親疏有別 (친소유별); 가까운 사람에게는 뜨겁게, 낯선사람에겐 차갑게
비비안은 애프터눈 티 세트에 나오는 음식은 점심, 저녁때의 음식보다 상대적으로 양이 적다고 말했지만, 우리 식탁에 올라온 음식은 생각보다 양이 많고 푸짐했다. 애피타이저로 시킨 생선 껍질 튀김은 생선이라 비릴 것이라 생각했지만, 전혀 비리지 않았다. 다만, 튀김이기 때문에 느끼해서 한거번에 많은 양을 먹기는 힘들었다. 생선 비린내도 거의 없고 바삭바삭하여 생선 껍질이라기보다는 과자 같았다. 실제로 홍콩에서는 생선 껍질 튀김을 식당에서 뿐만 아니라, 과자처럼 봉지에 포장하여 판매하기도 한다. 감자칩처럼 튀김 위에 다양한 시즈닝을 첨가하여 팔기도 하는데, 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내가 시킨 국수는 홍콩 스타일 비빔국수로 광동식 면 위에, 갈게 썬 돼지고기가 들어간 간장 소스가 올려져 있었다. 소스에 물기가 별로 없고, 소스의 양이 면의 양보다 적어 좀 퍽퍽했다. 생선 껍질 튀김과 함께 나온 생선 육수를 국수에 조금 넣어 먹으니 맛이 훨씬 괜찮았다. 비비안이 시킨 빵은 바게트 빵에 버터를 올려 구운 뒤 그 위에 연유를 올린 홍콩 스타일 빵(奶油豬)이었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먹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맛있어서 놀랐다. 이러한 빵 종류는 홍콩에서 애프터눈 티 세트로 인기라고 한다.
나는 비비안의 집에서 그녀의 가족들과 함께 살게 되었다. 비비안의 집은 New Territory에 있으며, 15평 정도의 크지 않은 집이다. 홍콩의 집값은 워낙 비싸서, 많은 사람들이 20평 이하의 조그만 집에서 생활한다고 한다. 비비안의 집에는 방이 3개가 있는데, 비비안의 친언니가 몇 년 전에 결혼하고 분가하여 방이 하나가 비었고 부모님이 그 방을 내가 쓰도록 허락해 주셨다. 비비안과 같이 홍콩으로 가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마주쳤던 가장 큰 난관은 집 문제였다. 집값이 비싸 회사에서 집을 대주지 않는 이상 혼자서는 홍콩의 높은 월세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와중에, 비비안이 몇 해 전 언니가 분가하여 방이 하나 비는데, 그곳에서 내가 생활해도 되는지 부모님께 여쭤보겠다고 말했다. 비비안의 부모님과 함께 생활한다니, 처음에는 조금 부담이 되기도 했지만 그것 말고는 달리 좋은 방안도 없었고, 비비안의 부모님이 한국에 오셨을 때 며칠간 같이 생활해본 경험으로는 홍콩 사람들은 타인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성향이 있어서 비비안의 가족들과 같이 생활하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비비안도 부모님이 허락해주실지 확신하지 못했지만, 다행히도 비비안의 부모님은 내가 집에 들어가 사는 것을 허락해 주셨다. 비비안이 한국에 살고 있을 때 부모님이 비비안을 보고 여행도 할 겸, 한국에 두 번 방문하신 적이 있다. 그때 내가 일하던 한옥에서 부모님을 묵게 해 드리고, 한국에서 좀 더 편하게 지내다가 돌아가실 수 있도록 많이 신경을 써 드린 건 사실이지만, 그 두 번의 방문만으로 나를 집에서 살도록 허락해 주신 것은 의외였다. 솔직히 말해서 반대 상황이었다면 우리 부모님은 비비안을 우리 집에 들였을지 의문이다.
