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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짓기와 글쓰기의 차이

by 리얼라이어

'글짓기'와 '글쓰기'는 무슨 차이가 있을까?


박규철 교수님의 책 <소논문 쓰기, 어떻게 할까?>에서는 '글짓기'는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기반으로 하여 표현하는 것'이라면 '글쓰기'는 명확한 이론과 근거를 기반으로 사실적인 글을 쓰는 것'이라고 하면서 '글쓰기의 핵심은 얼마나 나의 생각을 설득력 있게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는가'에 방점을 찍어 '글짓기'와 '글쓰기'의 차이를 설명했다.


반면에 이오덕 선생님의 책 <글쓰기 어떻게 가르칠까>에서는 '글쓰기 교육의 목표는 아이들을 정직하고, 진실한 사람으로 키우는 데 있다. 곧, 아이들의 삶을 가꾸는 것'이라고 하면서 '글짓기'는 ‘삶을 떠나 거짓스러운 글을 머리로 꾸며 만드는 흉내 내기 재주를 가르치는 것'이고, '글쓰기'는 참된 삶을 가꾸는 정직한 자기표현의 글을 쓰게 하는 교육'이라고 논(論)했다.


위에서 박규철 교수님은 '학문적 글쓰기 방법론'을, 이오덕 선생님은 '교육적 글쓰기 방법론'에 집중하여 '글짓기'와 '글쓰기'의 차이를 저서에서 밝혔는데, 이는 독자(讀者) 대상에 따른 두 저자의 관점으로 볼 수 있다.


대학에서는 자신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입증하는 '학문적 글쓰기'에 목적이 있다. 즉, 시나 소설처럼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문학적 글쓰기'와 달리 어떤 주제에 관해 자신의 주장을 세우고, 논리적 근거를 찾아, 명확하게 전달하는 '글쓰기' 말이다. 그러나 많은 대학생이 과제, 소논문, 연구 보고서 등을 작성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기에 학생들의 눈높이에서 해결 방법을 제시한 책이 <소논문 쓰기, 어떻게 할까?>인 것이다.


작고한 이오덕 선생님은 공무원으로 일하다가 마흔세 해 동안 교사로 아이들을 만났다. 생전에 교육자, 어린이문학가, 수필가, 언어학자, 교육운동가, 한글운동가, 어린이 문화운동가로 불려 오며 어린이를 지키고 살리는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 운동을 실천했다. 그런 선생님의 책 <글쓰기 어떻게 가르칠까>는 교사, 학부모 더 나아가 우리나라 교육 현장과 사회에 글쓰기의 본질이 무엇인지 일러준다.


출처 : 예스 24 화면 캡쳐

난로는 교실에 들어앉아 있으면서
불도 피우지 않고 뭐 하노
아이고 추워라
이빨이 우들들들
난로를 만져보니
얼음 같다
우리가 추운 게 아니고
난로가 더 춥다


선생님의 책에는 진짜와 그렇지 않은 다양한 글쓰기 예들이 나온다. 그중 위의 시는 초등학교 어린이의 글인데 솜씨는 미숙하지만 솔직한 글쓰기가 돋보인다. 그래서 차가운 난로와 추운 교실의 분위기를 한껏 느끼게 해 준다. 이렇듯 선생님은 읽는 이에게 울림을 주기 위해서는 서툴더라도 정직한 글쓰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마치 내가 보고 느낀 것처럼 그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되도록 말이다.


문병로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옵투스자산운용 대표는 <[세상 읽기] 겉도는 만큼 경쟁력은 떨어진다 (매일경제 / 2019.02.07)>를 통해 이오덕 선생님의 책 <글쓰기 어떻게 가르칠까> 내용을 언급했다.


중1 학생이 쓴 백일장 수상작이다. "… 내가 언제 몰래 가도 산은 늘 그곳에 머물러 준다/산이 푸름을 토할 때면 불볕도 푸름에 녹아 바람이 된다/…/산의 정취에 취해 수풀을 해치며 푸름을 먹으며 푸르름 속으로 내가 빨려 들어가고 있다/내 마음은 청포도 알같이 부풀어만 간다/…/산의 메아리 속에 산의 생명력이 아련히 들린다." 기교 있고 잘 썼지만 읽고 나면 여운이 없다. 가슴으로 쓴 글이 아니라 머리로 쥐어짜 낸 글이기 때문이다.

