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지용 지음 | 마인드빌딩 출판사
개인적으로 '물류'라고 하면 창고나 센터에 물건이나 자재를 저장하거나 보관하는 크고 작은 '공간'이 가장 먼저 그려진다. 그다음 전자상거래, 배송, 배달, 운송 등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는 다양한 '마켓 플레이스'와 '마켓 플레이어'를 꼽겠다. 또 물류의 뿌리와 밑바탕이 되는 유통, 제조, 교통, 에너지, 정보통신, 과학기술 등등 상호작용을 하는 '산업(군)'을 생각해볼 수 있겠다. 그리고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와 변이 바이러스 확산, 국가 간 무역분쟁과 수출 통제, 노사갈등에 따른 파업 등 천재(天災), 정치 경제, 사회문제가 발생하면 곧바로 물류 공급망에 리스크가 되어 겪게 되는 '물류대란物流大亂'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어라? 써놓고 보니까 '물류'가 이렇게 개인, 기업, 국가의 모든 경제활동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니 새삼스럽다. 결국, '물류'는 전자상거래에서 C2C, B2C, B2B, B2G, G2G 등뿐만 아니라 B2B2C를 뛰어넘어 여러 형태를 모두 아우르는 B2All의 'connector(연결장치)'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물류物流'는 '물적유통物的流通'의 줄임말이다. 특정한 재화(goods)나 용역(services)을 적절하게 이동, 위치시키는 행위를 뜻한다. 의미만 놓고 보면 보통의 사람은 물류창고나 물류센터가 가장 먼저 그려질 것이다. 그러나 '이동 = 운송'과 '위치 = 보관'과정에서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그 효용성을 극대화하고, 내재된 가치를 재창출하며, 시간 및 공간적 상황을 조사하여 전략을 설정하는 것'이라고 물류 전문가가 학문적, 경제적, 경영적인 관점에서 말하면 괜스레 가슴이 울렁거린다.
사실 내게 '물류'란 힘들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이십 대 중후반에 경험했던 상하차 아르바이트 때문이다. 웬만한 막노동은 양반으로 보일 수도 있는 정말 정말 힘든 노동이 상하차 아르바이트다. 지금도 모바일에서 택배 배송 위치를 확인할 때 물건이 00 터미널에 있다는 것을 보면 눈이 매우 시거나 허리가 마구 쑤시는 느낌을 가끔 받는다. 닦아도 닦아내도 눈에 땀이 흘러들어 가고 허리 한번 시원하게 펼 시간이 생기지 않을 만큼 고단했던 당시의 상하차 작업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이 로부터 십수 년이 지난 지금, 플랫폼 노동자이자 현직 물류 전문 콘텐츠 제작자의 시선으로 물류를 바라보고 쓴 책을 접할 기회가 생겼다. 물류 이론서나 교과서 수준의 책이었다면 관심 밖이었겠지만 글쓴이가 경험하고 마주한 '물류 속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점이 마음에 끌렸다. 그리고 이전과 다르게 물류는 현재의 나와도 연관성이 아주 조금 생겼기에 가이드북을 읽는다는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어쩌면 책을 통해 내 의식 속 자리 잡은 '물류' 이미지가 약간은 부드러워지고, 내가 앞으로 하고자 하는 일에 접목시킬 수 있는 인사이트까지 얻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기대감마저 들었다.
경제 경영서적을 볼 때 목차를 자세히 훑어보는 편이다. 특히 책 두께가 있을수록 목차를 빠르게 살피는데 목차가 책 내용의 가늠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관심 있는 부분만 골라서 읽을지 아니면 처음부터 정독을 할지 대부분 목차를 보고 판단하는 편이다.
