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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우 스타터 Mar 15. 2021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엔 늘 내가 있을 것이다.

아빠가 딸에게 (to baby)

우리가 엄마를 위로하지 않으면 그 누가 위로해줄 수 있겠느냐며, 넌 오래전 그날처럼 모두 다 같이 같은 방에 모여서 자야 한다고 말했어. 결코 작지 않은 침대지만 이제는 셋이 나란히 눕기에 좁다고 느껴질 때 즈음, 네가 내 왼손을 살포시 잡더라. 네 왼손은 엄마의 오른손과 이미 깍짓손이 되어 있겠지? 어쿠. 내가 조금 늦었네. 깍지손이라면 내가 참 좋아하는데. 


사실 난 손깍지가 익숙하지 않았어. 손잡는 일도 쑥스러운데 깍짓손이라니! 정말이지 상상만 해도 고개가 가로저어지지 뭐니. 무엇보다 깍짓손은 불편해. 자유로웠던 손마디가 타인의 손마디로 인해 꽉껴질 때 느껴지는 갑갑함이랄까. 


그래도 난 깍지 낀 두 손을 베개 삼아 풀밭에 누워서 하늘을 쳐다보는 것은 좋아했단다. 지금이야 내가 그렇게 하려고 하면 너와 네 엄마가 유행성 출혈열이니 쯔쯔가무시병이니 하며 단념할 수밖에 없겠지만 말이야. 아니면 돗자리를 가져와서 누우라고 하겠지. 그리고 이내 나의 왼쪽엔 네가, 오른쪽엔 엄마가 내 양팔을 베개 삼고 셋이 나란히 누울 거야. 조만간 내 양팔은 저려오겠지. 겉으론 아무렇지 않은 듯 해도 난 이미 속으로 숫자를 세겠고. 백이십육, 백이십칠, 백이십팔... 아무래도 130은 넘기지 못할 것 같아. 그렇다 하더라도 이해해줘. 2분도 꽤 긴 시간이잖니. 


옛날 얘기 하나 해줄까? 내가 네 엄마를 만났을 때 엄마는 매우 독특한 분위기를 지녔는데 난 그 매력에 한껏 빠져버렸어. 그래서 난 네 엄마와 연애를 시작하기 위해 바지런해질 수밖에 없었지. 그도 그럴 것이 그 무렵 몇 명의 사내가 네 엄마 주변에서 알짱알짱했거든. 역시 네 엄마가 사람 보는 눈은 있더라. 결국엔 네 엄마와의 연애는 내가 차지했다만 손잡는데 꼬박 일 년이 넘게 걸릴 줄 누가 알았겠니. 처음엔 용기를 내어 잡으려던 손잡긴데 네 엄마가 호락호락하지 않으니 점점 오기가 생기지 않겠어? 카드 밑장을 빼는 타짜처럼 손 빼기 기술의 타짜랄까, 네 엄마는.  


네 엄마는 손 잡는 것도 한 걸음 한 걸음 점진적으로 하길 원했어. 스텝 바이 스텝(step-by-step)! 그래서 손바닥 맞잡기로 시작해서 새끼손가락 걸기를 지나 지금 한 이불속에서 너와 내가 잡은 깍짓손처럼 난 네 엄마와 그렇게 손을 잡게 됐단다. 네 엄마 말이 깍짓손은 '죽어도 놓지 않겠다'는 뜻 이래. 


아, 사랑하는 사람이 잡는 깍짓손은 그런 의미가 담겨 있구나. 이젠 내가 네 엄마의 평생 반려자로서 신뢰를 얻었구나라고 생각하니까 가슴이 벅차올랐어. 그래서 네 엄마와 잡은 깍짓손을 더욱 세게 잡게됐지. 이후로 깍짓손은 더 이상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았어. 내 손마디에 네 엄마의 손마디로 더해지는 그 끼임 정도가 깊을수록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매우 깊다는 증거로 생각하게 됐단다. 


딸아! 내 곁에서 곤히 잠든 내 딸아! 나는 그리고 네 엄마는 네가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항상 있을 거야. 우리의 삶이 영원할 순 없지만 허락된 시간만 큼 네 곁을 지킬게. 그런데 가끔 아주 가끔은 힘이 풀려 깍짓손이 느슨해질지도 몰라. 그렇지만 그럴 때마다 내가 다시금 이렇게 손을 고쳐 잡을게. 그러니까 염려 말고 잘 자렴. 아침에 만나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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