홍콩 사람들을 처음 만나면 그들의 무뚝뚝하고 차가운 태도에 당황할 수 있다. 처음 만나거나 모르는 사람들에게 적대적이고 쉽게 마음을 열지 않으며 경계하는 성향이 있다. 그러나 한 번 “자기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그때부터는 그 사람에게 열과 성을 다한다. 공자의 논어에 “親疏有別(친소유별)”이라는 말이 있다. 가까운 사람들(특히 가족)에게는 뜨겁게 대하고(잘하고),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차갑게 대하라(거리를 두라)는 뜻이다. 얼핏 들으면 모르는 사람을 배척하라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는데, 공자의 의도는 이들을 멀리하거나 나쁘게 대하라는 게 아니다. 친소유별에는 두 단계가 있다. 앞서 말한 가까운 사람들에게 잘하라는 것이 첫 번째 단계이고, 두 번째 단계는 모르는 사람에게도 사랑을 베푸는 것이다. 첫 번째 단계를 성취했다면 두 번째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자신의 주위를 먼저 돌본 뒤, 그 영역을 확장하여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사람들도 돌보라는 말이다. 굉장히 성숙한 인간상이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너무 이상적인 말이다. 공자 같은 성인이라면 모를까, 일반 사람들은 첫 번째 단계도 완벽하게 성취하기 어렵다. 따라서 대다수의 홍콩 사람들(중국 사람들)은 첫 번째 단계도 완벽하게 성취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모르는 사람들이 아닌 가까운 지인들에게 집중한다. 비비안의 부모님도 예외는 아니었다. 서울에서 처음 만났을 때, 표정의 변화도 거의 없었고 묻는 말에는 대부분 단답으로 응하는 등, 나를 굉장히 차갑게 대해서 '내가 맘에 들지 않나'라는 생각까지 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나에게 조금씩 마음을 여는 게 느껴졌고, 나중에는 과분하다 싶을 정도로 나를 잘 대해주었다. 내게 집에 있는 남은 방 하나를 내준 것도 이제는 나를 단순히 비비안의 애인이 아닌 가족으로 생각하고 대해주는 게 아닌가 싶어 심리적으로 굉장히 안정이 됐다.
우리는 저녁을 다 먹고 자리에 앉아서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음식을 다 먹자마자 어김없이 점원이 접시를 바로 가져갔다). 비비안은 나에게 집 열쇠를 건네주었고, 휴대폰 심카드를 주면서 내가 홍콩에 오기 전에 이미 통신사의 내 명의로 가입을 해 놓았고, 내 휴대폰 비용은 매달 자신의 비용과 같이 낼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처음에는 좀 부담스러웠지만, 맛있는 밥을 많이 사주면 된다는 말에 알겠다고 대답하며 식당을 나왔다. 기온은 21도로 꽤 쌀쌀했다. 우리나라 봄, 가을 날씨였는데 바람이 많이 불어서 그런지 체감 온도는 더 낮았다. 가방 안에 넣어놓았던 셔츠를 주섬주섬 꺼내 입고 비비안의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러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홍콩의 버스는 대다수가 2층 버스이다. 영국의 영향을 받은 것도 있겠지만, 버스가 2층 버스로 운행되는 주된 이유는 역시 “인구”때문이다. 인구밀도가 높고, 하루 종일 유동인구도 많아 2층 버스가 아니면 그 많은 승객들을 감당해낼 수 없다. 음식점과 마찬가지로 2층 버스도 한정된 공간에 최대한 많은 사람을 들여야 하기 때문에 좌석을 매우 촘촘하게 배치해 놓는다. 버스는 생각보다 빠르게 도착했다. 버스에 승차하여 한국의 티머니와 비슷한 옥토퍼스카드로 버스비를 지불한 뒤 2층 창가 자리에 가서 앉았다. 처음에는 좁은 자리가 불편했지만, 앉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감사하게 생각하니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버스는 공항이 있는 첵랍콕 섬을 빠져나와 란터우 섬, 칭이 섬을 차례로 거친 뒤 비비안의 집이 있는 New Territory로 진입하고 있었다. 버스 밖으로 보이는 노란색 네온사인 빛은 홍콩에 온 나를 반겨주는 건지, 아니면 단지 차갑게 빛나며 제 일을 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이제 진짜 서울의 공기가 아닌, 홍콩의 공기를 마시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홍콩 첫날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