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춘천 가는 기차

우리 열차의 종착역은 그리움(날 기억해줘)입니다.

by 리얼라이어

기억은 왜곡되거나 사라질 수 있다. 반면 기록은 시간이 지나도,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다. 그래서 적확한 정보나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 경험을 되살려야 할 때 기록은 어느새 안도의 숨을 선물한다. ‘휴, 다행이다.’ 그럼에도 강렬한 인상은 굳이 기록하지 않더라도 잊지 않는다. 다만, 잊고 지낼 뿐 마음속 어딘가 고이 자리 잡고 있다. 나도, 너도, 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디냐? 엉아, 춘천 왔다!”


녀석! 벌써 삼 년이 훌쩍 넘었다. 말맛은 여전히 거들먹거렸지만 그게 매력인 친구다. 그런데 춘천에 온 이유가 참으로 싱거웠다. 단지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춘천 가는 기차> 노래를 듣다가 홍대에 다다른 운전대를 춘천으로 고쳐 잡았다고 한다. 마침 시간도 있었고 무엇보다 노래를 들으니 내가 떠올랐다는데, 여하튼 지금 난 성수동이라 전했다.


“노래 듣다가? 이런 미친놈 보소!”


나는 춘천 사람이다. 예술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강원도를 벗어난 시절이 거의 없다. 심지어 군 생활도 삼척에서 보냈다. 한 동안 강원도를 떠나 있었던 유일한 시간은 논산에 위치한 육군훈련소 3개월이 전부다. 이 같은 동선은 25살이 되던 해부터 변하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나를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춘천’하면 자연스럽게 내가 떠오른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닭갈비’와 ‘막국수’ 맛집 소개에 관한 질문은 단골 메뉴였다. 처음 몇 해는 소상히 답변했다. 그러다 인터넷에 검색만 하면 될 일을 가지고 귀찮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난 상대의 교통편, 구성원, 일정을 파악해서 대부분 대기줄을 서야 하는 이유 모를 맛집을 콕 짚어줬다. 특색은 없지만 맛으로 욕먹을 일 없을 것 같은 그런 곳으로 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런 날 알아차렸나? 춘천에 왔다고, 춘천 맛집을 알려 달라는 연락을 받은 게 언제인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도 낭만은 있네.”

“노래만 그래. 다 터널이야. 어떻게 된 게 운치가 하나도 없냐?”


운치가 없는 걸로 치면 도로보다 경춘선이 더 하다. 2009년 여름에 개통된 <서울춘천고속도로> 대신 기존 경춘국도(46번 국도)를 이용하면 굽이친 북한강 줄기 따라 불어오는 바람과 한껏 기분을 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경춘선이야 말로 효용성에 밀린 탓에 아담한 정취가 있는 풍경을 기대하기 어렵다.


오랫동안 단선으로 운행되던 경춘선은 2010년 끝자락에 복선 전철화, 직선화 하면서 터널과 교량의 비중이 매우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로서 기존의 역사는 폐쇄됐고, 새로운 곳에 신역사가 위풍당당하게 한자리를 꿰찼다. ‘뚜구닥, 뚜구닥’ 거린 정겨운 기차 소리도 이젠 ‘웅- 웅-‘대는 전철 소음으로 바뀌었다. 낭만만 아니라 옛 경춘선에 담긴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사라져 버린 것이다.


(c) 한국철도공사 블로그 캡처


<춘천 가는 기차>는 89년 8월 <김현철_Vol.1>에 실린 곡으로 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하며 대중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김현철의 대표 곡이다. 대입 재수를 하던 시절 여자 친구와 춘천 가는 기차를 탄 것이 계기가 되어 만들었다. 당시 경춘선이 완행열차다 보니, 서서 가다가 지쳐서 강촌역에 내렸다고 한다. 사실은 '강촌 가는 기차’였던 셈이다. 어쨌든 이 노랜 잊힌, 아니 잊고 지낸 그리운 사람, 그리운 기억을 마음속에서 다시금 꺼내 추억하게 해 준다.


(c) 네이버 지식백과 캡처


벌써 햇수로 14년째다. 결혼 후, 춘천과 서울을 매일 오가고 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것도 지금의 경춘선 덕분이다. 이런 나를 보고 사람들은 엄지를 치켜세운다. 공은 오로지 경춘선에 있다. 다만, 철로를 집어삼킨 터널을 지날 때마다 내 청춘의 모습도 조금씩, 조금씩 아련하게 되는 것이 몹시 서운할 뿐이다.

“전화 줘서 고맙다!”


퇴근 후, 녀석과 춘천에서 보려고 했지만 이 여름이 지나고, 가을 어느 날 혜화동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날 잊지 않고 기억해줘서 고맙다’라는 말을 차마 낮 간지러워서 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춘천 가는 기차> 노랫말은 우리네 지친 삶을 위로해 준다. 노래를 들으면 잊고 지낸 것들을 떠오르게 해 주고, 듣고 나면 나와 주변을 돌아보게 한다. 녀석이 무작정 춘천으로 온 계기 또한 이 노래의 역할이 컸음에 다시금 이 노래를 찾아들었다.


허니 이 노래는 내 인생의 노래 한 곡으로 꼽아도 손색없고, 제법 어울리지 않겠는가? 기분이 몹시 유쾌하다. 아마, 녀석도 김현철도 그럴 것이다.




(c) 리얼뮤직 유튜브 캡처

<춘천 가는 기차> <<<<<- 보면서 듣기

; 문화콘서트 난장 ; NANJANG Real live NANJANG (MBC 문화콘서트 난장)

; 2019.06.22 방송

; <김현철_Vol.1> 89년 8월

; 작사/작곡/노래 : 김현철


조금은 지쳐있었나봐 쫓기는 듯한 내생활

아무 계획도 없이 무작정 몸을 부대어보며

힘들게 올라탄 기차는 어딘고 하니 춘천행

지난 일이 생각나 차라리 혼자도 좋겠네-

춘천가는 기차는 나를 데리고 가네

오월의 내사랑이 숨쉬는곳

지금은 눈이내린 끝없는 철길위에

초라한 내모습만 이길을 따라가네

그리운 사람


차창가득 뽀얗게 서린 입김을 닦아내 보니

흘러가는 한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고

그곳에 도착하게 되면 술한잔 마시고 싶어

저녁때 돌아오는 내 취한 모습도 좋겠네

춘천가는 기차는 나를 데리고 가네

오월의 내사랑이 숨쉬는곳

지금은 눈이내린 끝없는 철길위에

초라한 내모습만 이길을 따라가네

그리운 사람 그리운 모습




keyword
작가의 이전글별 보러 갈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