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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의와 토론, 따로 또 같이 1

by 리얼라이어

초등학교(국민학교) 시절 월요일 1교시는 '학급 회의'로 불리는 에이치알(HR) 시간이었다. HR(Homeroom)은 학교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일주일에 한 번 학급 규칙이나 활동 등을 계획·실행하기 위해 각 반마다 회장과 부회장의 진행에 따라 토의할 안건을 회의 석상에 내어 놓아 학급 구성원 간 의견을 나누는 시간이다.


간혹 서로 의견이 다른 문제를 놓고 거수로 찬반을 정하기도 하는데, 내 기억으론 환경미화, 수업태도, 청소당번, 상벌점, 짝 바꾸기, 운동회 계주 선발과 응원방법에 관한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이때 담임 선생님은 되도록 참여하지 않았다. 가끔 안건 자체를 심의할 상황이 발생하거나 격한 언쟁이 일어나 회의를 이끄는 회장이 중재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때 등장했다.


HR(Homeroom)은 누구나 공평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고 학급 일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함께 계획하고 실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어린 학생이다 보니 토의 과정 안에서 일어나는 찬반 즉, 토론에 임하는 마음이나 토론 분위기가 안정되지 못하여 불안하고 산란하다. 또한 찬반 결과에 따라 상황 종료 이후에 크고 작은 다툼도 일어나곤 한다. 물론 지금으로부터 약 삼십 년이 지난 내 경험상 얘기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토의와 토론을 혼동한다. 토의는 어떤 문제를 두고 서로 생각을 주고받으면서 의견을 나누는 것이다. 반면 토론은 서로 의견이 다른 문제를 놓고 자기 생각을 말하거나 따지고 의논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토론은 찬반의 성격을 지녔다. 많은 시청자가 알고 있는 시사/교양 프로그램 '100분 토론', '심야토론'이 그것이다. 사실 토의와 토론의 뜻은 다르지만 우리 일상에서 토의와 토론은 따로 또 같이 일어날 때가 많다.



작년 연초부터 올해 지금까지도 코로나 19 바이러스 때문에 이전의 완전한 일상을 아직도 되찾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다른 보통의 가정집처럼 우리 세 가족 또한 매 끼니와 메뉴 선정이 늘 고민을 넘어 고통스러움이 동반되었다. 더욱이 급식이 보장된 등교 횟수가 점점 줄어 온라인 화상 수업 일수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심해졌는데,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일 끼니를 위해 토의와 토론을 반복하느라 적잖게 맘 상한 일들을 생각하면... 어휴~


아내: 곧 저녁 먹을 시간이야. 각자 하나씩 의견을 내면 좋겠어.

나: 난 닭갈비! 포장해와서 집에서 먹자.

딸아이: 난 ##치킨!

나: 그럼 &&치킨으로 하자. ##치킨은 먹어 볼 게 없어.

딸아이: 엄마랑 난 좋은데 아빠만 별로라더라. 그리고 닭갈비는 지난주에 먹었다구요. 엄마는?

아내: 난 별로 생각이 없어. 두 사람이 결정에 따를게.

나: 각자 하나씩 의견 내라면서?

아내: 흠... 집에... 목살 있으니까 김치찜, 어때?

나: 이따 설거지 하기 싫은데...

아내: 아침, 점심 다 챙겼는데 나보고 저녁까지 내오란 거야? 오. 마이. 갓!

나: 집에서 해 먹는 건 난 반대! 나가서 먹는 건...

딸아이: 안돼!

아내: 맞아. 지금까지도 잘 참았는데 이제 와서 나가겠다고?

나: 사람들은 잘도 나가서 먹더구먼 뭐.

딸아이: 어쩌지?

아내: 배달음식도 이제 지겹다. 식비도 만만치 않고. ##치킨은 낼 먹으면 좋겠어.

딸아이·나: ...

아내: 거수로 결정하자! 닭갈비 손? 한 명! 치킨 손? 없고. 김치찜 손? 하나, 둘. 여보, 김치통에서 김치 꺼내오면 돼! 목살은 바닥에 잘 깔고. 아, 참.. 냉장고에 있는 소주는 냉동실로 고고씽!

나: 알아 알아, 안다구!!!

딸아이·아내: 오~



토의에는 다양한 유형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회의, 포럼, 패널 토의, 심포지엄, 세미나, 콜로키엄이 있다.


회의는 일상적으로 쉽게 접할 수 있다. 위의 우리 세 가족이 저녁 식사 메뉴에 관해 의견을 나눴던 것처럼 어떤 사항에 관해 다양한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다. 가장 쉽고 보편적인 토의 유형이지만 사회생활에서 직장 상사나 동료 간 마주하는 회의만큼은 가장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clause-3213670_1920.jpg 회의(會議) 때문에 회의(懷疑)가 생기기도 한다


아무리 회의하고 결정을 내려봤자 상사의 지시 한 마디면 방향이 바뀌거나 아무리 회의를 해도 달라지거나 딱히 결론이 없는 회의가 많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자기가 낸 의견, 아이디어, 결론만이 정답이라고 믿고 우기거나 한 얘기를 반복하면서 타인의 의견에 매번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직장 상사와 동료 간의 회의 자리였다면 더더욱 회의(會議) 때문에 회의(懷疑)가 생길 수밖에. 모든 회의가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많은 직장인들이 공감을 하기에 충분한 얘기일 것이다.