책 <커넥터스>는 네 개의 큰 쳅터 '물류의 가치', '공간의 가치', '이동의 가치', '연결의 가치'와 그 안에 구직자 사이에서 인기 있는 다양한 기업의 이름이 들어있다. 물류에 관심이 없거나 상관없는 사람이라도 이 기업의 서비스를 이용해 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싶다. 살펴보면 이들 기업에 하나의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물류'다. 이들은 현재 '운송'과 '보관'을 넘어 물류 역량 강화를 위해 동종 및 이종간 융합과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고 있음이 목차에서 유추할 수 있다. 지금 바로, 물류 서비스 기업들의 전쟁터가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책 저자는 물류학을 전공하고 물류 전문기자, 책 제호와 같은 동명의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커넥터스>를 제작하는 크리에이터로서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온라인에서 물건을 팔고 있는 셀러, 자전거로 음식 배달을 하는 라이더다. 물론 전문 셀러나 라이더는 아니다. 셀러나 라이더 경험을 통해서 물류가 우리 일상생활과 무관하지 않음을 그가 제작한 콘텐츠 곳곳에 녹여내기 위함이다. 이는 저자가 물류를 바라보는 시선이 책 표지 중앙에 부제로 보이는 '물류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다'와 같음을 느끼게 한다.
목차를 확인하고 본문을 읽기 전, 각 쳅터 끝에 있는 '칼럼'을 먼저 읽었다. 저자가 책에서 다룰 여러 데이터와 사례를 딱딱하게 쓰지 않고 재미있고 풀어냈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 정도면 어느 한 쳅터, 어느 한 꼭지만 골라서 읽기엔 맥락을 놓치기 쉬울 것 같다. 300 페이지가 조금 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읽을 수밖에.
저자는 물류를 세 단어로 압축했다. 바로 '공간', '이동', 그리고 '연결'이다. 저자가 그간 쌓아온 물류에 관한 지식과 경험 속에서 얻은 인사이트가 각 키워드로 설득력 있게 풀어냈다.
나는 물류를 이렇게 정의했다. '물류란 가치사슬을 관통하는 재화의 흐름'이다. 물류의 목표는 파편화된 가치사슬을 흐르는 재화에서 비효율을 찾아 개선하고 전체 가치사슬의 효율을 만드는 것이다. 물류物流에서 '물物'을 뺀다면 더 넓은 해석이 가능하다. 가치사슬에는 재화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서비스도, 정보도, 돈도 있다. 서비스, 정보, 돈에도 비효율은 존재한다. 이 비효율을 찾아 개선하고 전체 가치사슬의 효율을 만드는 것 역시 중요하다. 그렇게 본다면 물류 아닌 산업도 물류의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다. 중요한 건 재화와 서비스, 정보, 돈 이 모든 것이 함께 결합해야 한다. _ p43
세상만사 모든 것의 비효율은 흐름의 불일치에서 나온다. 재화든, 서비스든, 돈이든, 정보든, 흘러야 할 것이 제대로 흐르지 않는다면 그곳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물류업계에서 그렇게 중요하다고 외치지만 맘처럼 안 되는 정보와 재화의 일치, '정물 일치'라는 목적지도 흐름의 불일치를 해소하고자 하는 데서 나온 구호 중 하나다. _ p44
이 책의 모든 쳅터를 관통하는 저자의 시각이자 '물류'뿐만 아니라 다른 산업도 물류의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물류의 목표는 '파편화된 가치사슬을 흐르는 재화에서 비효율을 찾아 개선하고 전체 가치사슬의 효율을 만드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전체를 보는 시각이다. 부분 최적화는 항상 전체 최적화를 담보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부분을 무시할 수는 없다. 부분의 비효율은 언제고 전체 최적화에 영향을 주는 주요 요인으로 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_p58
저자는 물류의 과정에서 흐름, 연결, 최적화와 관련한 고민과 도전을 물류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물류는 작든 크든 어디에든 있다.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사장님의 입장에선 운영 매뉴얼로,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기업에선 시스템으로 물류를 바꿔 말할 수 있겠다. 또 어디서든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필요한 건 알지만 대개는 하기 싫고 귀찮은 일이 물류와 관련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흐름이고, 연결이고, 최적화'라고 한다. 이렇게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니 '물류'라는 그 단어에 무게감과 쓸모를 발견했다. 아, 나도 일상에서 물류를 다루고 있었구나!
