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은 실체가 없어서 느끼기도 어렵고 속고 속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어쩌면 되려 모르는 게 속 편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운전자(동료)와 운전자(동료) 사이에도 대화와 소통이 필요하다. 참되고 애틋한 정이나 마음을 가지고 동료와 마주하기. 인디언 속담에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다. 언젠가는 헤어지겠지만 보다 오랫동안 서로 도우며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처음부터 동료들과 같이 했다. 카페를 하지 않았다면 평생 몰랐을 관점 중 세 번째는 진정성(眞情性)이다. 정말 모르는 것이 속 편한 것일까?
사람은 자라온 환경뿐만 아니라 생활양식도 다르다. 따라서 인생관, 가치관이 같을 수 없다. 이렇듯 글쓴이와 지금의 동료는 서로 다른 자아와 자아가 만나 각기 목적은 다르지만 같은 목표를 설정하는데 합의하고 일종의 물리적 결합을 선택했다. 때문에 소통이 매우 중요하다. 글쓴이가 생각하는 소통은 세 가지 태도에 의해 성립한다고 생각한다.
소통 = 친절 + 배려 + 포용 (단, 변수 x가 있음)
먼저, 각각의 사전적 뜻풀이부터 살펴보자. 친절은 ‘대하는 태도가 매우 정겹고 고분고분함. 또는 그런 태도’, 배려는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씀’, 포용은 ‘남을 너그럽게 감싸 주거나 받아들임’이다. 모두 태도와 맞닿아 있다.
‘소통’이란 막힘 없이 잘 통한다는 의미 외에도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을 이르는 말이기도 한데, 글쓴이는 동료 서로서로가 친절, 배려, 포용 없이는 오해가 쌓이게 되어 ‘소통’이 아닌 ‘진통’에 시달리게 된다고 생각한다. 세 가지 태도가 엉망인 상태에서 성공하는 가게를 바란다는 자체가 앞 뒤가 맞지 않다.
친절, 배려, 포용의 태도는 밖으로 드러나게 마련인데 여기에 변수 'x'가 있다. 바로 온도 차이다. 동료 각자가 그것을 받아들이고 표현하는데 따른 온도 차이로 인해 실시간 교통상황처럼 소통이 원할, 지체, 정체로 나뉠 수 있다. 이 때는 대화가 답이다. 동료는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서로의 생각을 즉, 서로의 온도 차이를 끊임없이 교환하고 적정 온도를 맞춰 나가야 한다. 그래야 정체를 지체의 흐름으로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만약, 온도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거나 그 차이를 좁히려 아무런 시도조차 하지 않을 거라면 장사건 사업이건 혼자 하는 것이 좋다.
존재 자체로 인정하기
이렇듯 글쓴이가 ‘소통’을 바라보는 관점은 각각의 태도와 그에 따른 실천이 함께 수반됨이다. 다시 말해서 ‘소통하고 있습니까?’, ‘소통하고 있습니다’, ‘소통합시다’라는 의미는 서로가 서로에게 친절, 배려, 포용의 마음가짐으로 대화를 통해 그것을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차이를 줄여 나가는 그 과정 자체를 이르는 말로 본다. 여기서 글쓴이는 그 과정 자체에 무게를 두기 시작했다. 진정성이 이러한 과정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진정성(眞情性)은 명사 ‘진정(眞情)’ 뒤에 ‘성질’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성(性)’이 붙어진 말로 ‘참되고 애틋한 정이나 마음’으로 부를 수 있다. 사실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동료를 대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부모 자식 또는 부부 사이에서도 쉽지 않은 마음가짐인데 하물며 동료 사이는 오죽할까. 그래서 글쓴이는 ‘진정성’이라고 쓰고 ‘존재 자체로 인정하기’로 읽기 시작했다. 동료와 소통하는 과정에서 그/그녀를 동료 그 모습 그대로 인정하는 동시에 상대와 상대 행동에 관해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글쓴이가 진정성을 ‘어쩌면 모르는 게 더 나을지 모르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유는 아마도 동료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 ‘집착하지 않기’가 어렵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동료와 일상을 함께 하면서 매번 진정성으로 무장할 순 없다. 다만, 너무 그 자체에 매몰되거나 붙들고 있지 않으면 동료를 미워하게 될 수 있다. 그러면 장사든 사업이든 조금씩 탈이 나기 마련이다.
지금까지 탁월한 글솜씨와 특별한 통찰이 묻어나는 글은 아니지만 글쓴이가 카페를 하지 않았다면 평생 몰랐을 세 가지 관점에 관해 글로 옮겨 봤다. 글을 쓰면서 좋았던 것은 머릿속과 생각에만 머물렀던 글쓴이의 시선을 정리 정돈하는 기회가 된 점이다. 이렇게 정리정돈이 되고 보니 미처 나도 몰랐던 나를 발견하게 됐다. 이것만 큼 큰 수확이 또 있을까. 단어를, 문장을 썼다, 지웠다 반복하는 과정이 흡사 장사와 닮았다. 누군가에게 보여줘야 하니 고민해야 하고, 읽히는 글이 되어야 하니 잘 쓰고 싶고, 찾는 글이 되어야 하니 쓰는 내가 즐거워야 오랫동안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장사도 손님에게 오랫동안 사랑받고 기억에 남기 위해 고민하고, 고민한 것을 잘 선보여야 한다. 더욱이 내가 즐겁지 않으면 그 일상을 버텨내기 어렵다. 아직 가야 할 길도 멀었고, 성공은 더더욱 저 멀리 있어 보인다. 앞으로 매거진 [월서울 웰소울(wall.seoul well.soul]에 글 하나하나를 올릴 때마다 글쓴이 삶에서 놓쳤던 그 무엇에 관해 진지하게 성찰할 계획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상인으로서든, 기획자로서든 한 단계 성장할 것으로 믿는다. 식었어도 식은 그대로도 다크 초콜릿 향미가 느껴지는 <월서울> 아메리카노. 멋쩍지만 역시 내가 내린 에스프레소가 제일 맛있네. 니머라카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