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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슬욱 May 01. 2019

홍콩의 버스덕후

미래의 홍콩 버스 드라이버

    우리 동네 마온샨에는 비비안의 오랜 친구 캐시(Cathy)가 산다(홍콩 사람들은 한자 이름 이외에 영어 이름을 꼭 하나씩 가지고 있는데, 일상적인 대화를 할 때는 대부분 영어 이름을 사용한다). 둘은 중학교 때부터 같은 반도 여러 번 한 가장 가까운 친구인 데다, 서로 사는 곳도 가까워 비비안은 다른 친구들보다 캐시를 훨씬 더 자주 만난다. 캐시는 홍콩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명성이 높은 홍콩의 세 개 대학교(홍콩대학교, 홍콩과학기술대학교, 홍콩중문대학교) 중 하나인 홍콩대학교의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여, 유치원생들을 위한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다. 똑 부러지고 똘똘한 데다가, 심성까지 좋아 비비안의 친구 중 제일 마음이 간다. 일요일 저녁, 나와 비비안은 캐시와 함께 집 앞 말레이시아 음식점에서 저녁 식사를 하려고 모였다. 주말 저녁, 음식점 안은 사람들로 항상 붐빈다. 우리가 가기로 한 말레이시아 음식점은 얼마 전에 새로 개업하여 기다리는 사람들이 다른 가게보다 더 많았다. 게다가, 실내 공간도 꽤 작았고 좌석도 별로 없어 우리는 꽤 오랜 시간 줄을 서며 차례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캐시, 오랜만이야.” 나는 대기 줄로 진입하며, 캐시에게 인사를 건넸다.

“응 안녕. 오랜만이야.”

“얼마 전 다녀온 호주 여행은 어땠어?”내가 캐시에게 물었다.

“호주 여행 좋았지. 남자 친구 매튜(Matthew)랑 일주일 동안 다녀왔는데, 날씨가 일주일 내내 화창해서 여행 다니기 너무 좋았어.”

“그렇구나. 남자 친구가 버스를 엄청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거기 버스 박물관이 있다며?” 비비안에게 둘의 이번 여행의 주된 목적은 매튜가 호주에 있는 버스 박물관을 방문하고 싶어서였다고 이미 들었지만, 캐시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어서 이야기를 꺼냈다.

“응 맞아. 호주에 엄청 큰 버스 박물관이 있더라고. 차고 같은 곳인데, 실내는 엄청 넓고 그 안에는 세계 각지에서 온 다양한 종류의 버스가 있어. 버스를 직접 운전할 수는 없지만, 운전석에 앉아 핸들을 잡을 수도 있었고 버스 안을 돌아다니며 자유롭게 사진도 찍을 수 있어서 남자 친구가 아주 좋아했어. 사실 나는 남자 친구처럼 버스에 관심이 있는 편도 아니고, 다 그게 그거 같은데 남자 친구는 그 안에 있는 모든 버스를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버스에 관심이 많아. 이런 사람들을 보고 홍콩에서는 "빠가오(巴膠)"라고 해. 버스를 빠시(巴士)라고 하는데 빠(巴)는 거기서 따 온 거고, 가오(膠)는 어떤 것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들을 가리켜하는 말인데, 사실 조금 놀리듯이 쓰는 말이야.”

호주 버스 박물관 내 전시되어 있는 버스들

“한국에도 비슷한 말이 있지 않았어?” 이야기를 듣고 있던 비비안이 나에게 물었다.

“맞아. 우리나라는 단어 뒤에 “덕후”라는 단어를 붙여. 예를 들어, 버스를 좋아하는 사람은 버스 덕후, 차를 좋아하는 사람은 차덕후라고 부르는 식이야. 혹은, “덕후” 대신 “마니아”를 붙이기도 해.”

“그렇구나. 아무튼, “빠가오”인 내 남자 친구 입장에서 호주의 차 박물관은 천국이었지. 가져간 DSLR 카메라로 계속 사진을 찍고, 그걸로도 모자랐는지 휴대폰으로도 계속 사진을 찍더라고. 나는 버스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아서 남자 친구만큼 재미는 없었지만, 그래도 꽤 괜찮은 경험이었어. 좋아하는 사람의 취미를 공유하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도 꽤 괜찮은 일이잖아.”