네이버, 카카오, 쿠팡, 마켓 컬리 물류 이야기, 물류센터 환경과 배달 현장 노동자 이야기, 라스트 마일 딜리버리와 퀵 커머스 이야기, 풀필먼트와 마이크로 풀필먼트 이야기 등등 저자의 물류에 대한 지식과 경험 그리고 인사이트가 책 한 권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지금처럼 이종 산업이 물류와 합쳐지고 있는 이때에 넓은 의미로 물류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저자의 시각이 각 쳅터에 잘 나타났다.
우리나라 물류센터의 환경은 지금 어떠한가. 그 안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는 어떠한가. 그리고 물류센터를 통해 돈을 벌고 있는 것은 누구인가. 최소한 노동자는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과연 인력 도급업체와 3PL 업체는 돈을 많이 벌고 있을까. 그것도 아닌 것 같다. _ p161
특히 [쿠팡 덕평 물류센터 화재가 남긴 숙제 (p152-162)]편이 그렇다. 2021년 6월 17일 쿠팡 덕평 메가물류센터 화재와 이를 바탕으로 한 일본 물류센터 얘기다. 저자는 기술과 설비 측면이 아닌 일본 물류센터가 물류 현장을 대하는 자세를 언급했다. 또 이것이 현장 근로자의 사기뿐만 아니라 실제 생산성에도 영향을 준다는 것을 현장 전문가의 입을 빌어 설명했다. 그러면서 물류 현장을 바라보는 인식,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경제경영서를 읽으면서 드물게 아주 드물게 감정이입이 됐었던 내용이다.
풀필먼트(Fulfillment), 마이크로 풀필먼트(MFC), 3PL... 책에는 낯설고 피부에 와닿지 않는 용어들이 많이 나온다. 그러나 어렵지 않게 읽어 나갈 수 있다. 용어나 개념의 경우, 책 아래 각주를 읽으면 대략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책에는 다양한 표와 이미지 자료가 삽입됐다. 아무래도 텍스트 보단 이런 시각자료가 눈길을 끌 때가 있다. 일례로 p227에 소개된 판매자가 판매 건당 네이버에 부가하는 수수료를 계산할 수 있는 '네이버 페이 수수료' 자료다. 언젠가 온라인 셀러인 지인에게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 수수료가 매력적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자료를 보니 충분히 그럴만해 보였다. 그럼에도 책 읽기와 함께 인터넷 검색을 권한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용어나 개념뿐만 아니라 이와 관련한 여러 기사를 찾아 읽으면 책을 이해하고 더 나아가 기업과 산업을 알아가는 재미를 붙일 수 있다.
진화하는 이커머스 시장을 보다 이해하기를 원하는 온라인 셀러가 있다면 이 책 <커넥터스>를 추천한다. 주식 이야기는 단 일도 없지만 전자상거래, 배송, 배달, 운송 등 관련 기업에 관심 있는 주린이에게도 이 책을 권한다. 시시각각 헤쳐 모이는 물류 시장과 산업을 이해하는데 인사이트가 되리라 본다. 또한 인터넷 기사로 알려지지 않은 오직 현장에 있는 사람에게만 들을 수 있는 기업 이야기에 관심이 있는 분, 내가 온라인에서 주문한 물건을 어떻게 당일에 받을 수 있게 된 것인지 평소 궁금증을 갖고 계셨던 분에게도 권한다.
! 본 리뷰는 네이버 프리미엄 서비스 '커넥터스'에서 진행했던 책 <커넥터스> 서평단 모집 이벤트에 선정되어 출판사 '마인드빌딩'으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썼음을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