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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의 세계화'는 정부영역일까? 민간영역일까?

by 리얼라이어

결론부터 말하자면 둘 다 맞다. '한식의 세계화'는 정부영역이면서 민간영역이다. 다만, '관리자'와 '선수'로서 명확하게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즉, 정부는 '관리자'로서, 민간은 '선수'로서 이에 알맞은 역할과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관리자'가 아닌 '선수'로 뛸 때 시장이 교착상태에 이르거나 수렁에 빠진 사례를 우리는 많이 봐왔다. 행정력과 세금 낭비는 물론 목표치로 세운 수치 역시 한낱 공염불에 지나지 않았던 것을. '한식의 세계화' 역시 그랬다.


'선수'로 나선 정부


2009년 이명박 정부는 ‘한식세계화추진단’을 꾸리고 한식의 세계화 품목으로 김치, 떡볶이, 비빔밥과 함께 막걸리를 선정했다. 당시 농림수산식품부도 여기에 발맞춰 막걸리에 ‘Drunken Rice’라는 영문 이름 붙이면서 막걸리 표준잔을 만들고 국내 많은 제조업체가 참여해 국산 햅쌀로 만든 막걸리도 출시했다. 이후 햅쌀 막걸리를 홍보하기 위해 '막걸리의 날'도 만들어 선포했다.


그러나 MB 정부가 '선수'로 나선 '막걸리의 세계화' 전략은 실패했다. 수출은 줄었고 '막걸리의 날'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정부가 막걸리 수출을 밀어붙이자 크고 작은 업체들이 뛰어들어 출혈 경쟁으로 이어졌다. 뿐만 아니라 막걸리의 짧은 기한과 10도 이하 냉장 유통을 위해서 콜드 체인 시스템을 갖춰야 하는 등 당시 기술로 막걸리를 세계화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고 한다. 이를 두고 많은 전문가는 예고된 실패라고 말했다. 정부의 무리한 '한식의 세계화' 추진이 빚어낸 촌극이 아닐 수 없다.


이렇듯 이 전 대통령이 스스로를 ‘막걸리 국제홍보팀장’이라고 부르면서 막걸리 외교를 펼치기에 좋은 그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2009년 정부가 '한식세계화추진단'을 출범하고 이듬해 설립한 '한식재단'이 훌륭한 캔버스가 되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한식재단'은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 정부가 발 벗고 나서 꾸렸기에 민간 시장과 국민으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초기부터 이 전 대통령의 아내인 김윤옥 여사의 사업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고, 다음 정권인 박근혜 정부에서 태생한 미르재단과 관련한 구설에 오르는 논란 외 채용비리까지 터져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그러다 2015년 공공기관 지정, 2017년 '한식진흥원'으로 명칭 변경, 2019년 '한식진흥법' 공포 이후 2020년 특수법인 전환을 통해 현재는 농림축산식품부 산하의 공공기관이 되었다.


'관리자'로서 정부의 역할


'한식진흥원'은 한식 인프라 고도화, 한식당 경쟁력 강화, 전문인력 양성 및 고용창출, 한식산업 브랜드화, 한식 교육기관 지원, 한식 문화관 운영, 농식품 수출 촉진, 관련 산업 연계협력 강화와 같은 사업을 통해 한식 진흥을 꾀하는 중이다. '한식진흥'이란 한식의 우수성을 바탕으로 한식을 발전시키고 한식문화의 국내외 확산을 통해 농림축산식품산업, 외식산업, 문화관광산업 등 관련 산업을 발전시켜 대한민국 이미지를 향상하는 것을 말한다. 이제야 '관리자'로서 단정한 면모를 갖춘 셈이랄까?


다만, '한식진흥원'이 현재 '관리자'로서 어떤 정책 기조를 가지고 그 역할과 책임을 다하면서 하나둘씩 성과를 내고 있는지 , 그래서 업계는 체감을 하고 있는지는 모를 일이다. 또한 국민의 세금으로 행정력과 사업비를 지출하고 있으므로 성실히 세금 납부 의무를 이행하는 나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궁금하다.