이런 시를 쓰던 어린이가 대학에 가면 이런 류의 수필을 쓰기도 한다. "… 너무도 잔인하게 나의 허물을 벗겨내는 칼날 같은 가을의 냄새 바로 그것이기에 인간이라는 무서운 조건하에서 진실로 삶 자체이고자 열망하는 숱한 사람들의 가슴속에 푸르뎅뎅한 아픔을 주는 가을." 가슴속에 푸르뎅뎅한 아픔을 주는 가을이 아니라 자기 소외로 인해 `푸르뎅뎅하게` 멍든 작자의 영혼이 보이는 듯하다.

'[세상 읽기] 겉도는 만큼 경쟁력은 떨어진다' 일부 내용 발췌 _ 문병로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옵투스자산운용 대표 _ 매일경제 2019.02.07


어렵다. 소개된 글이 관념적이고 상투적인 어휘 쓰임과 글쓴이만의 특유한 심상이 가득 찬 내용이라서 어렵게 느껴진다. 사실 우리는 대학 입시를 위한 국어 교육을 받고 자랐다. 지금은 과거보다 '쓰기'를 중요시 하지만 여전히 입시 문제 풀이를 위한 '읽기와 분석'에 자유로울 수 없다. 이렇다 보니 어릴 때 솔직한 글쓰기를 했어도 커가면서 우리나라 국어 교육에 길들여짐에 따라 가슴이 아니라 머리로 쥐어짜 낸 글쓰기가 될 수밖에. 그래서 이오덕 선생님의 책 <글쓰기 어떻게 가르칠까>는 1998년 출간된 이레로 아직까지 많은 부모와 초등교사에게 환영받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오덕 선생님! 고맙습니다!


| 책 <빨간 연필> 줄거리


민호가 가장 하기 싫은 숙제는 일기 쓰기다. 솔직하게 써야 하는 일기를 다른 사람이 읽기 때문이다. 삼 년 전, 부부싸움을 하는 엄마, 아빠 얘기를 일기에 썼는데 이것을 본 선생님이 엄마와 상담을 했다. 민호는 엄마의 불화살을 맞고 이때부터 비밀 일기장과 검사 맡을 일기장을 따로 만들었다. 퇴근한 엄마가 민호의 글짓기를 읽으며 기뻐하지만 민호는 수아의 유리 천사가 계속 마음에 걸린다. 자기 전 민호는 하기 싫은 일기 숙제를 위해 빨간 연필을 잡았다. 빨간 연필은 신들린 무당처럼 민호의 생각이나 의지보다 앞서 움직였다. 다음 날 일기 아래에 적힌 선생님의 칭찬 글을 읽은 민호는 글짓기를 할 때만 빨간 연필을 쓰기로 했다. 그리고 완전히 혼자서 이 비밀을 지켜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일요일 아침, 민호는 글짓기를 위해 다시 빨간 연필을 잡았다. 빨간 연필은 전래 동화를 패러디했다. 엄마는 민호가 예전과 달리 글짓기를 잘하는 모습이 행복하기만 하다. 민호는 저녁을 먹고 친구들이 어떻게 글짓기 숙제를 했는지 궁금해서 과제 방을 열어 살펴봤다. 댓글을 보니 공격적인 내용도 있지만 대부분 좋은 평이었다. 결국 민호의 글짓기 '호랑이보다 무서운 것'은 이달의 글로 뽑혔고, 친구가 그려진 그림과 함께 교실 뒤 게시판에 걸리게 됐다. 민호는 그 어느 때 보다 가슴이 설렜다.


<빨강 연필> 세 번째 목차 '안녕? 비밀 친구'와 네 번째 목차 '호랑이보다 무서운 것'의 줄거리다. 알라딘에게 지니가 있었듯이 민호에게는 빨간 연필이 지니다. 알라딘은 지니에게 세 가지 소원만을 말할 수 있지만 민호는 빨간 연필을 잡기만 하면 글짓기뿐만 아니라 하기 싫은 일기 쓰기 숙제도 끄떡없다. 그런데 민호의 비밀 일기장 탄생에 얽힌 얘기를 읽고 보니 앞서 언급했던 이오덕 선생님이 논(論)했던 '글짓기'와 '글쓰기'의 차이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뿐만 아니라 숙제로서의 일기 쓰기에 관해 한 번 짚고 넘어가고 싶어 졌다.

