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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슬욱 Apr 09. 2019

마침표는 또다른 시작

정든 한옥을 걸어 나오다

    비비안은 1월 13일에 홍콩으로 돌아갔다. 같이 보낸 시간은 길었지만, 떠나는 건 한 순간이었다. 12월 31일, 진로에 대한 결정을 내리고 한옥 문을 걸어 나오겠다는 결심은 수포로 돌아갔지만, 나는 3월 13일에, 홍콩에 가게 되었다. 홍콩에 가기로 결심하던 날, 나는 행여나 마음이 변할까 봐 그 자리에서 비비안과 함께 출국 날짜를 정하고 비행기 티켓을 샀다. 한옥에서 일을 시작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홍콩에 가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다. 하지만, 나는 정말로 홍콩에 가게 되었고, 인생의 전환을 맞이하게 되었다. 출국까지는 약 2달 정도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 기간 동안 휴식을 취할까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두 달이나 쉬기에는 시간이 좀 아깝고 그렇다고 마땅히 할 수 있는 다른 일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한옥 사장님께 건의하여 근무를 3월까지 연장하게 되었다. 

    시간은 흘러 2월로 접어들었고, 나는 슬슬 한옥에서의 삶을 정리해야 했다. 내 뒤를 이어서 일할 후임을 찾는 것도 내 몫이었다. 한옥에 일할 때, 꽤 많은 친구들이 놀러 왔었는데 그중에서는 내가 일을 그만두게 되면, 그다음으로 일하고 싶다고 말한 친구들도 꽤 있었다. 그 친구들이 생각나서 한 두 명씩 연락을 돌렸는데, 다들 사정이 있어서 나의 제안을 거절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불현듯 내 전임으로 일하던, 나에게 한옥 매니저 일을 제안했던 민식이가 떠올랐다. 우리는 휴대폰 메신저로 간간히 연락을 하곤 했다.

“민식아 잘 지내지?”

“그럼요, 형님. 저는 지금 대만 가오슝에 있어요. 여기 정말 좋네요.” 메신저로 메시지를 보낸 뒤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민식이에게 답장이 왔다.

“가오슝 좋지. 나도 일 년 전에 여행 다녀왔는데 좋더라고. 사람도 많지 않고, 바다도 예쁘고, 음식도 맛있고.”

“네 맞아요. 저는 막바지 여행 중입니다. 가오슝에서 있다가, 타이베이로 이동한 다음 인천으로 들어갈 예정이에요.”

“그렇구나. 그럼 입국 뒤에 뭐할지 계획은 정했나?”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니요, 특별한 계획은 없어요. 여행 정리하느라 좀 바빠서 그것까지는 미처 생각을 못 했네요. 일단은 좀 쉴 생각이에요.”

“그래, 오래 여행 다녀왔으니까 쉬어야지. 혹시, 조금 휴식한 다음에 사이드에서 일할 생각 있어?” 이 메시지를 보내자, 실시간으로 대화하던 대화창에 약간의 정적이 흘렀다. 나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민식이는 조금 당황한 것 같았다. 

“생각지도 못 했던 질문인데요 형님! 조금 생각 좀 해봐야겠어요. 요즘 사이드는 어떤가요?” 민식이가 물었다.

“똑같아, 네가 있을 때랑. 너 이전에 있었던 매니저들이 관리를 잘 못 해 놓아서, 그거 수습하느라 네가 고생 좀 하고 떠났잖아. 그 뒤로 나도 신경을 좀 많이 써서, 그때보다 근무하기에는 좀 나을 거야. 그때보다는 좀 체계가 잡혔어. 사장님이 일하는 것에 대해 특별히 터치하는 것도 없고.”

“사장님은 제가 있었을 때랑 다른 분이시죠?”

“응 맞아. 원래는 건축 소장님이 한옥을 관리했잖아, 그런데 소장님은 작년 가을에 나가셨고, 다른 분이 관리하게 되었어. 한옥 실제 주인은 00그룹 회장님이잖아. 그 회장님이 직접 관리하는 건 아니고, 00그룹의 임원 중 한 분인 고 차장님이 여기를 관리하고 계셔. 그런데 고 차장님도 회사에서 해야 할 다른 일이 꽤 있으니까, 바빠서 네가 일하는 것에 대해 크게 관여하고 그러진 않을 거야.”

“근무 조건은 괜찮네요. 사이드 정도면 좋죠. 월급도 꼬박꼬박 나오고, 개인 시간도 많고요.” 민식이는 내가 1년 전에 사이드에 들어오기 전 했던 말과 똑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그렇지. 한 번 잘 생각해봐. 오늘이 화요일이니까 이번 주 주말까지는 말해주면 좋겠는데, 가능한가?”

“네. 생각해보고 주말까지 말씀드릴게요.” 생각해보겠다고 말하는 민식이었지만, 왠지 제안을 수락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한옥의 여름, 가을 겨울


    다음날 민식이는 나에게 한옥에서 일하겠다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1년 전 내가 그랬듯이, 민식이도 고민할 시간이 많이 필요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후임을 구하지 못할까 봐 걱정이었는데, 민식이가 제안을 수락하니 기뻤다. 예전에 일했던 경험이 있는 친구라 더 마음이 놓였다. 2월까지는 내가 일하고 3월 4일에 민식이가 한옥으로 들어와 일주일 동안 함께 생활하며 인수인계를 한 뒤, 나는 11일에 한옥을 떠나는 계획이었다. 13일 출국이라 시간이 촉박했지만, 집에서 할 일 없이 쉬는 것보단 일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했다. 인수인계는 별다른 일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시간은 흘러 11일이 되었고, 짐이 많아 나의 짐을 옮겨주러 차까지 몰고 한옥으로 와준 동생 창진이, 사이드 후임 민식이와 함께 정들었던 한옥 마당을 배경으로 사진을 한 장 찍은 뒤, 한옥 대문을 나섰다. 비비안이 그랬던 것처럼, 한옥에서 보낸 시간은 길었지만 떠나는 건 한 순간이었다. 내가 계획했던 모습과는 많이 달랐지만, 새로운 시작을 한다는 기대감과 함께, 비록 지금 한옥을 떠나게 되었지만, 이곳에서 보냈던 시간은 기억 속에 영원할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홍콩 생활을 기대하며 한옥 생활의 마침표를 찍었다.  

눈 내리던 어느 겨울날의 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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