안다. 정책이라는 것이 뚝딱 하고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성과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또한 그 어떤 정책이라도 모두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도 말이다. 그러나 정책에는 기본 원칙이 있다. 기본 원칙 같은 정책 기조가 없거나 바탕이 부실한 정책 기조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같다. 이 또한 우리가 많이 봐오지 않았던가.


‘진흥’이란 것이 도약과 맞닿아 있다. 다음 단계로 성장하기 위한 동력에는 많은 것이 필요하지만 지원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문화예술 정책은 '팔 길이 원칙(arm's length principle)', 말 그대로 ‘팔 길이만큼 거리를 둔다’는 뜻으로써 ‘지원은 하되 간섭을 하지 않는다’는 기본 원칙을 가지고 공공지원을 시행하고 있다. ‘팔 길이 원칙’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로 이어졌으나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때 퇴보를 걸었고, 현 정부인 문재인 정부에서 다시 그 원칙을 이어가고 있다.


정부 정책이 실패로 돌아가면 언론에선 '세금'이 아닌 '혈세'로 바꿔 혈세 낭비를 지적한다. 그러면 국민은 ‘공무원이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 '아이고, 내 피 같은 세금'하며 냉담한 반응과 정부 정책에 불신이 생길 수 밖엔 없다. 그래도 정책에 따른 사업비나 지원금을 지출하면 그때부터 이래라저래라 하면 안 될 것이다. 그래서 사업비나 지원금을 내어 주기 전에 치밀한 검토와 전후 사정을 두루 살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엄중한 사후 평가를 적용해야 한다.


믿고 맡겼다가 잘 못되면 누가 책임질 거냐고? 안다. 많은 공무원의 이런 우려도 충분히 이해한다. 그래도 믿고 맡겼다가 잘 못되지 않도록, 설사 그렇게 되더라도 절차와 원칙에 맞게 일을 해야 한다. 문제가 생기면 지속적으로 보완하면 될 일이다.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것이 ‘진흥’에 어울리는 기본 원칙이라고 생각한다. 지난날 어마한 세금을 퍼부었다가 낭패를 봤던 정부 추진 사업이 ‘한식의 세계화’다. 허물과도 같은 이전 과오를 ‘한식진흥원’이 ‘진흥’에 합당한 ‘관리자’의 자세와 원칙에 근거한 정책 기조로서 민간 시장에 활력소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내가 '한식의 세계화'를 보는 세 가지 시선


정부는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 인프라를 구축, 연구개발, 인력양성 등 투자 활성화와 식문화 홍보에 아낌없이 노력하고 있다. 민간에서도 한식을 고부가 가치 상품으로써 세계적인 음식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우리 교포들도 한식 홍보를 위해 각 나라의 식문화와 조화를 도모하고 있다. 그럼에도 음식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입맛이 쉽게 변할 리도 없다. 음식 하나 만으로 세계화가 이뤄지지도 않을 것이다. '한식의 세계화'는 지금 어떤 용모인가?


현지화


개인적으로 '세계화' 에는 '현지화'가 필수라고 생각한다. 한식이 국경을 넘어 세계로 뻗어 나갈 땐 더 이상 우리가 먹었던 맛 그대로 재현하기가 어려울뿐더러 그것이 산업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 즉,

'현지화'에서 성과를 내고 있음은 곧 현지에서 먹은 사람의 입맛을 반영한 결과라 하겠다. 입맛은 나라마다 지역마다 제각각이다. 또한 식재료도 같을 수 없다. 따라서 한식이 세계적인 상품이 되려면 당연히 현지의 입맛에 맞게 바뀌어야 함은 당연하다. 중국의 ‘차폰’이 일본에선 ‘잔폰’이 되었고, 우리는 고추기름이 넣어 ‘짬뽕’으로 먹고 있다.


