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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 Oct 23. 2021

첫 경험

아버지 손을 떠나 홀로 떠나는 낚시

첫 경험에 대한 추억이 있으신가요?

저는 항상 아버지와 함께 낚시를 하다 보니 혼자 하면서 느낀 것들이 많습니다. 


이번 이야기는 제가 첫 낚시 입문하는 이야기입니다. 



아웃도어 아일랜드 2기 당첨: 섬 생활의 시작


  퇴사를 하고 1년 동안 나만의 사업을 찾아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오랜 기간 동안 회사 생활을 하면서 일종에 '번아웃'이 크게 왔던 거 같다. 사실 첫 번째 회사를 퇴사하면서 나만의 사업을 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지만 꾸준히 들어오던 '월급'에서 오는 안정감을 뿌리치지 못해 두 번째 회사로 들어갔고 역시나 얼마 버티지 못하고 결국 진짜 퇴사를 결정했다. 


  앱이나 웹 뭐든 개발하는데 자신이 있었던 나는 여러 가지 사업 아이템을 구상해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IT 분야에서 인기가 있는 인공지능이나 블록체인 세련된 기술을 접목할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세상에 대한 경험이 전무한 나로서는 해결할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는 멍청한 컴퓨터였다. 아주 작은 단위로 생각해 보았을 때 0과 1로 이루어진 컴퓨터 세상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었다. 


  결국 어디든 떠날 계획을 세웠다. 첫 번째 목표는 제주도였다. 제주도 한달살이를 계획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고 다양한 문화를 경험해볼 생각이었다. 물론 나의 번아웃을 치유하기 위함도 있었다. 경치가 좋은 곳에서 사업구상을 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컴퓨터 관련 일은 처다도 보지 않으려 애썼다. 컴퓨터가 싫었다기 보단 나의 시야를 넓히고 싶었다. 다양한 경험이 필요했다.


  막연히 혼자 제주도에서 방황하기엔 조금 겁이 났다.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커뮤니티를 다양하게 알아봤다. 그러던 중 무서운 알고리즘은 제주도가 아닌 다른 섬으로 보냈다. 내가 도착한 곳은 '아웃도어 아일랜드'. 거제도 장승포에서 10주 동안 지내며 다양한 아웃도어 활동을 경험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발견했다. 다양한 경험, 내가 평소에 좋아하던 아웃도어 활동, 다양한 사람들. 나에게 부족한 것이 이곳에 모두 있었다. 나는 당장 아웃도어 아일랜드에 지원서를 냈고 줌을 통한 화상 면접까지 진행을 했다.

  

  나는 아웃도어 아일랜드 2기에 선정이 되었고 나는 거제도 장승포에서 10주간 모험을 하게 되었다. 



가족 여행


  마침 아웃도어 아일랜더로 떠나기 전 코로나로 밀렸던 가족여행을 거제도 옆인 통영으로 가기로 했다. 역시나 가족여행은 바다. 아버지는 그동안 하나둘 정리한 낚시 장비 중 최소한의 낚싯대를 챙겼다. 낚시를 작정하고 떠난 가족여행은 아니었지만 우리 가족은 바다를 보면 참지 못한다는 것을 아버지는 알고 있었나 보다. 이곳저곳 통영을 돌아다니며 즐거운 가족 여행을 보냈다. 일정을 마무리하고 호텔로 들어왔더니 마침 뒤에 바다가 멋지게 펼쳐져 있었다. 해가 떨어진 후였지만 역시나 바다를 보면 참지 못하는 아버지는 바로 지렁이를 사 와 나를 대리고 바다로 나갔다. 어머니는 일일드라마 광팬. 어머니에겐 아주 중요한 시간이다. 아버지와 나는 건드리지 못하는 시간이다. 아버지와 둘이 먼저 가서 자리를 잡고 있기로 했다.


