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의 바람이다. 황홀한 사람. 머무르고 있을 그 때나, 머물다간 이후에도 황홀한 사람으로 기억되기. 현재도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SBS TV 예능 프로그램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 모 사장님은 들어오는 손님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소바 면을 터는 데만 집중한 한 장면이 내 눈길을 끌었다. 옛 생각이 나서다. 상황과 경우는 다르지만 접객에 있어서 카페 운영 초기에 적잖게 혼란을 겪었던 기억 때문이다. 그렇게 몇 달간 홍역을 치르고 나니 접객뿐만 아니라 손님을 관찰하는 여유까지도 얻게 된 지금. 손님을 관찰하는 일은 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가 되었다. 일이라기보다는 습관이 되었다고 해야 할까. 이렇게 손님을 관찰하다 보면 어떤 이유로든 또 만나고 싶은 사람이 생기기 마련인데 이러 땐 어떤 호의를 베풀거나 편하게 주고받은 이야기가 협업까지 가는 인연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든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다. 처음부터 서로의 이익을 위해 일로서 만났다가 그 중간 어떤 지점에서 파열음이 발생한 경우도 있긴 한데 대부분 손님과의 관계에서 생긴다. 물론 이는 상대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일 순 있겠다. 운치가 있는 사람과 둔치로 무장한 사람. 글쓴이는 상대방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
운치와 둔치
운치: 고상하고 우아한 멋
둔치: 감각이 둔하고 미련한 사람
<월서울>에는 네 가지의 시그니처 메뉴가 있다. 그 중 하나가 뜨거운 물이 아닌 차가운 물을 이용하여 오랜 시간을 들여 우려낸 더치 커피(Dutch coffee) 위에 달콤한 크림을 얹힌 ‘더치 화이트’다.
<월서울> 더치화이트
l 더치 커피(Dutch coffee) : 일본식 영어. 영어로는 콜드 브루 커피(cold brew coffee) 다.
<월서울> ‘더치화이트’는 아인슈페너 커피 내지 비엔나커피를 연상케 하는데 천상의 맛은 물론 거품 키스를 부르는 달콤한 크림이 일품이다. 더욱이 시간이 조금씩 지날수록 더치 커피 속으로 타 들어가는 크림줄기를 보고 있노라면 보고 있는 사람의 마음을 홀리는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이러한 백미(百媚)를 한껏 느끼며 잠시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고 고백한 어떤 손님 덕에 글쓴이 또한 ‘더치 화이트’의 매력을 새삼 알게 되었는데 그 손님을 짧게 소회 하자면 참으로 고상하고 우아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 같다. 운치가 있는 사람은 이렇듯 글쓴이로 하여금 인연을 맺고 싶게끔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이렇듯 글쓴이가 어떤 이유로든 또 만나고 싶은 사람의 유형을 한 가지만 꼽겠다.
친절은 결코 헛되지 않는다
영국 속담이다. 사전적 의미로 ‘친절’은 ‘대하는 태도가 매우 정겹고 고분고분함. 그런 태도’다. 사실 친절해서 헛될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다른 것은 다 제쳐두고라도 자신에게 해로울 것이 없다. 내 마음이 한결 부드러워지고 푸근해지니 말이다. 물론 판매, 유통, 음식, 관광, 간호 등 대인서비스를 업으로 하는 감정노동자는 업 특성에 기인한 친절이겠다. 이는 특별한 의도가 있는 것으로서 흔히 일상에서 마주하는 ‘친절’과는 본질이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글쓴이가 ‘친절’의 첫 단추로 꼽는 태도는 인사(人事)다.인사의 예(禮)가 겉으로 잘 드러날수록 좋다. 처음 만나는 사람끼리 서로 이름을 통하여 자기를 소개하는 것도 인사고, 마주 대하거나 헤어질 때에 예를 표하는 것도 인사다. 또한 입은 은혜를 갚거나 치하할 일 따위에 대하여 예의를 차리는 일도 인사다. 따라서 인사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으면 본의 아니게 무례한 사람으로 보이기 쉽다. 다만 첫 만남에서 과한 격식은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고, 안면이 있다고 하여 인사를 생략하면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키며, 친밀하다고 생각해서 거리낌 없이 농(弄)으로 시작하는 인사는 관계의 문제를 야기(惹起) 하기도 한다.
