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네오 소라
******스포일러 있어요!*********
영화 시작 5분 만에 알았다. 이 영화를 퍽 사랑하게 될 것이라는 걸. 최근 친해진 S의 추천이 아니었다면 몰랐을 영화였다. 그러나 영화 모임의 일원이 되면서, 관심의 카테고리를 벗어나 있던 영화들이 보란 듯 어퍼컷을 날려줄 때에 느끼는 짜릿함이 있었으므로, J와 나란히 앉아 이 영화를 보았다.
뻔한 청춘물 같으면서도 골 때리는 해학을 가진 영화였다. 주저앉아 있지 말라고 멱살 잡고 일으키는 흔한 청춘물이랑 다르게 인물들을 입체적으로, 내 피부에 닿게 보여주어서 좋았다. 그래, 미성년의 시절은 저렇게 흔들리기 마련이다. 성인이 되면 미세하게 덜 흔들릴 뿐. 미성숙한 이들의 조합은 반드시 삐걱거린다. 유타와 코우의 관계 변천사가 주요인 듯 하지만 사실 이 영화에서 배제된 캐릭터는 하나도 없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 J에게 가장 닮은 캐릭터가 누구라고 생각하냐고 물었다. 나와 J는 콕 집어 하나를 말하기가 어렵다는 데 입을 모았다. 감독이 인간에게 지닌 따뜻한 시선을 느꼈다. 우리는 모두 입체적 존재라는 것을, 이러한 면이 있으면 저러한 면도 있고 이런 사고를 쳤으면 저런 기특한 일을 할 줄 알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 점이 조금 울컥했다.
감독은 음영을, 조명을, 음악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기 위해 많은 품을 들인 것 같다. 특히 음악과 음향 효과를 고른 것, 사용하는 방식이 좋았다. 가장 큰 소리가 날 것 같았던 장면에서 파격적으로 소리를 제거하여 보는 이를 전율케 했다. 캐릭터들은 빛 아래서 마음에도 없는 소리(사회적인)를 하고 그림자나 어둠에 먹히면 솔직한 고민을 털어놓고 다투었다. 환할 때 학생들을 지켜보는 감시 시스템은, 비효율적인 데다 비도덕적인 느낌을 극대화했다. 대사로 처리하지 않고 우리가 보고 깨닫게끔 사회 문제들을 꼼꼼히 배치해 둔 것도 좋았다. 대개 중구난방이 되기 좋을 구성과 내용이었지만 늘어짐 없이 한 올 한 올 섬세하게 수를 놓는 느낌이었다.
분명 근미래를 다루고 있는 데다 물 건너 옆나라의 이야기건만 나는 묘하게 향수를 느꼈다. 열없이 친구들과 새우는 밤이 얼마나 재미있고 대책 없는지, 또 그러다 문득 이 모든 게 의미 없다고 느껴져 누구든 탓하고 싶어지는 뿔난 마음이 떠올랐다. 한때 나는 유타였고 코우였고 밍이었고 아타였고 톰이었고 후미였다. 다섯 아이가 마지막으로 서로를 포근히 안아줄 때, 우는 얼굴을 보며 괜히 내 코끝도 찡해졌다. 가장 조용하던 톰이 사실상 그들의 아교 역할을 하고 있었다는 걸 아이들은 표현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아이들은 부지런히 꿈, 현실, 불의, 정의에 대해 고민하고 대립하고 행동하고 회피하고 맞섰다. 요 근래 다 망했어, 희망 같은 걸 왜 가져, 생각했던 것을 반성한다. 나는 너무 '인간에 대한 기대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제 영화를 보고 어제 감상평을 쓰다 한차례 날렸는데(그냥 황당하고 억울해서 굳이 적어봄) 어제까진 톰이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이었다. 지금 이 순간 떠오르는 얼굴은 유타다. 자신이 사랑하는 음악을 위해 철딱서니 가면을 쓰고 사고 치는 애. 다섯 명의 친구들이 영원할 수 없을 것을 가장 잘 알지만 가장 거부하고 싶은 애. 그래도 자신이 뭘 지켜야 하는지는 잘 알고 있는, 애어른. 기껏 땀을 뻘뻘 흘리며 서브 우퍼를 가져왔건만 이미 가져다 둔 스피커들이 동댕이쳐져 있는 것을 보던 유타의 허탈한 얼굴이 꽤 오래 기억날 것 같다.
한때는 나도 친구들이 전부였다. 순순히 말을 안 들어도 되고, 내심 가지고 있던 반항심을 분출해도 호기롭게 받아주던 또래들. 어떠한 무리에 소속되면 소속감을 있는 힘껏 만끽하는 것으로 모자라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지금'을 누리기 위함이라는 생각이었지만 어쩌면 그때 우리는 단지 죄책감을 저만치 따돌린 채 젊음을 낭비했을지도 모른다. 현실로 발 딛는 시간을 최대한 지연하려고. <해피 엔드>의 타이틀 시퀀스와 엔딩 시퀀스가 그래서 더 깊이 와닿은 것 같다. 일시 정지를 누르고 숨을 한 번 들이쉰 다음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만 같은 타이밍이었다.
<해피 엔드>를 보고 집에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유타와 코우가 홀린 듯 듣던 음악을 따라 들었다. 그러다 문득, 이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내용을 쓰겠다는 계획 같은 건 없었다. 그저 손 가는 대로 흘러가게 두기로 했다. 이 글이 흡족하냐 물으면 그것도 글쎄, 그러나 <해피 엔드>라는 영화를 오롯이 즐겼다는 증빙자료 정도로는 괜찮을 것 같다.
어쩌면 가장 행복했던 시절은 영영 가버렸을지도 모른다. 입술을 꾹 물고 다음 걸음을 내딛는 <해피 엔드>의 아이들처럼 우리도 이제 씁쓸하고 쓸쓸한 오늘을, 어쩌면 새로이 행복할 내일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