입맛뿐만 아니다. '한식'이라는 것에 갇혀 일반 전통 음식, 궁중음식, 종가(반가) 음식, 사찰음식만을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2010년 국정감사에서 '한식의 세계화' 사업 예산이 치킨집에 쓰였다며 한 국회의원이 '양념치킨, 라이스 치킨, 불고기 치킨 덮밥이 우리 전통음식이냐. 우리가 언제부터 치킨을 기름에 튀겨먹었느냐'며 비판했다고 한다. 묻고 싶다. 한식이 무엇인지, 가장 한국적인 음식이 무엇인지 말이다. 물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 국회의원이 있을까 만은 내가 생각하는 '한식'은 우리 식탁에 오르는 음식 모두가 '한식'이다. 치킨도 될 수 있고, 피자도 될 수 있고, 햄버거도 될 수 있다. 우리식으로 바꿔 상품화한다면 그것도 '한식의 세계화'로 볼 수 있지 않을까?


고유성


작년 tvN 예능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록'에서는 김치 가루를 개발한 안태양 대표가 출연했다. 안태양 대표는 필리핀에서 떡볶이를 팔다가 필리핀 최대 식품 유통 업체 GNP 트레이딩의 회장의 눈에 들어 글로벌 사업 본부장으로 합류해 한국식 치킨집 ‘오빠 치킨'과 고깃집 ‘K펍 바비큐’를 론칭해 소위 대박을 터뜨렸다. 이후 자신의 회사를 설립해 뿌리는 김치 가루인 ‘서울시스터즈 김치 시즈닝’을 개발해 아마존 칠리파우더 부분 1위에 등극했다.


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피자다. 맵고 짜고 신 맛에 김치가 완벽한 비율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한 안 대표는 미국 시장에서 인기 있는 요소를 무조건 포함해서 '김치 시즈닝'을 만들었다고 한다. 특히 '비건'의 경우 Non-GMO, 글루텐프리가 그것인데, 철저한 분석을 바탕으로 현지에서 원하는 것을 무장했기에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고,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제품으로 자리 잡게 된 배경이다. 즉, 김치의 고유성을 살려 '한식의 세계화'의 또 다른 표준을 제시한 셈이다.


고추장을 필두로 한 한국 양념 수출이 지난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발표한 '유망품목 AI리포트-소스류'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소스류 수출은 전년 대비 25.8% 증가한 3억1백72만 달러로 역대 가장 많았다고 한다. 요리할 때 특정 맛을 낼 수 있는 '한국식 소스'에 대한 해외의 수요가 늘어나 수출로 이어진 것이다.


위 두 사례에서 보듯이 지금까지와는 형태가 완전히 다르다. 꼭 떡볶이와 같은 완성형 음식으로만 국한시킬 필요가 없음을 보여줬다. 우리 입맛을 담은 양념도 '한식의 세계화'가 될 수 있다. 한 번 굳어진 입맛은 언어와 같다. 그만큼 쉽게 변할리 없다. 그러나 한국적인 맛이 조금씩 세계인의 입맛을 삼투하고 있다. 곧 익숙해질 것이다.


민족주의


글을 쓰면서 '세계화'라는 틀에 한식을 놓고 보니 무겁고 위험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세계화'는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국가 간 교류가 증대하여 개인과 사회집단이 갈수록 하나의 세계 안에서 삶을 영위해 가는 과정을 가리키는 사회학 용어다. '세계화'가 바람이 되어 지구촌을 하나로 묶는 속도가 거세질수록 역설적으로 민족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어서다. 민족 정체성과 민족주의와 다르다. '세계화' 시대에 내 존재를 지켜주는 민족 정체성은 더더욱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그것을 혼동해 보편적 기준에서 벗어나면 증오를 불러오고 충돌을 유발하게 되는 위험한 결과를 낳는다.


