음엔 노벨상 수상자입니다’. 그 말을 듣는데 입꼬리가 올라갔다.


책을 출간하게 된 이유와 비결이 궁금했다. 앞서 공저에도 소개가 실려 있었지만 직접 듣고 싶어 2월 2일 Zoom에서 열리는 ‘강혜진 작가의 마음공부’를 수강하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강해지기를 꿈꾸는 강혜진 작가입니다.”

작가의 첫인사를 마치자 화면 속에는 50명의 접속자가 비쳤다. 미국 시애틀에서도 접속했다. 대단한 일이다. 배움은 국경이 없었다.


‘마음공부’ 핵심은 원 불교의 교리에서 시작됐다고 했다. 가족과 직장에서 겪는 불만과 불안, 초조로 인해 생기는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시작한 일이 이제는 지구 반대편에서도 그녀의 강의를 들을 정도로 유익했다.

강의 핵심은 세 가지였다.


첫 번째. 사람 마음은 바람 불지 않는 연못의 경계에 놓여 있다고 했다. 그러다 돌멩이 하나가 날아와 물이 튀고 이때 크고 작은 파장이 만들어지는데 때 물 밖으로 튕겨 나가지 않도록 힘을 길러야 한다고 했다.


마음이 흔들리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정작 나는 실천하지 못했다

지난해 봄, 직장 내 부서가 반강제로 옮겨지는 일이 있었다. 순환으로 어쩔 수 없었다지만 ‘왜 하필이면 나야?’라는 불평, 불만이 먼저 튀어나왔다. 다행히 곁에는 사람이 없었다.


하루 동안 쉬지 않고 울리는 전화를 받고, 행정서류 처리를 도맡아 하는 일이었다. 그 외에도 사람들과 대면하여 불편함을 들어주기까지 해야 했다. 시작하기도 전부터 막막했다. ‘내가 잘할 수 있었을까?’라는 의심까지 생겼다.


“아니, 왜 이렇게 불친절합니까?. 물어볼 수도 있는 내용 아닌가요?”

“하……. 네 죄송합니다. 그럼 다시 천천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됐습니다.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아침부터 감정 조절이 안 됐다. 5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차라리 이 사람의 전화를 받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했다. 심호흡 한번 했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통화를 끝마친 후였음에도 상대방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리는 듯 했다.


이전에도 몇 번 통화를 한 적 있었지만, 그때마다 끝이 좋지 않았다. 말끝마다 따지듯 쏘아붙이는데 무슨 말을 못 하게 했다. 이번엔 나도 맞불 작전을 놨다. ‘너도 당해봐 라였다’ 오히려 독이 됐다. 내 감정만 더 상했다. 상대방은 생각 없이 던진 돌멩이였는데, 내 마음만 자꾸 물 밖으로 밀려났다.

강혜진 작가 역시 이런 경험이 많다고 했다. 상대방에게 똑같이 쏘아붙였다가 도리어 나만 다친 것 같다며 억울함 잠 못 이룬 날도 많다고 했다.

더 이렇게 살 수 없다고 생각한 그녀는 ‘마음공부’가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마음을 밖으로 밀려나지 않을 수 있는지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두 번째. 내 마음 상태를 알아차리는 것이었다. 억지로 바꾸려고 노력할수록 억울함에 부글거리는 속을 감당할 수 없어 어딘가로 표출될 수 있는데, 자칫 가족과 지인에게 향할 수 있으니 그전에 자신의 마음 상태를 알아차려야 한다고 했다.


마음공부의 시작은 지금의 내 마음 상태를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물 밖 경계선까지 밀려 나왔으니, 다시 중심으로 가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보라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이런 일이다. 직장 동료와 통화에서 격양된 감정이 2차로 번져, 분노로 변질하지 않도록 지금의 내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었다.


