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by Real J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제목만 보고는 라오스에 관한 여행기인 줄로만 알았다.

책을 조금씩 읽으면서 그게 아님을 깨달았다. 그래서 더 궁금해졌다. 제목이 왜 하필 라오스일까? 하고.


작가의 하나의 일화에서 비롯된 여행에 대한 생각이 담겨 있는 문장이었다. 라오스로 향하는 작가에게 베트남 사람이 물었던 질문이다.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이미 알고 있다면 시간과 노력을 들여 여행을 가진 않을 거라고 책에선 말한다. 공감할 수 있는 말인 것 같다. 어떠한 것에 아무런 정보가 없을 때야말로 더 정확히는 어떠한 것에 아무런 선입 견이 없을 때야말로 그것이 무엇인지 본인만의 해석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작가의 부지런 함에 감탄하면서 읽었다. 어떻게 이렇게 생생하게 묘사하며 많은 것들을 기억하고 기록하며 남겼을까 하고, 작가의 부지런하고도 섬세한 태도가 나에게 주는 힘은 상당했다.


각각의 여행지마다 시점 이동에 따른 생생한 묘사가 책을 읽으면서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가며 읽어 흥미롭게 읽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읽으면서 작가가 어떠한 것을 좋아하는지도 조금은 알 수 있었다. 누구나 자신이 관심이 있는 것에 눈이 가고 궁금증이 생기는데 이 책에서 작가의 여행기를 보면 작가가 고양이를 상당히 좋아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외에 달리기나 음식, 자연 그리고 음악까지 이것들은 작가의 각 여행지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고양이 얘기가 계속해서 나올 때마다 괜히 웃음이 나왔다. 내가 여행을 한다면 내가 평소에 좋아하던 음악이나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 가장 많지 않을까? 작가만의 여행 스타일이 담겨있어서 다 읽어갈 때쯤에는 괜히 고양이 얘기나 자연에 관한 얘기가 없으면 섭섭할 정도로 뭔지 모를 푸근함을 느꼈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어찌 보면 내가 지금 당연하게 여기는 모든 것들이 전부 선입견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보편적이고 알고 있었던, 아니 그렇게 믿고 있었던 것들을 깨고 내가 당연하게도 생각했던 것들이 당연한 게 아닐 수도 있겠구나. 내가 너무 좁은 세상만 보고 치우쳐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며 반성 아닌 반성도 했다. 이 책을 읽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내용 중에 작가가 '개념 설정'이라는 표현을 했다. 보스턴의 마라톤 코스를 달리며 느껴지는 특별한 정경을 '이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마라톤의 모습이다'라고 그 정경 속에서 하나의 명확한 결의가 느껴진다고 말한다.


어려운 말일 수 있지만 나는 우리가 무언가를 할 때에 우리 머릿속에 떠오르는 풍경이나 일종의 자신만의 설정해 놓은 이상적인 기준 같은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작가는 이 보스턴의 매력적인 정경과 어우러진 마라톤이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마라톤의 모습이라고 개념을 설정해 놓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 설정은 나의 일상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나는 시원한 바람이 불 때 자전거를 타는 것을 좋아하는데 자전거를 타고 싶다고 생각 이 들 때면 내가 가장 좋았던 자전거를 탈 때의 느낌과 그때의 분위기가 생생하게 떠오르곤 한다. 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면서 저녁에 걷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것 또한 가끔씩 그러고 싶을 때 가장 그 느낌이 좋았던 장면들이 떠오르곤 한다. 그래서 작가가 말하는 보스턴의 마라톤이 너무나도 궁금했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작가가 최고라고 꼽을 정도면 그 정경은 어느 정도로 아름다울까. 나도 보스턴을 가게 된다면 꼭 찰스 강의 강변 길을 달려 봐야지 하며 다짐했다.


책을 읽는 내내 작가의 아주 섬세한 감정들과 묘사가 좋으면서도 부러웠다. 같은 사물을 보고도 이렇게 관찰하는구나. 작가의 시각은 조금은 달랐다. 하나라도 대충 보는 느낌이 없었다. 뭔가 여유롭고 아주 찬찬히 이것저것 자세히 들여다보는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내가 이렇게도 무덤덤한 사람이었나 싶었다. 그러고 보니 내 일상은 전부 수동적인 것들로 가득한 것 같다. 바쁜 일상 속에서 무언가를 섬세히 들여다볼 여유가 없는 걸까. 아니면 해 본 적이 없어 방법을 모르는 걸까.


