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노력하고 노오력 하는

내가 존중을 받고 싶은 모습으로 타인을 존중하기

by 리얼라이어

나는 건강한 개인주의를 지향한다. 내가 존중을 받고 싶은 모습으로 타인을 존중한다. 남이 나를 대했으면 하는 모습으로 말을 하고 뱉은 말에 책임을 다한다. 친절, 배려, 포용의 마음가짐과 자세로 상대방과 마주하는데 거리낌 없다. 또한 함부로 간섭하지 않으며 다양성을 존중한다.


우리나라처럼 공동체 중심인 사고방식과 집단주의 성향이 강한 조직문화에 길들여진 탓에 많은 사람들이 개인주의를 이기주의로 보는 경향이 있다. ‘집단주의’는 ‘나’ 보다는 ‘우리’, ‘개인 목표’보다 ‘집단 목표’가 우선인 가치관에 움직이기 때문에 집단주의 성향이 강한 사람의 시선에는 개인의 정체성을 중시하는 가치가 이기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기주의는 사회 또는 어떤 조직 구성원으로서 그 책임을 다하지 않고 남이 어떻게 되든 말든 상관없이 자기 권리만을 주장하는 언행으로 갈등을 유발한다. 따라서 개인주의는 이기주의가 아니다. 이기주의와 반대로 개인주의는 타인에 대한 존중이 전제가 된다. 더욱이 내가 지향하는 개인주의는 성숙하고 합리적인 태도가 건강하게 뒷받침되는 것이다. 타인과 소통하는 방향을 보면 내가 지향하는 바가 드러난다.



소통 = 친절 + 배려 + 포용


사람은 자라온 환경과 생활양식이 다르다. 따라서 인생관, 가치관이 같을 수 없다. 현재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나와 동료는 서로 다른 자아와 자아가 만나 목적은 각기 다르지만 같은 목표를 설정하는데 합의하고 일종의 물리적 결합을 선택했다. 때문에 소통이 매우 중요하다.


‘소통(疏通)’이란 ‘막힘없이 잘 통한다’는 의미 외에도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을 뜻한다. 나는 함께 일하는 모든 구성원 간 친절, 배려, 포용 없이는 오해가 쌓이게 되어 ‘소통’이 아닌 ‘진통’에 시달리게 된다고 생각한다. 이 세 가지 마음가짐과 자세가 엉망인 상태에서 성공하는 카페를 바랄 수 있을까 싶다.


친절, 배려, 포용은 모두 태도로서 겉으로 드러나게 마련인데, 여기에는 변수가 있다. 바로 ‘온도 차’다. 구성원 각자가 그것을 받아들이고 표현하는데 따른 온도 차로 인해 실시간 교통상황처럼 소통이 원할, 지체, 정체로 나뉠 수 있다. 이 때는 대화가 답이다. 구성원이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서로의 생각을 즉, 서로의 온도 차를 끊임없이 교환하면서 적정 온도를 구해야 한다. 그래야 비록 지금은 정체라고 할지라도 지체의 흐름으로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만약, 온도 차를 좁히려 아무런 시도조차 하지 않는 구성원이 있다면 그와 이별을 해야 한다. 건강한 개인주의는 공동체 생활에서 발생하는 양보나 타협도 기꺼이 할 줄 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이기주의다.


1인 기업이 아니고서 구성원 간 소통은 적잖게 스트레스 요인이 되기도 한다. 모두 관계에서 오는 필수불가결함이다. 나는 공동체 생활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관계에 따른 피로함을 외면하지 않고 문제 해결을 위해 힘쓴다. 때문에 ‘소통하고 있습니까?’, ‘소통하고 있습니다.’, ‘소통합시다!’라는 의미를 <서로가 서로에게 친절, 배려, 포용의 마음가짐으로 대화를 통해 그것을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차이를 줄여 나가는 그 과정 자체를 이르는 말>로 본다. 그리고 그 과정 자체에 무게를 둔다. 또한 구성원을 존재 자체로 인정하는 동시에 상대에 관해 집착하지 않는다.


인디언 속담에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다. 나와 동료는 언젠가 헤어지겠지만 보다 오랫동안 상대를 배려하면서 내가 이루고자 하는 가치를 실현하고자 한다. 이것이 바로 건강한 개인주의를 지향하는 내가 공동체 안에서 소통을 바라보는 관점이라 하겠다.


(c)슬로우 스타터


친절은 결코 헛되지 않다


‘믿음, 소망, 사랑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는 성경구절처럼 구성원 간 소통을 위해 내가 가장 크게 신경 쓰는 것은 ‘친절’이다. 아무래도 친절이 배려와 포용보다는 겉으로 잘 드러나는 태도라서 그럴 것이다.


내가 ‘친절’의 첫 단추로 꼽는 행동은 인사(人事)다. 인사의 예(禮)는 겉으로 잘 드러날수록 좋다. 처음 만나는 사람끼리 서로 이름을 통하여 자기를 소개하는 것도 인사이고, 마주 대하거나 헤어질 때에 예를 표하는 것도 인사다. 또한 입은 은혜를 갚거나 치하할 일 따위에 대하여 예의를 차리는 일도 인사다. 따라서 인사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으면 본의 아니게 무례한 사람으로 보이기 쉽다. 다만 첫 만남에서 과한 격식은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고, 안면이 있다고 하여 인사를 생략하면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키며, 친밀하다고 생각해서 거리낌 없이 농(弄)으로 시작하는 인사는 관계의 문제를 야기(惹起) 하기도 한다.


또한 ‘친절’을 말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입’을 통해 나는 소리 ‘말’이다. 입에도 격(格)이 있다. 나는 단어, 말투, 말맛을 일컬어 ‘입격 3종 세트’라 부르는데 이를 통해 나 자신을 또는 상대를 평한다. 특히 상황과 상대를 고려하지 않고 내뱉는 단어, 말투, 말맛 중 한 가지라도 현저하게 구리면 천박해 보인다. 그 순간이 바로 ‘입’이 아닌 ‘아가리’가 된다.


영국 속담에 ‘친절은 결코 헛되지 않다’라는 말이 있다. 사전적 의미로 ‘친절’은 ‘대하는 태도가 매우 정겹고 고분고분함. 그런 태도’다. 사실 친절해서 헛될 일이 없다. 다른 것은 다 제쳐주더라도 내게 해로울 것이 없다. 내 마음이 한결 부드러워지고 푸근해지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노력하고 노오력 하는


jtbc 방송 <슈퍼밴드>에서 윤종신 님이 심사 중 “본래 인생은 원래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덜 불행하려고 모두 노력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감동받았음을 뜻하는 동시에 ‘밴드’라는 공동체 안에서 구성원 간 깊은 배려와 높은 공감력이 고스란히 드러난 美친 공연이었음을 전하는 심사평이었다.


나 또한 인생관이 그렇다. 불행하지만 덜 불행하려고 노력하는 것. 사실 내가 존중을 받고 싶은 모습으로 타인을 존중하는 것은 그리 쉽지만은 않다. 남이 나를 대했으면 하는 모습으로 말을 하고 뱉은 말에 책임을 다하려면 그만큼 행동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친절, 배려, 포용의 태도로 상대방과 거리낌 없이 마주하기 위해서는 매순간 노오력이 필요하다. 노력하고 노오력 하는 일상은 피로하고 피곤하다. 그럼에도 나는 노력하고 노오력 한다. 이것이 나를 나 답게, 나를 나로서, 소중히 대하고 품위 있게 만들어 주는 주춧돌이다.




매거진의 이전글낭만적 실패와 그 후의 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