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슬로우 스타터 Mar 23. 2021

사람들은 어찌하여 계란을 던지는 것 일까?

민주주의에서 권력자를 향한 계란 투척은 성난 민중이 선택하는 분노의 표출

최근 신도시 투기 의혹이 불거진 한국주택토지공사(LH) 본사 건물 외벽에 흰 얼룩이 이곳저곳 묻어 있는 모습을 기사로 접했다. 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에 농민들이 본사 건물에 계란을 던진 것이다. 또 얼마 전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민생 탐방지로 찾은 강원 춘천시 중앙시장에서 중도유적지킴본부 50대 여성 회원이 던진 계란에 오른쪽 얼굴을 맞는 뜻밖의 변을 당했다. 계란이 터지면서 파편이 이낙연 대표의 마스크, 얼굴, 목은 물론 양복 상의로 계란이 흘러내린 뉴스가 화제가 됐다.


계란은 최근까지 높은 가격 탓에 소비가 둔화됐다. 지난해 말부터 조류인플루엔자(AI)의 영향이 계속 이어지는 데다 설 명절로 인한 수요 증가까지 겹친 탓이다. 그러다가 계란 값 상승세가 주춤하는 모양새인데, 업계에서는 명절 이후 소비가 급감해 일부 산지에서 계란이 남는 현상이 발생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 본부에 따르면 올 3월~5월 계란 생산량은 지난해보다 17% 감소할 것으로 예상돼 계란 산지 가격이 지난해 대비 최대 68%가량 뛸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식탁에 빠지면 서운한 음식이 계란이다. 설사 요즈음 식탁에 오르는 계란이 금(金) 값처럼 살벌한 밥상 물가의 주범이 된다 해도 쉽게 외면하기 어렵다.


계란은 영양을 고루 갖춘 완전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단백질의 아미노산 조성은 영양학적으로 가장 이상적이라고 하는데 흰자는 단백질이 주성분이고, 노른자는 지방과 단백질이 주성분이다. 계란의 가장 보편적인 이점은 성장과 발달을 돕고 심장 건강을 개선해 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계란은 열량이 낮아서 균형 있는 식사와 식단 조절이 필요한 Dieter에게 필수품이다. 또한 계란은 숙취 해소에도 좋다. 누구나 한 번쯤 과음 후 숙취와 속 쓰림에 시달린 경험이 있었으리라. 계란에는 체내 알코올을 분해하고 농도를 떨어뜨리는데 필요한 성분이 함유되어 있어서 과음으로 인해 예민한 위를 완화시켜주고 간의 회복력을 높여준다.  


이와 같이 계란은 사람에게 이롭고 많은 이에게 사랑받는 음식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사람들은 좋은 음식인 계란을 먹지 않고 던지는 것 일까? 춘천에서 계란 투척 봉변을 당한 직후 당황한 표정이던 이낙연 대표는 가던 길을 멈추고 마스크를 벗은 뒤 손수건으로 얼굴과 옷에 묻은 계란을 닦았고, 여분으로 갖고 있던 새 마스크를 상의에서 꺼내 교체하는 장면을 유튜브에서 봤다. 누군가는 해당 장면을 보고 통쾌함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당사자는 물론 지자자는 몹시도 불쾌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낙연 대표는 '그분들로서는 간절히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셨을 것'이라며 자신에게 계란을 던진 여성이 경찰에게 연행되자 처벌하지 말아 달라고 알렸다. 그 여성은 왜 계란을 투척한 것 일까? 이낙연 대표의 말처럼 계란을 투척한 여성은 무슨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 것 일까? 그렇다면 왜 하필 계란인 것 일까?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영어로 '계란 투척' 또는 '계란 세례'를 'Egging'이라고 한다. 서양에서 'Egging'은 미움을 받는 정치인이나 유명 인사 또는 건물에 계란을 던지는 행위로써 시위와 항의의 도구로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다. 간혹 토마토, 포토, 바나나, 초콜릿, 파이와 같은 또 다른 음식이 쓰이기도 한다. 하지만 구하기 쉽고 손안에 들어갈 정도로 작은 계란이 던지기 편리하다는 측면에서 보면 계란만 큼 던지기에 알맞은 것도 없을 것이다.