여행이란 내가 능동적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고 능동적으로 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 같기도 하다. 책에는 각 여행지마다 작가가 들여다 보고 여기에는 이러한 것이 있고 저기에는 저러한 게 있어하며 조곤조곤 작가만의 스타일을 담은 추천 집 같았다. 각 나라마다 그 나라만의 독특한 문화를 조금은 배우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슬란드는 독서를 즐기고 푸른 이끼와 온천이 많은 곳. 그리고 퍼핀이라는 새가 유명한데 그 퍼핀에 대한 설명까지 아주 자세히 실려있다. 퍼핀의 인생관부터 퍼핀이 식재료로 쓰이는 이야기까지. 아이슬란드만이 가진 특징이 세세하게 적혀 있는데 그러한 점을 생생하게 느낀 그대로 담겨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각 여행지마다 그 나라만의 독특한 힘이 느껴졌다. 작가가 한국에 온다면 어떠한 것을 보고 느끼며 책에 실을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이 책은 나에겐 바쁘게 사느라 잊고 있었던 모든 자연과 사물들에 대한 것들을 다시 찬찬히 돌아보게끔 하는 것이 가장 처음 든 느낌이었다. 딱히 바쁠 것도 없지만 뭐가 그리 바쁜지 도움이 되지 않으면 굳이 무언가를 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사람들에게 보란 듯이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글이었다. 책을 다 읽고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책의 앞부분에 나오는 보스턴의 여행기 중


"풍족한 물을 일상적으로 접하는 행위란 인간에게 중요한 의미가 아닐까."라는 부분이 있는데 가만히 물을 바라보고 있으면 무언가를 조금씩 잃어가는 느낌이 든다고 작가는 말한다.


솔직히 이 구절이 완벽하게 와닿지는 않는다. 가만히 물을 바라보고 있었던 적도 없었거나 기억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음악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 어떤 사정으로 인해 오랫동안 음악에서 멀어져 있을 때 느끼는 감정과 조금은 비슷할 것 같다고 말하는 작가의 글을 보고는 조금은 공감했다. 나는 음악을 무척 좋아하기도 하고 내 일상에선 빠지지 않는 존재 이기도 하다. 매일 음악을 듣다가 갑자기 음악을 못 듣게 되는 사정이 생긴다면 나의 일상의 일 부분을 잃어버린 느낌이 들 것 같기도 하다. 자신의 환경이 자신에게 끼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아주 크니까 그런 의미에서 작가가 말하는 느낌을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했다. 또 작가의 글 중에 너무나도 시적이고 섬세한 표현이 담긴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강은 하얀 햇살의 움직임을 선명하게, 때로는 흐릿하게 수면에 비춘다. 계절에 따라 마치 스위치를 누른 것처럼 바람의 방향이 바뀐다. 그 촉감과 냄새와 방향으로 우리는 계절의 추이가 새기는 눈금을 명확하게 느낄 수 있다. 나는 그런 실감 나는 흐름 속에서 나라는 존재가 자연이라는 거대한 모자이크의 한 조 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낀다. "라는 부분이 너무 마음에 든다. 이러한 비유를 할 수 있을까?


나는 이 부분이 내가 느낀 감정들을 작가가 대신 아주 멋지게 글로 표현해 주는 느낌이 들었다.

나라는 존재가 자연이라는 거대한 모자이크의 한 조각에 불과하다는 표현은 두고두고 생각이 날 것 같았다.


작가만의 철학이 담긴 여행기를 읽으면서 각 여행지에 대한 호기심과 나에 대한 반성을 동시에 느꼈다. 그리곤 나도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졌다. 여행이 주는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작가가 여행을 하며 쓴 글들을 읽으며 작가 본인의 삶을 대하는 태도를 조금은 엿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내 삶을 대하는 태도가 어떠한지 되돌아볼 수 있는 좋은 계기도 된 것 같다. 이 책은 단순한 여행기가 아닌 왜 여행을 떠나야 하는지에 대한 동기부여와 여행이라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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