나는 국민학교를 다닌 세대다. 지금의 초등학교로 명칭이 바뀐 것은 광복 50주년을 맞아 민족정신에 걸맞은 새 이름으로 바꾸기로 결정한 1995년 8월 이후다. 내가 다녔던 국민학교 시절이던 지금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딸아이던 숙제로서의 일기 쓰기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일기 쓰기가 자기표현의 글을 쓰게 한다는 교육의 목적에 공감한다. 하지만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숙제'이기 때문에 담임 선생님의 '검사'가 필수인 초등학교 일기 쓰기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토론 주제로서 '일기 검사'는 개인적으로 찬반 모두 동감한다. 찬성으로서 두 가지 큰 이유는 맞춤법, 띄어쓰기와 같은 교정을 받을 수 있다는 것과 선생이 학생에 관해 비대면으로도 이해하고 관찰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점이다. 반면에 반대로서 두 가지 큰 이유는 사생활 침해와 일중의 숙제로 인식되어 일기 쓰기의 본래 의미를 잃어버리거나 글쓰기 습관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주인공 민호가 비밀 일기장을 만들게 된 계기와 담임선생에게 칭찬 도장을 한 번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숙제로서의 일기 쓰기에 흥미가 떨어졌던 것 모두 일기 검사를 반대하는 적합한 사례다.


따라서 일기 쓰기는 학교 생활지도와 국어 기초교육이 필요한 저학년에서 시행하고, 고학년이 되는 4학년부터는 저학년 때 훈련된 일기 쓰기를 자율로 하되 생활 글쓰기 과제를 부여하여 글쓰기 교정을 받을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일기 쓰기'가 자기표현의 글을 쓰게 한다는 교육의 목적이라면 '일기 쓰기'야 말로 자발적 의사에 따라 선택하고 결정하는 '자기 주도 학습'으로 이뤄져야 한다. 학교교육의 경우, 통상적으로 정형적 교육의 성격상 표준화된 교육과정에 의해, 교사의 주도하에, 타율적인 교육이 실시되므로 '일기 쓰기 = 숙제 = 검사'의 등호로 이뤄진다. 그래서 이 땅에서 초등교육을 받은 사람 대다수가 정직한 글쓰기는 어렵지만 관념적이고 상투적인 어휘로 글을 쓰는 일이 보다 편안하게 느껴지는 이유라고 생각된다. 뿐만 아니라 <빨간 연필>의 민호가 가장 하기 싫은 숙제로 '일기 쓰기'를 지목했다는 것은 작금의 초등교육이 글쓰기 교육에 관해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비록 동화 속 얘기라지만 현실도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 패러디


<빨강 연필> 네 번째 목차 '호랑이보다 무서운 것'편에서는 민호의 빨간 연필이 전래동화를 패러디한 글짓기가 이달의 글로 뽑혔고, 친구가 그려진 그림과 함께 교실 뒤 게시판에 걸리게 됐다.


패러디란, 문학 특정 작품의 소재나 작가의 문체 그리고 영화, 연극, 드라마 등의 내용이나 이야기의 전반적 흐름, 등장인물의 말투 등을 흉내 내어 우스꽝스럽게 표현하는 방법을 일컫는다. 패러디는 원작을 흉내 내어 약간 변형시키거나 과장하여 풍자나 해학의 효과를 얻기 위한 경우가 많다. 또한 모방을 통해 권력적 허위의식이나 현실의 억압적 요소를 조롱, 비판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더욱이 지금과 같은 디지털 시대에서는 원작, 원본을 쉽게 접할 수 있고 이를 뒤틀어 비꼬기가 매우 쉬워졌다. 때문에 인터넷 이용자 누구나가 패러디된 콘텐츠를 가볍게 소비하고, 개인 SNS 계정을 통해 콘텐츠 확산에 중심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또 다른 n차 패러디물 창작의 주체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디지털 시대에는 패러디가 넘치다 못해 난무하다. 생산적인 패러디는 통찰력을 일깨우거나 공론의 장을 만들어 주는 선한 영향력이 있는 반면에 오직 재미만을 추구하는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패러디는 비판성을 상실한 저급하고 경박한 감정 배설의 창구 기능일 뿐이다.


