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에게 분기별로 한 번씩 매우 세차게 찾아오는 불청객이 바로 혓바늘이다. 피곤해서 생기기도 하고, 스트레스를 받아서 생기기도 하며, 주전부리를 하다가 욕심을 부려 어이없게 혀를 깨물어 생기기도 한다. 그러다 짧게는 몇일에서 길게는 열흘이 지나서 아물게 되는데, 가끔은 작디작은 혓바늘에도 꽤나 신경이 날카로워지기도 한다. 또 어떨 때는 양치질을 하다가 발견했다가 언제 아물었는지도 모르고 지나가기도 한다. 어찌 되었건혓바늘로 고생해본 사람은 안다.그리고 짝사랑을 해본 사람도 안다. 모두 시간이 약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니.
그러나 시간은 단지 지나갈 뿐 치유의 능력은 없다. 그런데도 시간에 치유의 힘이 있다고 믿는 것은 대부분 시간 상으로 멀어지면 아픔에서, 슬픔에서, 고통에서 그 기분이 나아진다고 느끼기 때문인 듯하다. 다만, 언제고 훅 하고 들어올지도 모를 ‘그 안 좋은 기억’에서 자유로울 사람은 많이 없을 것이다. 지우고 싶은 기억은 이불을 덮고 잠을 청하다가도 문득 떠오른 자신의 흑역사가 떠올라‘이불킥’을 유발하기도 한다. 반면 벅찬 기억은 지우고 싶은 기억만 큼 문득 잘 떠오르지 않는다. 벅찬 기억은 매우 짧은 동안, 즉 ‘순간’ 왔다가 빠르게 지나갈뿐더러 삶에서 이와 같은 기운을 받기란 가뭄에 콩 나듯 어쩌다 하나씩 드문드문 일어나기 때문이다.
본래 인생은 원래 불행하지만 그럼에도
얼그레이와 초코 소스를 레시피 한 음료 ‘얼그레이 초코’는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먹어본 사람은 마니아가 되어 또다시 주문하게 되는 <월서울> 시그니처 음료 메뉴 중 하나다. 스팀 밀크 속에 은은한 베레가모트 향을 머금고 있는 홍차와 기라델리 초코 프리미엄 소스의 조합으로 만든 ‘얼그레이 초코’.
<월서울> 얼그레이 초코
글쓴이 개인적으로는 입술에 닿을 때 부드러운 폼 밀크와 함께 적당한 홍차 향과 달달 구리 초코 맛을 좋아하지만 아주 매우 가끔 찾는다. 이유는 다소 귀찮고 시간이 걸리는 레시피 이므로. 그러나 자주 드시는 분은 ‘앓이’라는 표현까지 쓴다. 사실 홀이 바쁘게 돌아가는 때에 ‘얼그레이 초코’는 애증적 메뉴다. 높은 매출을 기대할 수 있는 음료지만 자칫 Bar의 움직임을 더디게 하는 존재라서. 더욱이 이럴 때 발생하는 실수는 자괴감마저 든다.
얼마 전 jtbc 방송 <슈퍼밴드>에서 윤종신 님이 심사 중 “본래 인생은 원래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덜 불행하려고 모두 노력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참가한 밴드의 노고를 공감하는 동시에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감동받았음을 전하는 심사평 중 한 대목인데, 글쓴이는 이 대목에 매우 공감한다. 때문에 의연 해지는 연습을 하고 있다. 어떤 노력이던 의연함 없이 꾸준하기 어렵다. 더욱이 인생이 덜 불행하려고 노력하는 것이기에 의연한 자세가 몸에 배어있지 않으면 북받치는 어떠한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불행’의 늪에서 빠져나오기가 여간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한다.그런데 의연해지는 연습은 참으로 어렵다. 여전히 이틀에 한 번 꼴로 새로 시작한다. 그래서 글을 쓰고 있는 오늘 밤에도 흑역사가 떠올라 ‘이불킥’을 하게 될 것이다.
기억의 습작 : 좋은 기억
사실 벅찬 순간은 가뭄에 콩 나듯 어쩌다 하나씩 드문드문 찾아오는 것 같지만 돌이켜보면 그래도 제법 있었다. 그중 세 가지 좋은 기억을 떠올려 각각의 키워드로 나열하자면 협업, 기술, 사람이다.