일례로 최근 중국산 절임배추 쇼크로 차이나포비아가 확산됐다. 물론 이전에도 중국에서 수입한 김치에서 납이 검출된데 이어 기생충 알까지 나왔던 때에도 차이나포비아가 있었다. 이 가운데 국산 김치를 일반 식당에서 판매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게 일었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크다. 2011년 정부가 김치를 '중소기업 적합 업종'으로 지정한 이후 2018년에는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 업종'으로 지정했기에 대기업이 일반 식당까지 김치를 납품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어려울뿐더러 더욱이 중국산 김치가 국산 대비 매우 저렴하다. 따라서 식당에선 값싼 중국산 김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대다수 우리나라 국민은 음식을 소비할 때 '중국산'하면 혐오, 공포로 받아들이고 더 나아가 증오의 대상으로 여기기도 한다. 정작 규제와 현실성 문제는 생각지 못한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반한 감정이 그것이다. 일본, 중국을 비롯해 동남아시아와 미국, 유럽과 같은 서구권에서 한국인과 한국 문화를 싫어하는 일이 온오프라인 세상에서 자주 발생하고 있다. 이렇듯 '세계화' 속에 담긴 시대적 모순이 자칫 '한식의 세계화'로 불이 붙어 충돌과 대립을 가져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염려가 든다. 내가 너무 나갔나? 기우일까? 그럼 다행이다.


세계 속의 한식


한식이 세계 속에서 빛을 내고 있는 까닭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특히 작금의 코로나 19 대유행과 맞물려 한식에 관한 관심이 확대됐다. 극장, 공연장이 문을 닫다 보니 넷플릭스, 왓챠와 같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로 우리 대중문화를 접하는 세계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 콘텐츠에 등장하는 한식에 궁금증을 느끼는 사람이 많아진 덕이다. 뿐만 아니라 김치를 비롯한 한국 발효음식이 면역력에 좋다는 점이 해외 주요 언론에서 부각돼 건강과 영양을 위해서 기꺼이 한식을 찾는 듯하다.


물론 팬데믹이 끝나면 위 현상은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도 한식의 매력에 푹 빠져 직접 한국을 찾아 한식을 배워가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다. 네덜란드 식품유통회사인 ‘프레시 리테일’사에서 유명 셰프와 방송인으로 팀을 구성해 우리나라를 방문하여 한식을 배우고, 체험하고 돌아간 사례도 있다. 또한 세계에서 인정받는 한국인 세프도 한몫 해내고 있다. 한식 레스토랑 최초로 미슐랭 1스타를 받게 된 김훈이 셰프처럼 말이다.


한식은 우리의 생활양식 중 하나다. 곧 문화다. 문화는 사회의 관습, 가치, 규범, 제도, 전통 등을 포괄하는 총체적인 생활양식을 의미한다. 따라서 한식을 세계적인 음식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우리의 식문화와 특성에 관해 보다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우리 것에 관해 바로 알고 접근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으면 한식의 멋과 맛은 쏙 빼고 세계인의 입맛에만 초첨을 둔 국적불명의 음식이 될 것이 자명하다.


이후 각 나라의 식문화와 그들이 먹는 음식의 특성을 이해하는 일이다. 한때 정부가 나서 ‘한식의 세계화’를 강조하며 쏟아부은 예산의 결과가 어땠나? '우리가 맛있게 먹었으니까 다른 사람도 좋아할 거야'라는 생각으로 제품을 만들었으니 실패할 수밖에. 안태양 대표가 뿌리는 김치 가루인 ‘서울시스터즈 김치 시즈닝’을 개발해 아마존 칠리파우더 부분 1위에 등극할 수 있었던 것이 단순 운이었을까? 아니다. 바로 미국 식문화와 그들이 먹는 음식의 특성을 철저히 반영한 결과다. 음식은 문화다. 음식은 서로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다. 이롭게 안착하려면 조화를 이뤄내야지 돈이 능사가 아니다.


글을 마치려고 보니 장황하다. 처음 의도는 정부가 추진한 '한식의 세계화' 과정에서 과오와 바람직한 '관리자'의 모습에 관해 쓰려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담고 싶었던 내용이 많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저러나 한국인이 세계 어디를 가던, 세계인이 세계 어디에서 살든 간에 파전, 만두, 육개장, 호떡을 마치 한 끼 식사로 먹는 것처럼, 출출할 때 먹는 주전부리처럼 식당에서, 편의점에서 혹은 택배로 받아 가정에서 먹을 수 있는 날이 오긴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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