내 감정을 몰라 답답한 적 많았다. 화를 낼 상황은 아닌데 괜한 화살을 상대방에게 던진 적도 있었다. 선배, 후배 가리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그 화살은 나에게 돌아왔다. 동료들에게 ‘불친절 동료’, ‘화를 잘 내는 사람’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호구’처럼 사람들의 요구를 무작정 들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억울했다.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이해해주지 않는 상대방을 원망했다.

‘마음의 상태’를 배우고 난 뒤 업무용 모니터 밑에 한 문장을 적은 종이를 붙여놨다. ‘내 경계선은 내가 만든다. 나의 감정의 무게는 절대 가볍지 않다’


세 번째. 경계 밖으로 밀려나 갈 것 같을 때마다 주문처럼 ‘없건마는’을 외치는 것이다. 강혜진 작가의 경우엔 학생들과 있었던 일을 예를 들었다. 지도하고 있는 학생 중 말을 듣지 않는 ‘문제아’가 있다고 했다. 평소 학교 수업도 잘 듣지 않고 반 친구들과도 다툼이 잦다고 했다. 급기야 수업 중 선생님에게도 대드는 바람에 어찌할 줄 몰라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순간 마음공부의 문장을 떠올렸다. ‘없건마는!’


세상에 이미 정해진 모습은 없는데도, 마치 그 아이는 처음부터 ‘그런 아이’로 바라봤기 때문에, 문제 있는 아이로 오해한 것일 수도 있었다고 했다. 편견으로 상대를 바라보지 않는 연습을 해보라는 말이었다.


뒤늦게 교육 신청서에 자신이 신청하지 못했다며 찾아온 J가 있었다. 갑갑했다. 욕 한 바가지하고 싶었다. ‘이미 끝났다고, 내가 무슨 힘이 있냐’하고 쫓아버리고 싶었다.


사실 J는 평소에도 행동이 느리고 사람들과 대화를 잘하지 못할 정도로 관계가 좋지 못했다. 나 또한 그를 볼 때마다 답답함을 느끼던 차였다. ‘차라리 다른 일을 알아보지’ 하며 혼잣말로 무시한 적도 있었다.


원망이 쌓이면 귀가 닫히고, 눈은 감긴다. 가뜩이나 다른 일로 바쁜데, J의 문제까지 생기니 감정 조절하기 힘들었다. 그때 ‘없건마는’이 생각났다. ‘그래. 이 사람이 일부러 그랬겠어? 처음부터 그럴 의도는 없었을 거야. 내가 지금 바쁘다 보니 여유가 없는 상태여서 그렇게 보이는 걸 거야.’


거짓말처럼 마음이 가라앉았다. 분노의 불씨는 원망이었다. 씨앗을 만들지 않으니 화가 나질 않았다. 책상 왼쪽 서랍에서 초콜릿 한 개를 꺼내어 건네며 말했다. 저번 달부터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선물로 나누어 주기 위해 사비로 마련한 간식이었다. 나는 단 음식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남을 위해 준비해 놓았다고 하니 스스로 뿌듯함을 느끼고 있던 차였다. 기다리던 기회가 왔다. ‘아, 내가 진짜 바쁜데 J니까 해준다. 알지?’ J는 초콜릿 한 개를 받고는 자리에서 배시시 웃었다.

궁수의 힘과 부는 바람이 강할수록 활시위를 떠난 화살은 더 멀리, 강하게 날아가는 법이다. 감정 또한 오해와 편견이 쌓이면 격해지기 마련이다. 사람에게 날린 화살은 결국 다시 나에게 돌아오기 왔었다. 늘 감정 조절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내 마음을 알아차리기 연습하니 작은 돌멩이 하나에도 출렁거리던 삶이 단단해지고 있다.


<강인함의 힘>에는 반응과 대응의 정의가 나온다. 반응은 내 마음이 요란해졌는데 알아차리지 못하고 요란한 마음에 이끌려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대응은 내 마음의 요란함을 알아차리고 어떻게 할지 선택하는 것이다. 앞으로도 내 감정, 내 삶을 지키기 위해 마음을 선택하는 연습을 더 해봐야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