협업의 추억
서비스던 제품이던 알리는 일은 지금도 어렵게 느끼고 있고 앞으로도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무릇 글쓴이뿐만은 아니라고 판단하는데, 더욱이 단순한 카페가 아니라 공간의 특성을 살리고 글쓴이를 비롯한 동료들의 문화예술 능력을 한껏 발산하여 성수동 일등 문화공간이 되고자 했다. 따라서 카페 개장일인 2015년 3월로부터 두 달 안에 우리의 존재를 알리고 뜻을 세우기 위해 무언가를 기획하고 결과를 내야만 했다. 그 몫은 다름 아닌 글쓴이였고, 그 해 5월 윤혜지 작가의 캐릭터 ‘몰랑이’ 팝업스토어로 시작해서 7월 뷰티 크리에이터 ‘연두콩’ 팬밋업 행사와 10월 썬데이토즈 캐릭터 ‘애니팡’ 팝업 스토어까지 만족할만한 성과를 얻었다. 이는 현재 <월서울>의 주요 수익모델인 장소 대관/대여 서비스의 근간이 되었는데, 모두 ‘협업’을 통해 저마다 벅찬 순간의 기억이 존재한다. 이와 관련된 자세한 이야기는 다른 편에 소개할 기회가 있을 때 남기도록 하겠다.
기술의 추억
글쓴이는 기계치다. 손재주도 없다. 따라서 전자기기를 포함해 기계 만지는 일을 좋아하지 않으며, 필요에 의해 무엇을 손수 만든다던가 망가진 것을 고친다던가 하는 일은 절대 나서는 법이 없다. 만약 글쓴이가 해야 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싶으면 그전에 자취를 감춘다. 뿐만 아니다. 손맛도 없다. 음식은 할 줄 아는 것이 없고 조리만 조금 할 뿐이다. 그래도 그나마 유일하게 손을 이용해서 잘하는 일은 손 글씨와 칼을 이용해 연필이나 과일을 깎는 정도다. 그런 글쓴이가 에스프레소를 추출하고 티를 우려내고 레시피를 연구해서 디저트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이제는 능숙하다. 수준급 바리스타는 아니지만 어디에다 내놔도 부끄럽지 않을 만 큼 <월서울> 메뉴에 자부심이 있다. 지금 들어도 글쓴이의 마음을 평안하게 하는 말. “생각나서 왔어요”
사람의 추억
지금으로부터 2년 전, 가을 햇살에 어디던 마냥 시간을 보내고 싶은 그런 날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글쓴이 인생에 가장 황망한 사건이자 충격적인 가정사다. 지인으로서 장례식을 들르는 일과 상주로서 장례를 치르는 일은 오감(五感)부터가 다르다. 그럴 수밖에. 그리고 말로,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현상을 느꼈는데, 바로 공감각(共感覺)적인 심상이다. 학창 시절 문학시간에 배웠던 그 공감각적 심상(예 – 푸른 종소리는 공감각적 심상의 표현이다) 말이다. 다름 아닌 글쓴이를 위로해주러 찾아와 준 그리고 연락해준 사람들로부터다. 여기에 성수동에서 만나 연을 맺은 분들도 상당하다. 사실 예상치 못했다. 그래서인지 성수동 분들의 출현, 연락, 말 한마디, 눈 빛 하나하나가 글쓴이에게 커다란 감격을 안겨주었다. 그 감격의 순간과 느낌이 글쓴이에게 공감각적 심상을 느끼게 해 준 것이다. 이 글을 빌어 글쓴이에게 위로해주신 모든 분께 고마움의 인사를 다시 드린다.
