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무튼, 농담

� [추천] Valley - Society

by 호랑

안녕하세요.

저는 왠지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면 웃으면서 인사를 건네고 싶습니다.

입버릇처럼 웃을 일 하나 없는 고된 일상이라고 투덜거리다가도 결국 웃고 싶어요.

그러니 이 글을 읽은 당신도 한 조각 산뜻한 웃음을 품고 고된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바라요.

이름 탓인지 인간을 너무 사랑해서 인간을 때로 미워하는 정주리 드림.



아직 졸린 눈꺼풀을 살살 달래 기계적으로 아침 루틴을 시작한다. 따뜻한 이불속을 벗어나야만 한다는 사실이 슬플 정도로 아쉽지만, 돈 벌어야지! 하며 버스에 올라타면 곡예에 가까운 운행 끝에 목적지에 도달한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저마다의 이유로 퉁퉁 부은 얼굴들이 애써 웃으며 서로를 반긴다. 나 또한 굳어 있던 얼굴 근육을 유연하게 굴려 웃어 보인다. 그렇다. 매일 아침 우리는 지쳐 있다. 특히 월요일은 더 심하다. ‘월요병’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레 피어나 도통 저물지 않는 이유가 있다.


먹고살기 위해 일을 한다는 건 우리를 쉽게 사그라지게 만든다. 사무실에 앉는 순간 건조한 공기가 느껴져 볼이 당기고, 냉정하리만큼 요란한 키보드 소리에 영혼마저 핼쑥해지는 기분이 된다. 말 그대로 잿빛의 인간이 되는 것만 같다. 모든 감정이 사위고, 무엇 하나 놀라울 것 없는 건조한 일상의 반복. 나만큼은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몇 년의 직장 생활 끝에 나 또한 미소 짓는 법을 잃은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는 며칠 연속 이어지던 야근 퍼레이드 후 집에 돌아가는 버스 안이었다. 어두운 밖과 달리 밝은 버스 조명 때문에 유리창에 지친 얼굴이 훤히 비쳤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내가 이런 표정도 지을 줄 알았던가? 어릴 때 어른들에게서 보고 저러지 말아야지, 했던 바로 그 얼굴. 문득 내가 잃어버린 게 뭘까, 궁금해졌다.


어린 시절 나는 물색 모르는 친화력 좋은 리트리버처럼 모든 친구들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는 아이였다. 거침없이 다가가 말을 걸고, 불편한 티를 내도 눈치가 없어 몰랐다. 내 나름대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혼자 있는 친구가 즐겁기를 바랐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귀엽기도 속없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긴 시간이 지나 눈치와 사회성을 기르고 나자 적정선에서 적당히 농담하고 장난치는 법을 알게 되었다. 다만, 일을 할 때는 그것을 자주 잃어버렸다. 낯선 얼굴의 나와 마주한 날에 나는 다시 농담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속에 담아둔 말을 와르르 쏟아내고 농담이야, 하며 갈무리하는 나쁜 농담 말고.


농담을 하고 장난을 치기 위해서는 상대방에게서 사랑스러운 점을 찾아내야 한다. 자고로 농담과 장난은 친근함의 표현이므로 상대방에게 일정 이상의 애정이 없다면 영 불가능한 행위다. 또 상대방이 어느 정도 이해심과 인내심을 가진 존재여야 한다. 나는 친해지기 위해 한 농담과 장난이 적절하지 못하면 상대에게 큰 상처를 줄 수도 있다. 그러니 농담과 장난을 자유자재로 휘두르기 위해서는 일단 나부터 특정 수준의 단계에 올라야만 한다는 뜻이다. 여전히 쉽지 않지만, 나는 적절한 농담과 장난을 위해서 수련하고 있다. 일을 하는 매일이, 사람을 마주하는 매 순간이 실기 연습을 하는 기분이랄까?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옆자리의 무표정한 동료에게 가벼운 농담을 한 마디 던져보는 것을 추천한다. (너무 밉고 싫다면 하지 않는 것이 낫다) 풍경처럼 존재하던 누군가가 사랑스러운 색으로 채색되는 순간, 우리 일상은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