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자는 겁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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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색달


직장에서 중요한 회의와 행사가 있을 땐 밤늦도록 모니터 전원을 끄지 못한 날이 많다. 몇 번이고 점검을 반복했다. 미리 준비해야 하는 서류에 밑줄 긋고, 포스트잇을 활용해 놓친 부분을 정리하고, 그것도 모자라다 싶으면 처음부터 다시 반복했다.


조금이라도 더 꼼꼼했으면 했다. 다양한 분야의 일을 하다 보니 매일 마다 정리해야 하는 서류만 수 십 가지다. 순서를 기다리는 결재 문서는 뒤돌아 서면 또 쌓여있었다. 마치 함박눈이 내리는 한 겨울 빗자루를 들고 길을 쓰는 기분이랄까.


내년이면 자그마치 20년 차 다. 누구는 베테랑 소리들을 만한 시간일 테지만 나는 아직도 실수연발, 우당탕탕이다. 직장 상사와 동료에게 인정을 받기보다는 업무 실수를 줄이는 내가 되고 싶었다.


회전이 느린 머리는 이럴 때 더 속을 썩인다. 마음은 급한데 효율성이 떨어진다. 종종 동료들로부터 '융통성' '효율성' 없는 사람이라는 소리도 들었다.


그런 날이면 쓸다 지쳐 가만히 앉아있는 내 머리와 어깨, 등위로 눈이 가득 쌓였다. 퇴근해서도 해결하지 못한 서류 뭉치가 머릿속에 가득 찬 날이 많았다. 걱정, 근심이 가득하니 편하게 잠들리 만무했다. 술의 힘을 빌리기도 하고,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에 의존하기도 했다. 가만 보면 중독이었을 터다. 완벽주의자를 꿈꾸지만 그렇지 못한 인생초보의 완벽중독.


지금도 걱정하는 밤이 많지만, 그래도 열흘의 걱정 중에서 절반은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됐다.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길어지기 전에 잘라내는 법을 내가 택한 방법은 직접 대면해 보기다.


지금 나를 괴롭히는 생각의 조각들이 오늘 밤 잠 못 이루게 만들 만큼의 커다란가? 하는 구체적인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다.

걱정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좋겠네

딜라이 라마의 말이다.

그 외에도

해결할 수 있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고
해결할 수 없다면, 걱정은 쓸모가 없다.

라는 티베트 속담도 있다.


결국 늦은 밤까지 나를 괴롭히던 걱정의 이유는 완벽주의를 꿈꾸는 나의 헛된 노력 때문은 아니었을까.


실수를 용납하지 않으려는 태도보다 차라리 덜 완벽하고 부족한 만큼을 받아들여 성장할 수 있는 기회로 여겼다면 침대에서 뒤척이는 날이 조금이라도 줄지 않았을까. 그런 태도가 용기가 아닐까.


괜찮지 않지만 괜찮은 척하느라 또 밤을 뒤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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