'Egging'은 휴일이나 특정 이벤트와 관련 있기도 하다. 영미권 일부 지역에서는 10월 30일을 'Devil 's Night'이라 하여 집에 계란을 던지고, 페인트 낙서를 하는 등 청소년이 심한 장난과 기물을 파손하기도 한다. 몇 년 전 한 캐나다 밴쿠버 한인 커뮤니티에는 집에 계란 투척을 당해 다소 황당했던 핼러윈데이 경험이 짧게 올라온 적이 있었다. 반면 영국에서는 핼러윈데이 때 아이들의 계란 던지기 놀이가 문제가 된 일도 있었는데, 2004년 슈퍼마켓 체인점인 아스다가 핼러윈데이를 앞두고 아이들이 계란을 집과 자동차에 던지는 등 지나친 장난에 피해가 급증해서 16세 이하에게는 계란 판매를 금지한다는 BBC 보도까지 있었을 정도다. 또한 브라질에서는 동의 유무 상관없이 생일을 맞은 누군가에게 장난으로 계란을 던지며 밀가루를 붓는다. 흡사 지금은 찾아보기 어렵지만 우리나라에서 졸업식이 끝나면 으레 뒤따랐던 계란과 밀가루 투척과 같은 소란스러운 '졸업빵' 장면을 그려보면 될 것 같다.


계란 투척은 불법 행위로써 형법에서 폭행죄에 해당된다. 2016년 사드 배치 후보지인 경북 성주군을 방문했던 당시 황교안 국무총리가 계란과 물병 세례를 받은 사건에 관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정부의 소통 부재와는 별개로 성주군민의 민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상황을 안이하게 파악한 박근혜 정부와 경찰의 오판이 불러일으킨 사태라는 지적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나 그 당시 이전에도 수많은 계란 투척 사례를 접했지만 계란 세례로 생명이 위험하다거나 사람이 죽었다는 기사는 찾아볼 수 없다. 작고, 가볍고, 던지기 쉽지만 신체 어디를 제대로 맞는다 해도 목숨을 잃을 정도로 위험하지 않다.


다만, 계란 세례를 당한 사람은 흘러내리는 노른자와 흰자를 빨리 수습할 수 없을 뿐이다. 더욱이 깨진 계란은 끈적거리고 비린내까지 풍기기 때문에 계란을 맞은 당사자는 무척 불쾌하고 수치심이 들었을 것이다. 반면에 계란을 투척한 당사자는 대상의 얼굴과 옷이 노란색과 흰색으로 범벅이 되어 쩔쩔대는 모습을 보며 통쾌한 감정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계란 투척은 주로 분노 또는 항의를 표출하는 의미와 투척 대상자에게 모욕과 망신을 안겨주려는 의도가 있다. 어쨌든 공격자는 계란 투척 대상자를 혼쭐 내준 셈이니 그래도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유럽의 정치사에는 계란 투척처럼 크고 작은 투척물이 이용된 것을 찾아볼 수 있다. AD 63년 네로 황제에 이어 등극한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가혹한 세금에 시달린 군중들로부터 항의의 표시로 순무 투척을 받았는데, 이는 기록으로 볼 때 정치적인 투척 1호 사건으로 알려진 바 있다. 당시 최고의 권력자를 향한 투척이라니! 개중에 붙들려 목숨을 잃었거나 육체적ㆍ정신적 고통을 당한 사람도 있었겠지만 투척의 역사가 꽤 오래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계란 투척이 본격적으로 발견된 시기는 중세시대로 알려졌다. 죄수에게 칼을 씌운 다음 눈을 못 뜰 정도로 계란을 던져 모욕을 주는 형벌을 받게 했다고 한다. 또한 엘리자베스 시대엔 연극을 찾은 관객들이 연기가 형편없다고 생각되면 썩은 계란을 던지곤 했다고 한다.


계란 투척이 정치적인 항의 수단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은 영국의 소설가 조지 엘리엇 작품 <미들마치(middlemarch)> 이후라고 한다. 이 소설은 1830년대의 영국 미들마치 지방과 그 주변 사회를 중심으로, 제1차 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되기 직전의 과도기적 상황을 그리고 있다. 소설의 주인공이 정치에 입문하기 위해 선거 유세를 하던 도중 형편없는 공약을 제시하다가 군중들로부터 계란 세례를 받고 유럽으로 피신하는 장면이 나온다.


근대 민주주의 발화지인 영국에서 계란 투척이 이렇게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음이 매우 흥미롭다. 영국 최초의 여자 총리였던 마가렛 대처를 비롯해 계란 세례를 받은 영국 정치인은 수 없이 많다. 지금도 계란 투척은 영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전통적인 항의 시위의 형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성난 민심은 어디를 향해 계란을 투척할까?