포럼은 공공의 문제를 가지고 전문가의 입장을 발표하면 청중이 공개적으로 질의응답하는 형식이고, 패널 토의는 특정 주제를 전문가 간 토의를 하며 청중이 질문하는 형식이다. 심포지엄은 학술적 문제에 대해 전문가가 발표와 강연을 한다. 마찬가지로 청중이 질문하는 형식을 띤다. 세미나는 학술적인 주제에 관해 깊이 있는 이해를 하기 위한 토의의 한 형식이다. 주로 학문과 기술의 이론, 발전 방향에 관해 토의를 한다. 콜로키엄은 권위 있는 전문가를 초빙하여 다른 사람들의 미숙한 의견을 바로잡아 주는 점이 세미나와 비슷하지만 다르다.


KakaoTalk_20210311_115341924.jpg 서울경제 썸 Thumb 유튜브 채널 _ '오바마의 마지막 대중연설, 감동의 순간' 영상 캡처


당신은 모두가 바라는
최고의 지지자이자 조직자입니다.
모든 분께 영원히 감사할 겁니다.
당신들이 세상을 바꿨으니까요.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자 44번째로 재임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퇴임을 앞두고 자신의 정치적 고향 시카고를 찾아 대통령으로서의 마지막 대중 연설대에 올랐다. 이날 시카고 시민들은 오바마의 연설을 직접 눈으로 보기 위해 영하의 날씨에도 새벽부터 줄을 서기도 했다는데, 오바바의 연설은 미 역사상 가장 긴 연설로 기록됐다.(서울경제 썸 Thumb 유튜브 채널 _ '오바마의 마지막 대중연설, 감동의 순간' 영상 보러 가기)


오바마의 연설은 감동을 주고 몰입하게 만든다. 대부분의 정치인들의 연설이 딱딱하고 건조하다는 느낌을 주는 반면에 오바마의 연설은 진정성이 담겨 있어 가슴 뭉클하고 희망을 품게 하는 그의 연설에 많은 사람들이 눈시울을 젖시는 광경을 미디어에서 자주 볼 수 있다. 그의 연설은 학창 시절부터 훈련된 토론이 씨앗이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토론 동아리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했고, 대학 시절에 토론 대회에서 수상을 한 경력도 있다.


토론 주제는 긍정이나 부정의 입장을 취할 수 있는 문제여야 한다. 따라서 토론에 임하는 참여자 또는 참가자는 각각 서로의 입장을 관철시키기 위하여 근거를 들어 자기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펼치기 때문에 총제적인 공부가 된다. 우리 사회에서도 조금씩 토론에 관심을 가지면서 토론 문화가 점점 확산되고 있다. 초등학교 교과서가 토론 수업으로 바뀌어가면서 토론 역시 조기 교육으로서 토론 교육에 관심을 갖는 부모도 많아졌다.


토론은 크게 자유 토론과 아카데미식 토론으로 나뉜다. 자유 토론과 아카데미식 토론의 가장 큰 차이점은 미리 정해진 순서에 따라서 정해진 시간 동안 발언하도록 엄격하게 규정된 규칙을 따르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있다. 앞서 언급했던 시사/교양 프로그램 '100분 토론', '심야토론'이 자유토론의 형태인데, 어느 한쪽이 말을 더 많이 하거나 상대방이 말하는 도중에 끼어들어서 발언을 중단시키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토론을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방송인 손석희 진행자처럼 자유 토론에서는 사회자를 둔다.


아카데미식 토론은 발언 시간과 순서를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자유 토론처럼 사회자를 따로 두지 않고도 찬반 양측 토론자들이 공평하게 발언할 기회를 보장받는다. 아카데미 토론은 개인의 의견이나 신념에 상관없이 찬성과 반대 중 어느 한쪽의 입장에 서서 오직 논제에만 집중해서 논리적 대결을 펼친다. 토론 대회에서는 찬반 양쪽을 번갈아 가면서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로써 의견을 합리적으로 교환하는 방식을 배우고 이를 토대로 유연한 태도록 보다 합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게 하는데 목적이 있다. 즉, 아카데미식 토론은 토론을 배우고 훈련할 수 있는 교육적 목적이 짙다.


토의와 토론은 목적이나 접근 방법에서 다르다. 하지만 문제 해결을 위해 서로의 의견과 정보를 교환하는 동시에 나와 타인의 생각에 차이가 있음을 확인하고 더 나은 방법을 찾아가는 의사결정 과정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아울러 토의와 토론은 관계 속에서 이뤄지는 삶의 배움이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상대방이 틀렸거나 나쁜 것이 아니다. 다름은 그냥 다른 것일 뿐 다른 것은 다양한 입장이 존재한다는 것으로서 인정해야 한다. 따라서 토의와 토론을 잘하기 위해서는 다양성 인정이 첫걸음이라 하겠다.



<토의와 토론, 따로 또 같이 2>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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