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 꼬집, 음악 한 꼬집 속의 나
시간 여행을 다룬 이야기를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오죽했으면 영화학교를 다닐 때 과제로 제출한 기획 작품 모두 시간 여행을 클리셰로 썼을까 싶다. 기억으론 중학생 때인 90년대에 TV로 시청한 애니메이션 <시간탐험대>, 홈비디오로 접한 영화 <백 투 더 퓨처>터였다. <시간탐험대>의 주전자 '돈데크만'과 <백 투 더 퓨처>의 자동차 '들로리안'처럼 시간 이동을 도와주는 타임머신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물론 당시엔 타임머신을 단지 '갖고 싶다', '발명하고 싶다' 였을 뿐 지금처럼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처럼 시간 여행을 통해 어쩌면 지금과 다를 수 있었을 현재를 상상해 보는 것과는 다르다.
그러다 KBS 음악 프로그램 <유희열의 스케치북> 572회를 시청하고, 그날 밤 '타임머신이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해봤다.
아, <타임머신(2013)> 노랫말의 서사에 진짜 울컥했다. 이걸 또 가수는 덤덤하게 부르고 있으니 더욱 그러했다. 김진호 <가족사진>, 양희은 <엄마가 딸에게>처럼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거나, JTBC 밴드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밴드>에서 알려지고 동방송사에서 방영된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 OST로도 쓰인 Ben Folds <Still Fighting It> 같이 뭉클한 멜로디가 아님에도 눈물이 또르르 흘렀다.
강백수 <타임머신>처럼 가족의 관한 노래 중에 익살 맞고 서사가 강한 노랫말과 다르게 담담한 멜로디를 담아낸 노래가 한스밴드 <오락실>이다. 1998년 당시 IMF 외환위기 한파로 인하여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 기반이 뿌리째 흔들릴 무렵, 아이의 눈에 비친 실직한 아빠와의 에피소드를 담은 노랫말이었지만 경쾌한 멜로디로 인해 당시엔 그 가사가 내 맘에 와닿지 않았다. 이후 세월이 흘러 몇 년 전, 딸아이의 피아노 발표회를 갔다가 어린이 합창단이 부른 <오락실>을 듣고 옆에 있던 아내와 오열하다시피 울었더랬다.
"이 노래가 이렇게 슬픈 노래였어?"
"나도 몰랐어. 너무너무 슬프네, 진짜!"
<타임머신>을 노래한 강백수 님은 2004년에 엄마를 떠나보냈고, 나는 2017년에 아버지를 떠나보냈다. 그는 엄마가 좋아하던 오뎅이나 쫄면을 먹을 때마다 가슴이 무너진다고 했고, 나는 아버지가 좋아하던 잔치국수를 먹을 때마다 먹먹해지고, 암으로 돌아가신 분의 얘기를 접할 때마다 가슴이 무너진다.
최근에 딸아이와 사소한 문제로 다퉜다. 이해의 대립으로 서로 작게 따지다 말싸움으로 번졌다. 그냥 내가 한 발 물러났으면 됐을 일인데 '욱-' 하는 그 나쁜 성질머리 때문에 결국 딸아이가 '꺼이꺼이' 목을 매며 울어버렸다. 순간 머리카락이 '쭈뼛' 솟을 만큼 화가 났다. 한 30초가량 지났을까? 딸아이가 우는 모습을 마냥 지켜보다 느닷없이 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어 졌다. 이럴 땐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어떻게 먼저 손을 내밀면 좋을지 아버지라면 분명 조언을 해주셨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가 곁에 계시지 않으니 착잡한 심정으로 애꿎은 캔맥주만 들이켰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나는 2009년 겨울, 딸아이가 태어난 그날로 시간 여행을 하고 싶어졌다. 탄생 속에 깃든 환희와 미묘하여 헤아려 알기 어려운 황홀한 감정을 마음껏 느꼈던 그날! 며느리를 향해, 아들을 향해 기쁜 표정으로 활짝 웃으시던 엄마와 아버지를 다시 만나고 싶다. 내 기억 속 몇 안 되는 두 분의 낭만적인 모습이자 비로소 우리 가족이 가족으로서 완전체가 된 그 첫날이기 때문이다.
강백수 <타임머신>은 '어느 날 타임머신이 발명된다면'으로 시작한다. 1991년으로 날아가 한창 잘 나가던 삼십 대의 아버지를 만나고, 1999년으로 날아가 아직 건강하던 삼십 대의 엄마를 만나고 싶어 했다. 특히 노래가 끝날 무렵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로 돌아가 엄마를 만날 수는 없겠지만, 지금도 거실에서 웅크린 채 새우잠을 주무시는 아버지께 잘해야지'라는 가사가 참으로 마음에 든다.
우린 우리 인생의 하루하루를
항상 함께 시간 여행을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이 멋진 여행을 즐기는 것뿐이다.
영화 <어바웃 타임>의 명대사다. 시간 여행을 통해 지금을 바꾸고 미래를 바꾸는 것보다 누구라도 더 나은 인생의 결말을 위해 하루하루 주변 사람들과 좋은 관계 속에서 좋은 추억을 만들어 가는 일이 중요하다.
지금도 강백수 님의 아버지는 새우잠을 주무시는지, 또 노래가 발표된 2013년 이후 강백수 님은 혼자 계신 아버지께 잘해드렸는지 모르겠으나 나 또한 홀로 계신 엄마를 떠올려 볼 때 잘해드린 것이 별로 없음에 엄마께 죄송하다. 타임머신이 발명되는 그날을 기다리는 것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엄청난 능력을 갖게 해달라고 신께 기도하는 것보다 엄마와 좋은 추억을 쌓는 일에 관심을 갖어야지.
부모님 두 분 모두를 보고 싶게 만든 이 노래 <타임머신>, 꼭 역주행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글의 제호처럼 '어느 날 타임머신이 발명된다면'을 쓰게 된 이유는 노래 <타임머신> 덕분이다. 게으르고 쓰고 싶은 주제가 있어야 쓸 마음이 생기는 나로서는 강백수 님이 고마울 수밖에!
강백수 님은 시인,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창작활동 외에도 방송과 강연 등 다양한 영역에서 폭넓게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아, 이곳 브런치에서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었다. 문학과 음악의 요정, 강백수 브런치 > https://brunch.co.kr/@anomia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