단연 정치인이다. 폭행죄 처벌을 감수하고라도 성난 민심은 체 역할을 하지 못하거나 권력을 부당하게 사용한 정치인에게 강력한 분노와 항의의 표출로서 계란을 던진다. 또는 처한 상황에 있어서 절박한 심정을 호소하기 위해 계란을 투척하기도 하며, 선거를 앞두고 발생하기도 한다. 대체로 공격자는 민중이지만 같은 정치인에게계란 투척을 당하는 일도 있다. 2014년 당시 안상수 창원 시장이 시의회 개회식에서 새로 건립하는 야구장 입지 변경에 불만을 품은 김성일 의원이 던진 계란에 맞는 일과 같은 경우다.


지방자치단체장은 물론 장관, 국무총리를 넘어 대통령까지도 계란 세례는 피할 수 없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9년 6월 김포공항에서 한 시민으로부터 IMF 경제위기를 초래한 주범이라며 붉은 페인트가 들어 있는 계란을 얼굴에 제대로 맞는 봉변을 당한 일은 유명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 시절 경기도 의정부시 유세에서 가슴과 허리에 계란을 맞았다. 이후 이 전 대통령은 2018년 3월에 110억 원대 뇌물수수와 다스 관련 350억 원대 횡령 혐의로 구속영장을 받고 동부 구치소로 향하던 중 탑승해 있던 호송차에 계란 세례를 받았다.


개인적으로 계란 봉변 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매우 인상적이다. 2002년 11월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 시절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우리쌀지킴이 대회 연설 도중 농민이 던진 계란에 턱을 제대로 맞았다.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치인들이 한 번씩 맞아줘야 국민들 화가 안 풀리겠나. 계란을 맞고 나면 문제가 잘 풀렸다'라고 농을 남긴 것이 여전히 기억에 자리하고 있다. 비록 농으로 웃어넘긴 일이지만 체면을 구긴 자신보다 분노한 민중을 바라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시선에 감탄할 따름이다.


계란 투척은 무릇 민주주의에서 성난 민심의 항의로만 쓰이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범죄나 부도덕한 행위에 관한 분노의 표출로도 이용된다. 앞서 얘기한 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에 농민들이 본사 건물에 계란을 던진 것 외에 아동학대로 모자라 살인과 시체유기까지 끔찍한 범죄 상황을 재현하는 경찰의 현장검증에서도 범죄자를 향한 분노한 시민들의 계란 투척이 발생한다. 고성은 물론 심한 욕설은 덤이다.


때론 어긋난 팬심으로 인해 계란 세례로 봉변을 당하기도 한다. 2018년 대한민국 축구대표님은 러시아 월드컵 조별 리그에서 1승 2패로 16강 진출에는 실패했으나 세계랭킹 1위인 독일을 격파해 유종의 미를 거뒀다. 그럼에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축구대표팀은 일부 팬들이 던진 계란 세례에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인터뷰에서 손흥민 선수가 밝혔듯이 16강 진출하지 못한 아쉬움은 크나 독일을 꺾고 한 발짝 성장한 모습을 보여줬기에 박수받을 만한 선수들에게 계란 투척이라니 축구팬인 나로서도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아마도 틀림없이 계란을 던진 그 누군가는 도량이 좁고 옹졸한 사람일 것이다.


계란 한 개의 무게는 약 40 ~ 60g 정도다. 계란을 맞아도 생명의 지장은 없지만 눈에 계란을 제대로 맞으면 실명 위험까지 있다. 이처럼 무게는 가벼울지 몰라도 치명상을 입힐 수도 있는 계란을 사람이 먹지 않고 민중이 거리로 들고 나오는 데는 필시 까닭이 있다. 민주주의에서 계란투척은 권력자를 향한 성난 민중이 선택하는 분노의 표출이자 항의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2021 재보궐 선거가 코 앞으로 다가왔다. 결국 투표로 정치인을 심판하는 것은 지혜롭고 현명한 유권자의 몫이다. 어떤 정치적 지도자가 유권자의 선택을 받던 맨손으로 호랑이를 잡고 황하를 타고 건너려는 무모함(포호빙하 暴虎馮河)식의 정치만용을 부린다면 언젠간 분노한 민심에 의해 작고 가벼운 계란으로 망신을 당할 수 있으니 당선자는 부디 명심하길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엔 늘 내가 있을 것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