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로는 교실에 들어앉아 있으면서
불도 피우지 않고 뭐 하노
아이고 추워라
이빨이 우들들들
난로를 만져보니
얼음 같다
우리가 추운 게 아니고
난로가 더 춥다
중1 학생이 쓴 백일장 수상작이다. "… 내가 언제 몰래 가도 산은 늘 그곳에 머물러 준다/산이 푸름을 토할 때면 불볕도 푸름에 녹아 바람이 된다/…/산의 정취에 취해 수풀을 해치며 푸름을 먹으며 푸르름 속으로 내가 빨려 들어가고 있다/내 마음은 청포도 알같이 부풀어만 간다/…/산의 메아리 속에 산의 생명력이 아련히 들린다." 기교 있고 잘 썼지만 읽고 나면 여운이 없다. 가슴으로 쓴 글이 아니라 머리로 쥐어짜 낸 글이기 때문이다.
이런 시를 쓰던 어린이가 대학에 가면 이런 류의 수필을 쓰기도 한다. "… 너무도 잔인하게 나의 허물을 벗겨내는 칼날 같은 가을의 냄새 바로 그것이기에 인간이라는 무서운 조건하에서 진실로 삶 자체이고자 열망하는 숱한 사람들의 가슴속에 푸르뎅뎅한 아픔을 주는 가을." 가슴속에 푸르뎅뎅한 아픔을 주는 가을이 아니라 자기 소외로 인해 `푸르뎅뎅하게` 멍든 작자의 영혼이 보이는 듯하다.
'[세상 읽기] 겉도는 만큼 경쟁력은 떨어진다' 일부 내용 발췌 _ 문병로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옵투스자산운용 대표 _ 매일경제 2019.02.07
민호가 가장 하기 싫은 숙제는 일기 쓰기다. 솔직하게 써야 하는 일기를 다른 사람이 읽기 때문이다. 삼 년 전, 부부싸움을 하는 엄마, 아빠 얘기를 일기에 썼는데 이것을 본 선생님이 엄마와 상담을 했다. 민호는 엄마의 불화살을 맞고 이때부터 비밀 일기장과 검사 맡을 일기장을 따로 만들었다. 퇴근한 엄마가 민호의 글짓기를 읽으며 기뻐하지만 민호는 수아의 유리 천사가 계속 마음에 걸린다. 자기 전 민호는 하기 싫은 일기 숙제를 위해 빨간 연필을 잡았다. 빨간 연필은 신들린 무당처럼 민호의 생각이나 의지보다 앞서 움직였다. 다음 날 일기 아래에 적힌 선생님의 칭찬 글을 읽은 민호는 글짓기를 할 때만 빨간 연필을 쓰기로 했다. 그리고 완전히 혼자서 이 비밀을 지켜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일요일 아침, 민호는 글짓기를 위해 다시 빨간 연필을 잡았다. 빨간 연필은 전래 동화를 패러디했다. 엄마는 민호가 예전과 달리 글짓기를 잘하는 모습이 행복하기만 하다. 민호는 저녁을 먹고 친구들이 어떻게 글짓기 숙제를 했는지 궁금해서 과제 방을 열어 살펴봤다. 댓글을 보니 공격적인 내용도 있지만 대부분 좋은 평이었다. 결국 민호의 글짓기 '호랑이보다 무서운 것'은 이달의 글로 뽑혔고, 친구가 그려진 그림과 함께 교실 뒤 게시판에 걸리게 됐다. 민호는 그 어느 때 보다 가슴이 설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