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전의 첫 홍콩 여행
8년 전이었던 2011년, 처음 홍콩에 왔다.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에 성인이 된 다음 처음으로 떠난 해외여행이었다. 그때 왜 첫 여행지로 수많은 도시 중 홍콩을 택했을까. 이국적이면서도 중국의 향기가 나는, 흔히 말하는 “동서양의 조화”를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쇼핑의 천국”에서 마음껏 쇼핑을 하고 싶어서였을까.
사실, 첫 여행지를 홍콩으로 정한 명확한 이유가 있었다. 갓 스무 살이 되어 입학한 대학교에 불어닥친 생동하는 봄의 기운을 타고 나는 누군가의 마음속으로 깊이 들어갔지만, 결과는 짧은 만남 끝의 이별이었다. 푹푹 찌는 여름의 무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무렵의 이별은 나를 상당히 무기력하게 만들었고, 기쁨이 넘치던 학교는 슬픔의 공간으로 바뀌어 학교에 잘 나가지 않기에 이르렀다. 학교에 가지 않으면 집에 멍하니 있거나, 친구를 만나러 나가곤 했는데 그렇게 하면 아픈 기억이 자연스럽게 잊힐 줄 알았다. 그러나 슬픔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집에 있는 시간은 오히려 더 고통이었다. 아무것도 안 하니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다는 기분까지 들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무작정 영화를 틀고 보기 시작했다.
중학교 2학년 때 우연한 계기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저수지의 개들”을 본 다음, 영화에 깊게 빠지게 되었다. 꽤나 충격적이었던 결말의 반전과, 이야기를 풀어가는 내내 심장을 조이던 서스펜스의 긴박함은 중학교 2학년 학생의 심장을 뛰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 후, 학생임에도 시간이 날 때마다 영화를 찾아보곤 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다른 작품인 “펄프픽션”, “재키 브라운”, “킬빌”등은 물론, “마틴 스콜세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코엔 형제” 등 소위 “영화 좀 잘 만든다”하는 감독들의 영화들을 챙겨보았다. 고등학생이 되어서 학업의 압박을 느끼는 와중에도 꾸준히 영화를 시청했는데, 아무래도 마음 편히 영화를 보기에는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이 흔히 하는 전제 중 하나인 “대학교에 진학한 다음”이라는 전제를 달고, 대학교에 진학하면 원 없이 영화를 보겠노라고 다짐했다.
이별을 경험했을 때는 이 다짐을 실현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였다. 집이라는 편안한 공간도 있었고, 시간도 많았기 때문에 보고 싶은 영화를 찾은 뒤, 재생 버튼만 누르면 언제든 영화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눈치가 조금 보이긴 했지만, 대충 둘러대며 학교에 가지 않고 그 시간에 영화를 마음껏 보았다. 영화 보는 것도 꽤 진 빠지는 일이라, 하루에 3편 이상을 보는 경우는 드물었지만 보통 2편 이상은 시청했던 것 같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집에서 무슨 영화를 볼까 고민하다가 우연히 왕가위 감독을 알게 되었다. “화양연화”, “아비정전”, “해피투게더” 등 수많은 명작이 있지만 그중에 내가 가장 먼저 선택한 건 “중경삼림”이었다. 그 이유는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다른 영화들의 포스터에 비해 “더 홍콩 느낌이 나는” 포스터였고, 무언가 실연을 당한 듯한 혹은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는 듯한 두 여주인공 임청하와 왕페이의 모습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는 전혀 없었고, 무슨 내용인지 알지도 못했다. 그렇게 나는 중경삼림을 보게 되었다.
귓속에 울려 퍼지는 “중경삼림”의 주제곡 California dreamin’은 영화의 내용처럼 홍콩에 가면 지나간 사랑을 잊고 새로운 사랑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이상한 믿음을 주었다. 홍콩 시내 한 복판에서 이 노래를 들으면 마법처럼 사랑의 열병이 지나가고, 새로운 사랑이 올 것이라는 믿음은 나를 홍콩으로 이끌었다. 그렇게 나는 1학년 1학기가 종강한 그다음 날, 홍콩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홍콩으로 떠났다. 홍콩의 여름은 생각보다 훨씬 더 더웠다. 습도가 100%에 육박하는 살인적인 습도와 33도 이상 되는 더위가 홍콩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나를 반겼다. 공항에서 나온 뒤 5분이 채 지나지 않아 나의 얼굴, 목, 팔 등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고 난생처음 경험하는 더위에 놀랐다.
오후 6시가 지나면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엄청난 인파는 구룡반도의 중심부 침사추이, 홍콩섬의 완차이, 센트럴 등의 중심가로 모여들었다. 발 디딜 틈 없는 거리와, 그 거리의 인파에서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열기, 그리고 무더위와 습도를 한껏 머금은 홍콩의 여름 날씨는 밖에 나와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나를 지치게 했다. 하지만, 침사추이에서 바라볼 때 보이는 홍콩섬 해안을 따라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은 홍콩섬의 빌딩 숲은 하룻 동안 쌓인 육체적 피로를 완전히 풀어주기에 충분했으며 일종의 경외심까지 들게 했다. 해안을 따라 쭉쭉 뻗어있는 홍콩섬의 화려하고 현대적인 건물들과 그곳에서 쉴 틈 없이 뿜어대는 자본주의의 강렬한 에너지도 멋스러웠지만, 그것보다 훨씬 더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건, 휘황찬란한 건물들 사이사이에 솟아있던 홍콩의 역사를 듬뿍 머금은 듯한 아파트, 빨간색, 초록색, 노란색 등 다양한 색깔이 깃든 한자 간판이 있는 거리, 그 간판 밑에 있던 수많은 홍콩 현지 식당, 그리고 사람들의 더위를 식혀줄 차를 분주하게 만들어 내고 있는 차 가게의 향기였다. 그것은, 왕가위 감독이 영화를 위해 의도적으로 아름답게 연출했던 멋을 뛰어넘는 아름다움이었다. 이 이국적이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친숙한 아름다움에 묻혀 도시를 즐기는 동안, 내면에 있었던 상처는 서서히 아물기 시작했다. 지금 돌아보면 여행자의 관점에서는 홍콩을 제대로 즐기고 온 것 같지는 않다. 홍콩식 애프터눈 티도 즐기지 않았고, 주로 침사추이 쪽에만 머물러 있었으며, 얌차나 차찬텡 같은 현지 스타일 식문화도 경험해보지 않은 채 한국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때의 여행이 내 기억에서 강렬하게 남아있는 이유는 스무 살의 아직은 어려 미숙하지만 정제되지 않은 당당함과 대담함이 묻어있던 여행이었으며, 특별한 여행 계획을 짜지 않았지만 그 덕분에 오히려 홍콩의 거리 자체를 집중하여 즐길 수 있었고, 결정적으로 나에게는 치유의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중경삼림”에서 양조위가 헤어진 승무원 여자 친구의 물품을 버리지 못하고 집에 간직하고 있었던 것처럼, 나도 마음속에서 그녀를 완전히 떠나보내지 못하던 상황이었지만 홍콩 여행을 다녀온 뒤 그녀를 서서히 떠나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몇 달이 채 안 되어 그녀의 옆에는 새로운 사람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그때는 비로소 그녀를 마음속에서 미련 없이 떠나보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