  밤낚시는 처음이었던 거 같다. 아버지와 나는 바다로 향했고 잔잔한 바다에 조금은 어색해했다. 동해바다는 어느 정도 파도와 함께한다. 하지만 통영에 바다는 정말 고요했다. 바다에 잔잔함에 빠져들었던 것도 잠시. 아버지는 낚시를 펼치고 지렁이를 낀다. 바다의 바닥을 공략하는 원투낚시. 무거운 추로 낚시를 바다 아래까지 내려 깊은 곳에 있는 고기를 노린다. 힘차게 낚시를 던져놓고 단둘이 잔잔한 바다에 함께 앉아 있었다. 퇴사를 하고 난 뒤여서 이런저런 이야깃거리가 많았다. 지난 회사 이야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미래 이야기. 쑥스러움이 많은 아버지는 아주 조금씩 깊은 이야기를 하신다. 많은 이야기가 있었지만 모든 이야기의 결론은 내가 조금 더 행복해졌으면 한다는 당부였다. 적당히 깊은 대화와 어색함을 깨 주는 고기의 입질. 바람 하나 없는 그 분위기가 너무나 좋았다.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가 밤낚시를 좋아하게 된 건.


  입질이 있어 나는 얼른 가서 낚시를 낚아챘다. 입질이 느껴졌다. 비장한 움직임으로 릴을 감아올렸다. '아나고'였다. 원래 이름은 붕장어. 일본식 발음으로 불리는 아나고는 장어같이 생겼다. 신나게 고기를 들어 올려 어망에 담았다. 고요한 바다와 바람 한점 없는 적당한 온도. 뒤이어 온 어머니와 여동생까지 합류해 우리 가족은 물 멍을 하며 말 그대로 힐링을 했다.


첫 낚시 준비


  통영에서의 낚시를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가족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나는 아버지에게 낚시를 알려달라고 했다. 처음으로 하신 말씀은 이 문장이었다. 


"지렁이도 못 끼는 게 무슨 낚시야 ㅋㅋㅋ"


어렸을 때부터 낚시는 아버지 같은 어른이 하는 스포츠. 물고기와 지렁이가 무서워 만지지 못하는 나에게는 아직 낚시는 멀어 보였다. 가족끼리 여행을 가면 나는 지렁이를 껴달라고 낚싯대를 들고 아버지에게 들이밀었다. 아버지는 한 번도 미루지 않고 언제나 미끼를 챙겨주셨다. 그러곤 나는 미끼가 끼어진 낚시를 바다에 던지기만 했다. 고기가 잡혀도 문제였다. 고기도 못 만지는 나는 여동생에게 다시 낚싯대를 들이밀었다. "잡았어! 이거 좀 빼줘!" 동생도 고기를 잘 만지는 건 아니었지만 수건으로 고기를 감싸 어떻게든 고기를 빼내 주었다. 그러곤 다시 나는 아버지에게 낚싯대를 들이밀어 미끼를 껴달라고 한다. 


  낚시와 함께한 세월은 길었지만 나는 흉내만 내고 있었던 거 같다. 그래서 더욱 내가 직접 낚시를 해보고 싶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지렁이를 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가득했다. 아버지가 낚시의 기본을 알려주기 위해 처음으로 알려주신 것은 매듭법. 총 3가지 매듭법을 배웠다. 줄과 낚시를 이어주는 매듭법. 줄에 고리를 만들 수 있는 고리 매듭법. 도래를 장착할 수 있는 도래매듭법. 이 세 가지로도 충분히 낚시를 할 수 있다고 하셨다. 이 세 가지 매듭법으로 통영에서 했던 원투 낚시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1. 낚시 매듭, 2. 도래 매듭


  두 가지 매듭법으로 낚시 부품을 끼어넣어 조립을 했다. 순서에 따라 낚시 줄에 끼고 묶었다. 바위에 낚시가 걸려 빠지는 경우가 있으니 미리 낚시를 만들어두면 좋기 때문에 아버지에 부품을 탈탈 털어 낚시를 만들었다. 나는 매듭법을 곧장 배웠고 혼자서 낚시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계속해서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아버지는 "아이고.. 거제도 고기 다잡을 기세 구만 허허" 하시며 흐뭇한 웃음을 지으셨다. 지렁이도 못 끼는 녀석이 낚시를 하겠다고 준비하고 있는 모습이 마냥 웃기셨나 보다. 하지만 나는 앉아서 낚시를 매며 조금 다른 생각을 했다. 아버지에게서 조금은 독립하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른이 되어가는 느낌이랄까.