기억의 습작 : 지우고픈 기억
지우고 싶은 기억은 매우 많다. 바보 같은 순간, 아찔한 순간, 판단의 실수, 잘못한 일, 그르친 일, 별것도 아닌 일로 고민한 일…. 모두 지우고 싶은 기억이다. 이 중 세 가지 기억만을 떠올려 본다. 일을 하면서 가장 아찔하면서 바보 같은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스팀 밀크의 기억
초창기 일이다. 아직 에스프레소 기계에 익숙하지 않을뿐더러 스팀 밀크를 제대로 마스터하지 못한 가운데 혼자 매장을 지켜야 했던 날이 있었다. 딱 1시간만 혼자 있으면 되었으므로 불안과 초조함을 애써 참으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머지않은 시간에 커플 손님이 따뜻한 밀크티를 주문했다. 동료와 미리 얘기했던 대로 스팀 밀크 주문이 들어오면 사정을 얘기하면 되었는데 그동안 글쓴이가 연습한 스팀 밀크를 선보이고 싶은 욕심도 들었다. 그런데 과욕이었다. 과욕은 금물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 일이다. 손도 데고 버린 우유만 상당하다. 그뿐만 아니라 에스프레소 기계 주변이 온통 우유 바다가 되어 버렸고 이 우스꽝스러운 모습은 고스란히 커플 손님에게 노출이 되었다. 커플 손님이 글쓴이를 위로해주었다. 식은땀이 웃옷을 다 젖게 했다. 그 후로 커플 손님과 안면을 트게 되었고 요즘도 가끔씩 들러 따뜻한 밀크티를 주문한다. 유독 그 커플 손님에게는 한치도 어긋남이 없는 스팀 밀크를 드리게 된다. 그리고 그때마다 그 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글쓴이도 모르게 땅방울이 맺히고 만다.
낙상의 기억
글쓴이는 단 한 번도 깁스를 해본 적이 없다. 뼈가 부러지거나 인대가 늘어나 고생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을 정말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그 날 만큼은 깁스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불안이 엄습했다. 물론 결과적으로 삼 주 동안 한의원 신세를 졌고 이마저도 천운이었다고 생각한다. 글쓴이가 사다리에서 떨어졌다. 완만한 높이가 아니었다. 4미터 정도 되는 높이었다. 떨어지면서 내가 떨어지고 있음을 두 눈으로 보고 있었다. 바닥에 먼저 닿은 것은 두 발. 찌릿함이 두 발을 감싼 후 순식간에 온몸으로 전달되었다. 정말 천운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사다리가 글쓴이를 덮치지 않았다는 것인데 만약 사다리가 글쓴이를 덮쳤버렸다면… 이후 사다리에 올라가야 하는 일이 생기면 글쓴이는 자연스럽게 동료의 이름을 부른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그 날의 기억을 떠올리니 두 발이 시큰거린다. 정말이지 높은 곳에서 몸이 떨어지는 경험은 평생 동안 겪고 싶지 않음이다.
매출의 기억
낙상하고 싶지 않은 것은 신체뿐만이 아니다. 매출도 그러하다. 매일 집을 나설 때 순간순간 닥쳐오는 상황에 일희일비(一喜一悲) 하지 말자고 굳게 다짐을 하지만 곧 모래성이 되는 일상의 감정선에는 매출이 차지하는 비율도 만만치 않다. 그날의 매출 추이에 따라 좋아했다 슬퍼했다는 반복된다. 물론 지금은 초창기 때보다 훨씬 담담하고 덤덤하게 받아들인다. 다만, 살이 조금씩 빠지고 있음이 보인다. 얼굴색이 조금씩 짙게 변하고 있음을 밤마다 보고 있다. 허리도 손목도 예전과 같지 않다. 매장의 살림살이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은 분명한데 속도가 더디다. 투수로 얘기하자면 제구력은 좋아지고 있는데 공의 빠르기 때문에 제구력이 큰 빛을 못 보고 있다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래서 한 숨을 쉴 때는 그 깊이가 매우 깊다. 매출의 기억은 지우고 싶은 기억이라기보다 깊은 한 숨을 내쉬고 있는 글쓴이의 모습을 지우고 싶어서다. 그럴 때마다 참 못나 보인다.
그 어떠한 상처든 흔적은 남지만
가을이 깊어간다. 깊어가는 가을만 큼이나 떨어지는 저 낙엽처럼 지우고 싶은 기억 또한 하나둘씩 내게서 떨어져 나가면 얼마나 좋을까. 아마도 프랑스의 시인·비평가·사상가 폴 발레리 말처럼 일상을 살아가면 지우고 싶은 기억이 떠오를 틈이 없을 것 같다. 따라서 글을 쓰고 있는 오늘 밤에도 흑역사가 떠올라 ‘이불킥’을 하게 될 것이라는 글쓴이의 예상이 보기 좋게 틀릴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