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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진 Sep 25. 2019

나는 전 세계 상위 5% 부자다.

당신도 그러하다.

2018년 12월 25일, 6개월간의 교리 공부를 마치고 세례를 받았다. 엄마가 성당에 오래 다니시기도 했고 어느 책에선가 종교가 하나쯤은 있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교리 공부를 시작했다. 영적으로 대단한 뜻이 있다기보다는 마음의 안정을 찾고 싶어서 성당을 찾았던 것 같다. 그렇게 세례를 받고 미사를 드리던 어느 날, 우연히 주보 사이에 껴있던 해외선교 홍보지를 보게 되었다. 해외선교를 위한 후원금을 모금하는 내용이었는데 종교인이 됐으니 선행을 베풀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는지(ㅋㅋㅋ), 하얀 치아를 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는 아이들의 사진 때문인지 작은 돈이라도 후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날을 계기로 나는 생애 첫 정기후원을 시작하게 되었다. 한두 달 뿌듯함을 느꼈던 것도 잠시.. 매달 후원금이 이체됐다는 문자를 확인해서야 내가 후원 중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후원을 시작하던 초창기에는 기부금들이 정확히 어떤 곳에 쓰이는지 궁금했지만, 금액이 얼마 되지도 않았고 그런 궁금증은 '기부'와 '후원' 같은 단어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생각을 접기 일쑤였다. '좋은 의도'와 '계산적인? 생각'은 불협화음처럼 불편하게 느껴졌다. <냉정한 이타주의자>를 읽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직도 궁금한 것을 알지 못하는 찝찝한 기분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후원금도 매달 빠져나가는 카드값과 같은 의미로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다.  


당신이 가진 돈과 시간은 제한돼 있고 당신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다. 따라서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한다. 당신은 누구를 도울 것인가? (...) 당신의 기부 행위로 인한 잠재적 영향을 평가하려면 그 단체가 당신이 낸 돈으로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 알아야 한다. <냉정한 이타주의자>, p.52,53


윌리엄 맥어스킬의 책 <냉정한 이타주의자>를 읽고 있으면,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것도 방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어설프게 하면, '안 하는 것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감정에 호소하는 이야기에 현혹되어 제대로 된 피드백도 없는 단체에 기부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좋은 의도로 기부한 금액이 엉뚱한 곳에 쓰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예들 중 하나로 책 속에 등장하는 '플레이펌프'는 아이들이 놀 때 발생하는 힘을 이용해 마을 안으로 물을 공급하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2009년까지 남아프리카와 잠비아 등 곳곳에 1800대가 설치된 플레이펌프는 초기에 '뛰어난 혁신'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많은 유명 인사들에게 지원금을 받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비판적인 보고서들이 연이어 발표된다. 아이들이 플레이펌프를 놀이로 생각하기에는 힘이 많이 들어 금세 지치기 일쑤였고, 성인 여성들은 이를 품위 없고 모욕적인 일거리로 여겼다. 플레이펌프를 사용해 본 사람들 대다수가 이전의 수동펌프가 더 좋았다고 답했다. 플레이펌프는 수많은 수상과 실적을 내고 수백만 달러의 자금 지원을 받았지만, 그 누구도 플레이펌프의 실질적인 효과를 진지하게 검토해 보지는 않았던 것이다. 이처럼 좋은 의도가 항상 좋은 결과만을 만들어 내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후원과 봉사 등을 할 때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지 정확히 알아야 하고, 또한 한정된 금액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그들의 삶을 개선시킬 수 있는 방법인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작가는 이야기한다.  


적절한 피드백이 없는 상태에서는 당신의 이타적인 행위가 실제도 남한테 득이 되는지 실이 되는지 명확하게 알기 어렵다. <냉정한 이타주의자>, p.25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혜택을 주는지를 대략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독보적인 효과를 거두는 프로그램을 가려낼 수 있다. <냉정한 이타주의자>, p.60
미비한 변화가 아니라 가장 큰 변화를 만들어 낸다는 확신이 드는 기부처를 택해야 한다. <냉정한 이타주의자>, p.79


책을 읽고 용기를 내어 홍보물에 적혀 있던 번호로 전화를 걸어 그동안 궁금했던 내용에 대해 문의를 했다. 모금된 후원금이 해외선교를 위해 어떻게 사용되고 실질적으로 그 나라 사람들에게 어떤 도움을 주고 있는지, 혹시 그러한 내용을 후원한 사람들이 살펴볼 수 있는 웹페이지가 있는지 물었다. 혹시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지는 않을까 상당히 조심스러웠는데, 내 걱정과는 달리 전화받는 분께서 친절하게 설명해주셔서 감사했다. 주로 남수단이나 잠비아 지역으로 후원금이 전달되고 아이들의 급식, 우물 파기, 공부하는데 필요한 물품, 생활용품, 의약품 등을 구입하는데 사용된다고 했다. 이전에는 6개월에 한 번씩 정산을 해서 사이트에 게시했는데 현재는 그 일이 번거로워 1년에 한 번 정산한 내용을 업로드한다고 했다. 한국 화폐의 단위가 후원 지역에서는 어느 정도의 가치를 가지는지 여쭤보니, 한국 돈 3천 원이면 한 학생이 며칠씩 급식을 먹을 수 있는 금액이라고 했다.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 잔도 마실 수 없는 금액으로 남수단 아이들은 굶지 않고 밥을 먹을 수 있다니.. 그것도 며칠씩이나...! 놀라우면서도 기분이 이상했다. 알려주신 사이트도 검색해봤다. 후원금 결산현황에 대한 목록이 너무 포괄적이라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없어 아쉬움이 남았지만, 막연하게 좋은 곳에 쓰일 거라고 생각하며 후원금만 이체했던 이전과는 달리 어느 곳에, 어떻게 의미 있게 쓰이고 있는지 알게 되어 보람도 되고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꼈다. 남수단이나 잠비아가 아닌 대한민국에 태어나 그들을 작게나마 도울 수 있는 현실에 감사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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