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슬로우 스타터 Mar 13. 2022

눈물 젖은 빵을 먹은 사람의 '눈물'을 보며

20대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2022년 3월 10일, 이재명 대선후보가 0.73 포인트 24만 7077표 차로 패했다. 우리나라 대선 사상 최소 표차다. 이로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내주게 됐다.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는 '승자독식' 구조다. 한 표라도 더 받는 쪽이 모든 권력을 갖는다. 반면, 패배한 쪽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상실감을 갖는다. 우리나라 대선은 잔인하다.


 "이재명 마음 알 것 같다" 같이 눈물 보인 여야 인사


대선 패배 승복을 선언한 뒤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를 떠나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 사진 공동취재


3월 10일 오전 3시 50분쯤 이재명 후보는 여의도 민주당 당사에서 대선 패배를 인정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여러분의 패배도 민주당의 패배도 아니다.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다.


기자회견을 끝낸 후 이재명 후보는 지지자들과 인사한 뒤 혼자 차를 타고 현장을 떠났다. 같은 시각, 민주당 선대위 디지털대전환위원장을 맡은 박영선 전 장관과 이혜훈 국민의힘 전 의원은 SBS 개표 방송에 출연해 이 모습을 지켜봤다. 소감을 묻는 진행자의 말에 박 전 장관은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박영선 전 장관과 이혜훈 전 의원 / 사진 SBS 캡처


차에 혼자 타고 가는 모습을 보니까... 저 때 굉장히 외롭다. 저도 작년에... 굉장히 마음이 쓸쓸하다


박 전 장관의 말이 끝나자 맞은편에 앉아 있던 이혜훈 전 의원이 안경을 벗고 눈물을 닦았다.


저도 같은 아픔이 있으니까 저런 순간에 선거에 낙선한 사람이 느끼는 마음이 어떤 건지 잘 안다


여야 인사 두 사람은 혼자 차를 타고 현장을 떠나는 낙선한 후보의 모습을 보며 이같이 눈물을 보였다. 박영선 전 장관은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해 낙선한 바 있다. 이혜훈 전 의원 또한 2020년 4월에 치른 21대 국회의원선거에서 동대문구 을에 출마해 낙선했다. 두 정치인 모두 각 거대 정당에서 중진(重鎭)이자 3선 이상의 관록을 가졌지만 유권자의 선택을 받지 못한 쓰디쓴 경험을 가진 것이 공통점이다.


그래서일까? 두 정치인이 보인 눈물은 여야를 떠나 선거에서 패배한 후보의 모습에서 동병상련(同病相憐)을 느꼈던 것으로 보였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비쳤다.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매우 외롭고 쓸쓸한(고독), 더할 수 없이 슬프고 끔찍한(비참) 낙선의 그 순간이 두 여야 인사의 마음을 힘껏 후려쳤던 것 같다. 낙선은, 패배는 눈물에 젖은 빵이다. 한동안 눈물에 젖은 빵을 먹어본 두 정치인의 그 '눈물'이 자꾸 눈에 밟힐 것 같다.


눈물에 젖은 빵


흔히 '눈물 젖은 빵'이라는 표현을 쓸 때,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을 논할 자격이 없다는 말로이 어진다. 고난, 고통, 서러움, 처량함 같이 더 할 수 없이 슬프고 끔찍한 일을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알기 어렵다 정도의 의미겠다. 눈물에 젖은 빵. 눈물을 흘리면서 먹는 빵. 생각만 해도 한 없이 처지고 가라앉는다.


'눈물 젖은 빵'은 괴테의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에서 '하프 타는 사람의 노래' 라는 시에 나온다.


눈물과 함께 빵을 먹어본 적이 없는 자 / 근심에 싸인 수많은 밤을 / 잠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 울며 지새 본 적이 없는 자 / 천국의 힘을 알지 못하나니...


성경에도 나온다.


주께서는 그들을 눈물의 빵으로 양육하시며 많은 눈물을 마시게 하시나이다. 시 80:5


정호승 시인의 <서울의 예수>에도 등장한다.


2. 술 취한 저녁. 지평선 너머로 예수의 긴 그림자가 넘어간다. 인생의 찬밥 한 그릇 얻어먹은 예수의 등 뒤로 재빨리 초승달 하나 떠오른다. 고통 속에 넘치는 평화, 눈물 속에 그리운 자유는 있었을까. 서울의 빵과 사랑과, 서울의 빵과 눈물을 생각하며 예수가 홀로 담배를 피운다. 사람의 이슬로 사라지는 사람을 보며, 사람들이 모래를 씹으며 잠드는 밤. 낙엽들은 떠나기 위하여 서울에 잠시 머물고, 예수는 절망 끝으로 걸어간다.


괴테는 '눈물 젖은 빵'을 슬픔으로 울면서 밤을 지새운 사람과 가난함에서 오는 고통으로, 성경에는 예수의 고통과 시련으로, 정호승 시인은 힘들게 고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뇌를 이야기한다. 모두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먹는 빵이 '눈물 젖은 빵'이리라.


지독한 연애


그러나 '눈물 젖은 빵'은 나를 성장시키는 힘이다. 눈물에 젖은 빵, 눈물을 흘리면서 먹는 빵을 먹고 나서 다시 일어나야 새로운 나를 만날 수 있다. 비싼 수업료를 냈다 치지 말고 비싼 수업료 덕분이라고 말하자. 눈물 젖은 빵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자. 물론 말처럼 쉽지 않겠지!


그러나 저러나 패배로 인한 상실감은 무엇으로 어떻게 채워야 할까? 부디 불안에게 영혼이 잠식당하지 않길 기도한다.


나는 지금 바람 앞에 놓여 있습니다. 바람이 멈추기 전까지 계속 나부낄 테지요. 그러나 나는 알고 있습니다. 저 바람도 내가 나부낄 정도만 불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결국 멈출 것 까지도 말입니다. 비록 내 심지가 머리카락처럼 가벼워 바람에 쉬이 흔들거려도 나를 송두리째 뽑아가진 못합니다. 나는 지금 깊은 못에 빠져있습니다. 하지만 이 어둠과 지독한 연애 중인지도 모릅니다. 온몸으로 부딪치며 기다려 보겠습니다.
 _ 지독한 연애 / (c) 슬로우 스타터


겨울은 봄을 데리고 온다 / (C) 슬로우 스타터

ㄴ 영상을 플레이하면 거센 바람소리에 놀랄 수도 있습니다. 이어폰을 끼고 계시다면 플레이 전에 음량을 줄여주세요.


작가의 이전글 [리뷰] 커넥터스 ; 물류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