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 앞에 장사(壯士) 없다. 인생에서 예상치 못한 어퍼컷을 맞았을 때 우리를 지탱해주는 힘은 바로 ‘실패 경험’에서 비롯된다. 어린 나이에 데뷔하자마자 20년간 성공 가도를 달리며 쉼 없이 활동하다가 갑자기 일이 없어져 뒤늦게 좌절을 경험하고, 자신의 진로를 심각하게 고민했다는 개그맨 송은이 님도 위기의 경험을 통해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듯이 말이다. 덧붙여 그녀는 실패 경험이 없었던 그때를 불행이었다고 회상했다.
이렇듯 몇 안 되는 사람을 제외하고 대부분 우리는 살아가면서 역경의 상황에 맞닥뜨리고 고난의 시련을 겪는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기본적으로 필요한 의식주부터 연애, 결혼, 다이어트, 금연, 사업, 투자, 취업, 면접, 건강, 인간관계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부러워하는 성공보다는 실패 속에서 셀 수 없는 실패담을 안고 일상을 보낸다. 더욱이 ‘slow starter’의 성향을 가진 나는 지금도 실패담을 스펙처럼 쌓아 올리며, 바람이 멈출 때까지 나부끼게 될 나를 몸소 받아들이고 있다. 많은 실패 경험에서 얻은 산물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 내 스펙 같은 실패담을 ‘낭만적 실패’라 부른다. 크게 두 가지 이유로 그렇다.
먼저, 이 또한 지나간다는 믿음이다.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레로 바람 잘 날 없었다. 직장과 직업 그리고 직함만 스무 개가 족히 넘는다. 그럴 때마다 늘 바람 앞에 놓여 있었다. 심지가 약한 머리카락과 같은 나라서 쉬지 않고 이리저리 마구 나부꼈다. 하지만 그 바람도 내가 나부낄 정도만 불더라. 그리고 결국 멈춘다. 비록 실패 결괏값을 얻었을지라도 위기는 하나의 이벤트일 뿐 나를 송두리째 뽑아가진 못했다. 물론 위기와 고난을 피하고 싶어 부정도 하고 잔뜩 움츠리고 있었지만 무엇 하나 나를 구원할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 온몸으로 부딪치며 기다려 보자!’ 이런 몸부림 덕분에 깊은 못에 빠졌더라도 끝없을 어둠과 지독한 연애를 끝낼 수 있었다. 위기는 결국 지나가기 마련이었다. 단지, 성공으로 이어지지 않았을 뿐이다.
다음으로, 갈망하는 만 큼 지금 가질 수 없는 것은 관심을 뒤로한다. 우리는 행복 아니면 불행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살아간다. 인생은 본디 불안전하고 불완전하다.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불행하다고 말한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해도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말자. 원하는 것은 사실 얻기 어렵다. 동경하되 지금 이룰 수 없다고, 열망하되 당장 가질 수 없다고 순간순간이 크게 문제 있었는가 스스로에게 되물을 일이다. 그렇다고 갈망하는 대상에 관해 포기하는 것은 곤란하다. 포기하면 발전이 없다. 발전이 없으니 미련이 생긴다. 미련이 생기니 울화병이 생긴다. 울화병이 생기니 술을 즐긴다. 술을 즐기니 스스로를 경멸한다. 나를 경멸하니 자존감이 바닥을 친다. 자존감이 떨어지니 목표까지 잃게 된다. 시간은 흐른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몹시 처량했던 내 실패담이다. 옥스퍼드 대학 졸업식에 참석한 처칠 수상의 짧고도 굵은 다섯 마디 ‘Never, Never, Never, Never Give-up!’ 내게는 이 말이 실패할 때마다 외치는 ‘고수레’다.
실패 경험은 단순히 한 두 번 만으로 단명할 운명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실패 경험을 계속 ‘경험’ 해야 할 숙명에 놓여있기 때문에 실패 경험을 ‘수집’ 하는 일에 보다 관심을 기울이면 좋겠다. 그렇게 체득된 실패 경험이 쌓이면 삶에서 아무리 예상치 못한 역경을 만나더라도 ‘두려움’이라는 긴 터널에서 조금 더 빨리 빠져나올 수 있다. 그래야 ‘좌절’도 자산이 된다. 좌절이 자산이 된다고? 그렇다. 이렇게 여러 번의 실패 경험을 나의 스펙으로 인정하는 순간 일상과 썸 타는 지름길을 알게 됐다. 생각은 짧고 깊게, 결단은 굳세게, 실행은 빠르게. 그러다 보니 매우 작더라도 여러 번 성공이 따라오더라. 이것이 낭만적 실패와 그 후의 내 일상이다.
조금 전 아내에게 연락을 받았다. 딸아이가 반 부회장 선거에서 낙선했다는 소식이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지만 속상한 듯 보인다더라. 몇 해 전부터 반선거에 출마하며 퐁당퐁당 반복했는데 이 번에는 ‘당’이네. ‘카톡’ 딸아이에게 연락이 왔다.
아빠!
장맛비가 억수로 내리네.
근데 참 낭만적이다.
그치?
녀석, 다 컸네. 오늘 실컷 위로해줘야겠다.
경험 앞에 장사 없다!
특히 실패 경험 앞에선 더욱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