<월서울> 단골손님 중 A분은 음료를 주문할 때 늘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글쓴이와 마주한다. 지금까지 A손님과 몇 번 자리에 앉아 대화를 나눈 때도 그랬지만 대부분 대면하는 짧은 순간순간에도 그의 미소는 글쓴이의 마음을 푸근하게 한다. 언젠가 A 손님에게 <월서울>을 자주 방문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물어봤다. 커피가 맛있고, 공간이 훌륭하고, 일하는 곳과 가까워서라는 일반적인 답변도 들었지만 무엇보다 글쓴이의 동공 지진을 만든 말 한마디.
“그리고 워낙 친절하시니까요!”
과찬이다. 고마울 따름이고. 그런데 글쓴이는 아니다. 아마도 동료 중 누군가를 일컫는 것이리라. 글쓴이는 워낙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친절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인사의 예를 누구보다 중요시하고 인사의 때를 놓치지 않으려 노력할 뿐이다. A 손님도 그러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이러한 운치가 있는 사람을 가까이해야 잔잔한 기운이 오래 남는다. 그래야 가끔씩 세차게 치고 들어오는 둔치를 운치로부터 받은 기운으로 내리누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A 손님과 연이 끊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뿐만 아니다. A 손님이 업무 차 중요한 손님을 모시고 왔을 때다. 받은 주문 외에 덤으로 서비스를 주고 싶은 마음에 메뉴에 없는 과일을 테이블로 갖다 드렸다. 글쓴이의 진심이 닿았는지 얼마 후 좋은 결과가 있었다며 A 손님이 몇 분의 지인과 함께 고마움의 인사를 전하러 매장에 들렀다. 그리고 음료를 주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일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셀프 미담으로 보이겠지만 그래서 더욱 A 손님과 연이 끊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도 좋다. 친절은 결코 헛되지 않는다.
입격이 구리면 천박해 보인다
그럼 글쓴이가 어떤 이유로든 또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의 유형을 어떤 사람일까? ‘친절’을 말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입’을 통해 나는 소리 ‘말’이다. 입에도 격(格)이 있다. 글쓴이는 단어, 말투, 말맛을 일컬어 입격 3종 세트라 부르는데 이를 통해 나 자신을 또는 상대를 평한다. 특히 상황과 상대를 고려하지 않고 내뱉는 단어, 말투, 말맛 중 한 가지라도 현저하게 구리면 천박해 보인다. 그 순간이 바로 ‘입’이 아닌 ‘아가리’가 되는 것이다.
얼마 전 매출이 뛰어나게 좋아 디저트 메뉴 일부 재고가 일찍 소진된 어떤 날 얘기다. 장사하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을 텐데 이런 날 이럴 때 꼭 소진된 메뉴만을 주문하려는 손님이 많다는 것이다. 이런 날은 어쩔 수 없이 손님에게 안내와 함께 미리 양해를 구한다. 이러기를 두세 번 반복하던 그때. 혼잣말을 하려거든 상대가 모르게 하던가 하지 손님으로 처음 본 C분이 글쓴이를 향해 깊은 콧방귀를 뀌면서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한마디 쏘아붙였다.
“(깊은 콧방귀를 뀌면서) 그럼, 가게 문은 왜 열어 놓은 거야? 샷따 내리지.”
순간 깊은, 아주 깊은 빡친 감정이 치밀어 올랐지만. 그리고 순간 속사포처럼 움직이는 혀 끗이 입 밖으로 나오고 싶어 했지만. 어쩌랴. 그저 C 분 앞에서 웃을 수밖에. 그리고 C분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 밖에다 소금을 뿌리면 그만이다. 이렇듯 그 어떤 이유로든 영원히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의 유형, 입격이 현저하게 구린 C 분처럼 입이 둔치인 사람이다.
그런데 나는 운치일까, 둔치일까
이러한 내용의 글을 쓰다 보면 글쓴이도 모르게 선한 기억은 미담처럼, 북받치는 기억은 배설하게 된다. 배설은 ‘울적한 기분을’, ‘두려움과 분노를’과 같은 목적어와 호응하여 쓰이는데, 글쓴이가 겪은 북받치는 기억들 하나하나 되짚어 보면 그냥 웃고 넘어가면 그만인 감정들도 많다. 매일 집을 나설 때 순간순간 닥쳐오는 상황에 따라 일희일비(一喜一悲 ) 하지 말자고 굳게 다짐을 하면서도 매번 그 다짐은 모래성이 되고 만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렇게 한 자 한 자 써가면서 과연 나는 상대에게 어떤 기운을 주는 사람인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는 것이다. 나는 운치일까, 둔치일까. 글쓴이는 어떤 사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