디지털 시대의 패러디 콘텐츠 : 생산적인 패러디(좌)거나 자극적인 패러디(우)거나 _ 포털 사이트 뉴스 카테고리 캡쳐


패러디가 원리, 원칙을 고수할 필요는 없지만 오직 재미와 가벼움만을 추구하는 기능만 추구한다면 이는 패러디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하겠다. 좋은 약도 적재적소(適材適所)에 써야 효과가 있고, 모든 사물(事物)이 정도(程度)를 지나치면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 적합하지 않고 적당하지 못한 패러디 콘텐츠는 결국 누군가를 가해자와 피해자로 만들어 버릴 수 있음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 어휘 학습지 구성


<빨강 연필> 세 번째 목차 '안녕? 비밀 친구'편부터는 바로 이전에 시도했던 방법을 이어가기로 했다. 학습할 어휘가 들어간 문장을 쓰고 어휘의 뜻, 유의어, 반의어를 익힘 노트에 쓰는 방식으로 구성하는 대신 예문, 속담, 관용구는 쓰기보다 큰 소리로 읽으면서 눈으로 익히는 방법이 딸아이에게 맞아 보였기 때문이다. 학습한 어휘를 가지고 짧은 글짓기까지 짓는 것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이번 편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발음과 표기가 혼동되는 낱말 바르게 사용하기다. ‘어떡해’와 ‘어떻게’는 발음이 유사하지만 쓰임이 매우 다르다. '어떻게'는 '상태나 성질 등이 어찌 되어 있다'를 뜻하는 '어떻-'에 '-게'가 합쳐진 말이다. 따라서 '어떻게 쓸 것인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처럼 쓰면 된다. 반면에 '어떡해'는 '어떻게 해'가 줄어든 것이기 때문에 '나 어떻해'가 아닌 '나 어떡해'로 써야 맞다.


또한 띄어쓰기도 그렇다. 본문에서 '창밖에 해가 지고 있었다. 민호는 해 질 녘의 빛이 좋았다. 베란다로 나가 서쪽 하늘에 넓게 퍼진 붉은 노을을 바라보았다.'라는 문장이 있다. ‘해 질 녘’은 '(해가) 지다'의 관형사형인 '(해가) 질' 뒤에 의존 명사 '녘'이 쓰인 것으로, '해(가) 질 녘'과 같이 띄어쓰기한다.


2020년 한글날을 앞두고 취업포털 사람인이 성인남녀 2244명을 대상으로 ‘맞춤법 등 한글 표기에 어려움을 느끼는지 여부’를 조사한 결과, 59.8%가 ‘어려움을 느낀다’고 답했다. 이중 ‘띄어쓰기’(64.6%, 복수응답)가 1위였으며, 근소한 차이로 ‘맞춤법(62.6%)’이 뒤를 이었다. 조사에서도 나타났듯이 띄어쓰기는 나 또한 어려움을 느낀다. 물론 브런치처럼 온라인 기반 글쓰기 도구에는 맞춤법 검사 기능이 있거나 MS 워드, 한글과 같은 문서 도구에서 지원하는 편집 기능을 사용하면 어려움 없이 해결할 수 있겠지만 어떻게 보면 이러한 디지털 문명이 오히려 맞춤법을 배우고 익히는 데 있어서 장애가 되는 것 같다. 모바일 시대 이전에 전화번호 10개는 거뜬히 외웠지만 지금은 외울 필요도 없고 외우려 하지도 않는다. '빅스비, 아내에게 전화해줘' 이렇게 음성으로도 전화를 걸 수 있는데 뭣하러 전화번호를 외우겠는가!


| 어휘 익힘 노트 확인


네 번째 목차 '호랑이보다 무서운 것'편에서 민호의 빨간 연필이 전래동화를 패러디한 글짓기처럼 딸아이도 패러디 글짓기를 하게 했다. 금도끼와 은도끼, 여우의 재판,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자린고비 이야기, 은혜 갚은 두꺼비 중 한 가지를 선택하여 패러디 글짓기를 하게 했는데 딸아이는 금도끼와 은도끼를 선택했다.


