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OSE - Number one girl
안녕하세요.
당신은 나를 모르지만 나는 당신을 꽤 압니다. 단지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보여주었을 지라도. 당신은 나에게 그저 또래의 한 인간, 미움보다는 사랑을 더 원하는 보통의 인간이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건 부끄럽게도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나 또한 여타의 인간들과 별다를 바 없었어요. 그러니 이것은 한 조각 겨우 건져올린 양심의 기록이라고 보아도 되겠습니다.
가장 먼저, 내 거친 펜촉의 끝이 당신을 겨냥하게 된 이유를 설명해야 하겠습니다. 이번 '소비'라는 주제를 받아들었을 때 부끄럽기 그지없는 나의 소비생활을 가장 먼저 떠올렸어요. 내 소비는 주로 우울의 찌꺼기입니다. 작은 집에 넘치게 많은 물건이 투박하게 쌓인 이유죠. 별 필요와 의미 없이 사둔 물건들은 전부 우울이 찍어낸 바코드, 종래에는 고지서가 되어 저에게 날아듭니다. 많이 나아졌다고 말하고 싶지만, 살다 보면 그 무엇도 쉬이 확언할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글을 몇 줄 적었다가 필요 이상으로 음습한 단어의 나열이 되기에 지웠습니다. 오랜만에 주어진 휴식을 누리고자, 알맹이를 잊어버린 껍데기처럼 누워서 핸드폰을 뒤적이다가 당신에 대한 글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자주 슬픔을 망각합니다. 망각은 달콤한 보상이라지만 사실 저는 쓰디쓴 형벌을 더 찾는 편입니다.
예기치 못하게 당신의 얼굴을 보게 되어서, 나는 어쩌면 나눌 수도 있었을 시간을 떠올려봅니다. 마주 앉아 따뜻한 밥을 나누어 먹고, 터무니없이 이르게 배가 부르다고 투정하는 당신에게 짐짓 화난 얼굴로 가장 맛있는 반찬을 밀어줬을 거예요. 그래도 정 힘들다고 하면 디저트 배는 따로지, 하며 과일이든 단 것이든 내어 주었을 테죠. 방금 전까지 밥을 거부해놓고는 속없이 한입 먹는 모습에 배부르다더니, 공연히 핀잔을 주고 그래도 잘 먹는 모습이 기특해서 웃을 것 같아요. 누구도 방해하지 않고 느리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지금 이 순간 그저 존재하듯 앉아서 당신이 고른 음악, 내가 고른 음악 한 곡씩 번갈아 들으면서 (어쩌면 오해를 부를지도 모르니) 말은 최대한 아끼고요. 삭막한 세상을 버티며 살아갈지언정 누군가는 네가 밥 한 숟가락 더 든든히 챙겨먹는 걸 중히 생각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서요. 당신을 상품으로 보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당신은 값어치를 매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어서요.
언제부턴가 나는 상실에 예리하게 더듬이를 곤두세우는 동물이 되었습니다. 언젠가는 마주앉아 수다를 떨거나, 유난한 제 너스레에 소리내어 웃었을지도 모르는 이들을 잃는 게 괴로웠어요. 떠나버린 이들이 미울 지경이었어요. 물론 그들이 겪은 고통을 감히 내가 다 알 수는 없겠죠. 행동 하나, 말 한 마디에 정도 이상의 비난을 감내하라고 요구받는 직업을 가진 것은 내가 아니니까요. 그런데요. 명백한 가해자가 존재할 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간절히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어요. 당장 손이라도 잡아주고 싶어져서요. 자주 찾아보는 뉴스와 신문 구석구석에 비슷한 이야기가 아주 많다는 것을 아나요? 안 된다고 말해도, 최대한 피해 다녀도, 모든 것을 꽁꽁 싸매도, 누군가가 죽어요. 나는 자꾸 입을 열어요. 굳게 닫힌 문을 향해 외치는 건 다소 막막한 일이예요. 그래도 외치고, 단어며 문장을 적고, 당신에게 늦게라도 속삭일 거예요. 네 잘못은 없다고. 무슨 일이든 대수롭지 않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넘기는 편이지만 드물게 확신할 수 있어요. 나를 믿어도 됩니다.
나는 착한 아이로 길러지면서 모두의 사랑을 갈구했어요. 아주 오랫동안요. 이제는 타인의 사랑을 희구하지 않게 되었지만, 이 또한 정답은 아니리라 생각합니다. 사랑이란 분명 무언가를 굳건히 받치는 토대일테니까요. 내가 사랑이라는 감정에 가장 가까운 형태로 믿고 있는 것을 당신에게 드릴게요. 당신을 떠올리며 쓴 글을 정성껏 다듬을게요. 그리하여 아주 긴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당신을 만나게 될 때, 조금이라도 생색을 낼 수 있다면 좋겠죠. 그때는 세상이 달라졌다면서 호들갑을 떨며 당신을 마음 놓고 웃겨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아요.
이 짧은 글을 쓰는데 꼬박 세 시간이 걸렸습니다. 부끄러움만 남겨둘게요. 안녕히.
해당 글은 '잉크프레소' 활동의 일환으로, "소비"라는 주제에 맞추어 작성하였습니다.
이미지 출처 : AI 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