  낚시를 다 준비해놓고 나니 엄청난 자신감이 들었다. 진짜 거제도 고기를 다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낚시채비를 하고 지으셨던 표정이 점점 이해가 된다. 강력한 무기를 손에 넣은 듯했다. 평소에 낚시채비를 아버지만 할 수 있었기에 어머니, 여동생 그리고 나는 낚시가 바위에 걸려 빠지면 항상 아버지에게 드리 댔다. 얼른 낚시를 끼워주고 조금이라도 낚시를 하기 위해 미리 낚시채비를 준비해 두셨다. 우리 낚시채비를 해주느라 정작 아버지에 낚시는 채비를 해주고 바라만 보는 낚시였다. 평소엔 아무 생각 없이 다니던 낚시였지만 아버지에 낚시 사랑과 준비성이 느껴졌다. 어쩌면 우리 가족에게 낚시의 입질을 경험하게 해 주려고 부단히 도 애쓰셨던 것 같다. 그중에 특히 나는 아버지의 낚시영업에 제대로 당했다. 이제 나도 채비를 할 줄 알게 되었으니 다음부터 가족여행 가서 내가 낚시채비하는 것에 보탬이 되면 아버지에 낚시 시간이 조금은 늘어나겠지.



새우! 새우! 크릴새우!


  당차게 낚시채비를 하고 낚싯대를 들고 도착한 거제도 장승포. 5시간이 걸려 차를 타고 왔지만 오는 내내 지렁이를 끼울 생각에 걱정이 많았다. 도저히 지렁이를 끼울 재간이 없다. 그래서 나는 바로 낚시를 나가지 못하고 한동안 낚시터를 기웃거렸다. 보기에도 엄청난 낚시꾼들이 많았다. 프로에 세계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버지는 평소에 낚시터에서 사람들에게 말을 잘 걸었다. 


"사장님, 뭐 좀 잡으셨어요?", "요즘 뭐가 나와요?", "채비는 어떤 걸 하세요?" 등 다양한 질문을 아주 자연스럽게 하신다. 보고 배운 걸 써먹을 차례였다. 나도 자연스럽게 다가가 뒷짐을 지고 말을 걸었다. 


"사장님, 요즘은 뭐가 나와요?" 

"뭐 요즘 돔도 나오고 ~ 뒤에서는 갈치도 잡아요"


돔이라니. 멋있었다. 나도 잡고 싶었다. 잠시 구경을 하던 중 나에게 엄청난 희소식이 생겼다!

사장님이 크릴새우를 미끼로 사용하고 계셨다. 이거다. 지렁이를 만지지 않아도 낚시를 할 수 있다! 


  나는 그날 저녁에 바로 크릴새우를 샀고 무작정 낚시에 새우를 끼우고 던졌다. 한 마리도 못 잡았지만 챙겨 온 캠핑의자에 앉아서 낚시를 했다. 첫날 고기는 못 잡았지만 그 프로들 사이에서 낚시를 했다는 것과 내가 채비한 낚싯대로 낚시를 물에 담가놨다는 것만으로도 대성공이었다. 지렁이에 대한 걱정은 잠시 접어두고 낚시를 맘껏 즐길 수 있겠다. 집에 있는 가족에게 영상통화를 걸었고 가족들은 혼자 낚시에 나가 있는 내가 많이도 웃겼나 보다. 새우로 낚시를 하고 있다며 자랑했는데 이때 아버지는 아마도 속으로 '너는 잡기 글렀다.'를 속삭이고 계셨는지도 모르겠다. 어설프고 철저한 준비는 없었지만 나는 그래도 바다 앞에 앉아있는 게 좋았다.



  이렇게 나의 낚시 생활은 새우를 미끼로 쓰는 이곳 거제도 덕분에 조금은 수월하게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생각보다 낚시를 위해 준비하는 해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그동안 가족여행을 다니기 전에 항상 낚시채비를 하는 아버지에 노력이 느껴진다. 나의 첫 낚시는 아버지로부터 독립을 하면서부터 느껴지는 많은 것들이 추억으로 남는다. 지금도 엄청난 대어를 낚는 프로 낚시꾼은 아니지만 시작부터 조금은 특별하게 다가오는 낚시 생활이다. 그나저나 고기는 언제쯤 잡힐까?



여러분은 기억에 남는 첫 경험이 있으신가요? 

한 번쯤 지난 첫 경험을 떠올려보며 생각에 잠겨보는 시간을 가져도 좋을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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