흠, 뭐랄까? 패러디의 기능은 살렸지만 내용에 있어서 식상했다. 내가 창작한 것은 아니지만 예시로 콩쥐 팥쥐 패러디물을 읽게 했는데 너무 기대가 컸던 것일까! 내가 보기에 딸아이의 글짓기 실력은 중간 이상이라고 판단하고 있는데 이번 글짓기를 보니 점점 퇴보하고 있는 것 같다. 글씨도 지렁이처럼 기어가거나 새처럼 날아가 있어서 집중하지 않고는 읽기가 쉽지 않았다.


내가 아빠라서 긴장감이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글쓰기 대회나 백일장처럼 상을 주는 게 아니라서 그런 것일까? 원하는 것과 필요한 것은 다르다. 내가 딸아이에게 원하는 것과 딸아이가 필요한 것에 깊은 괴리가 생긴 것 같다. 달라도 너무 다른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 피드백


"아빠펜이 어려워?"

"어려운 건 없는데 좀 힘들어"

"그래? 뭐가 힘든지 윤쌤에게 알려주면 힘들지 않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볼게."

"어... 그게 힘들다기보다... 재밌고 좋은데... 난 윤쌤과 대화하면서 하면 좋겠어."

"어떻게?"

"대화하면서 문제도 같이 풀고, 글짓기도 같이 하고."

"알았어. 대화하면서 같이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볼게. 그런데 전부 그렇게 할 순 없을 것 같아. 대신 대화하면서 할 수 없는 것은 네가 직접 하되 윤쌤이 붙어서 코칭할게."

"오케이"

"나도 오케이"


바로 이전 피드백 시간에 딸아이와 약간의 냉전이 있은 후, 이번엔 내 마음가짐과 태도를 다잡고 피드백 시간을 보냈다. 분위기는 좋았다. 이제 딸아이와 대화하면서 어휘 학습을 할 수 있는 방법만 찾으면 된다. 시행착오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흔히 백일장(白日場)을 국가나 단체에서 글짓기를 장려하기 위하여 실시하는 대회로 부른다.


백일장 어원을 찾아보면 사전에서는 '조선 시대에 각 지방에서 유생들의 학업을 장려하기 위하여 글짓기 시험을 실시하던 일'로 표기되어 있는데, 달밤에 주로 뜻이 맞는 사람들이 모여 친목을 도모하고 시재를 서로 견주어 보기도 하는 망월장과 대조적인 의미로서 대낮에 시재를 겨룬다 하여 생겨났을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백일장은 제한된 공간과 시간 안에서 정해진 시재를 가지고 작품을 쓰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온전히 참가자의 능력을 평가할 수 있다.


학창 시절에 백일장에 나가 장원도 했고, 여러 대회에서 다수의 상도 받는 맛을 봤다. 이렇게 상을 받으면 월요일 아침 조회에서 내 이름이 호명되어 전교생이 보는 앞에 상장과 부상을 받는 멋도 부려봤다.


수학을 잘하는 친구가 미분과 적분을 자신 있게 풀어내듯이 나는 특기란에 자신 있게 '글짓기'를 써넣을 수 있었던 학창 시절의 유일한 필살기였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단지 글 쓰는 것을 좋아해서 능력에 비해 과분한 결과를 얻었을 뿐, 당시 내 글은 머리로 꾸며 만드는 흉내 내기 재주에 지나지 않았음을 오랜 시간이 지나 브런치에서 글을 다시 쓰면서부터 알게 됐다.


글쓰기의 참맛과 참멋은 유려하고 화려한 글솜씨가 아니라 담백하고 솔직한 자기표현의 수행이다. 배움에 끝이 없듯 수행도 끝이 없다. 부디 내가, 그대가 끝없는 자기표현의 수행에서 지치지 않고 묵묵히 그리고 꾸준하게 글쓰기를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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