“맞아. 그런데 너 남자 친구는 왜 그렇게 버스를 좋아해?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거야?” 나는 캐시에게 물었다.

“어렸을 때, 남자 친구가 집에서 시내로 외출할 때 항상 탔던 버스가 있었대. 배차간격이 10분 정도 되는 버스였다고 하는데, 버스 번호는 같아도 버스 종류는 다 달랐대. 똑같은 번호의 버스가 도착하고 출발하지만 그 종류는 다 달랐던 거지. 그 안에서 다른 점을 찾는 재미가 있었나 봐. 그것뿐만 아니라, 버스에서 나는 소리, 생김새, 그리고 승객들이 탑승하는 모습까지 버스에 대한 모든 게 좋았대. 동네 친구들 중에서도 버스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좀 있었나 봐. 그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버스에 대한 이야기 나누면서 버스를 더 좋아하게 됐대."

홍콩의 "미니버스"

    그렇구나. 요즘엔 자기가 어떤 걸 좋아하는 지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매튜 같은 사람이 참 좋더라. 자기가 좋아하는 게 명확하고, 그것에 깊게 빠져있는 사람들 말이야.” 나는 캐시에게 말했다.

“응 맞아. 매튜는 정말 버스를 좋아해. 좀 씁쓸하기는 하지만, 버스랑 나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걘 아마 버스를 선택할 거야.” 캐시는 장난스럽게 이야기했다.

“그 정도야?” 비비안이 재미있다는 듯이 약간은 웃으면서, 놀란 듯이 물었다.

“응 맞아. 확신할 수 있어. 매튜는 지금 건축 회사에 다니고 있잖아. 근데 사실, 그의 최종 목표는 버스 기사가 되는 거야.” 캐시는 대수롭지 않은 듯이 이야기했다.

“버스기사?” 나는 약간 놀라서 캐시에게 물었다. 매튜는 대학을 나오지는 않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건축 관련 기술학교에 들어가 기술을 익힌 뒤, 홍콩에서도 손에 꼽히는 건축회사에 입사하여 현재까지 다니고 있었다. 이 건축회사는 비교적 최근에 건설된 홍콩-마카오-주하이(중국 본토)를 잇는 강주아오 대교를 건설한, 기반이 탄탄한 회사였다. 내 기준으로는 아무리 버스가 좋다고 해도 쉽게 내릴 수 없는 결정이었다.

“맞아. 버스기사. 홍콩에서 버스 기사가 되려면 자동차 면허증과는 별개로 버스기사 면허증을 따로 따야 하는데, 이 버스기사 면허증은 일반 면허증을 딴 다음 시간이 조금 흘러야 해. 매튜는 자동차 면허를 딴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아서, 버스기사 면허증을 따기 위한 시험을 보기 위해서는 몇 년 더 기다려야 해. 덕분에, 아직까지 진로를 결정할 시간이 좀 남아 있는 거지. 지금 매튜는 버스기사가 되려고 마음을 굳힌 것 같은데, 그전까지는 이 결정을 내리는 데 고민을 많이 했었어. 아무래도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도 있고, 그 직장에서도 꽤 오래 일했으니까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게 매튜에게도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을 거야.

홍콩 2층 버스의 2층 내부 모습.

근데, 나는 고민하고 있는 매튜에게 “나이가 들면, 새로운 도전을 하기는 쉽지 않으니까 네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너무 고민하지 말고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도전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어. 만약, 매튜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 계속 다니다가 40대가 되고 50대가 되면 그때는 체력적으로도 힘이 많이 부칠 거고 여러 가지 변수가 생겨서 버스 기사를 못 할 수도 있잖아. 내 이야기를 들은 매튜는, 뭔가 마음의 결정을 내렸는지 지금은 몇 년 뒤에 버스 기사 면허증을 따고 버스기사가 될 거라고 이야기하고 있어. 내 생각에는 좋은 결정이라고 생각해.”

“그렇구나. 맞아,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가장 중요하지. 그런데 버스기사가 되면 하루에 10시간씩 운전을 할 텐데 그건 괜찮대?” 나는 캐시에게 물었다.

“응. 사실 남자 친구는 운전하는 걸 너무너무 좋아해. 이번 호주 여행에 갔을 때도 차를 빌려서 여행 다녔었는데, 운전은 항상 남자 친구가 했는데도 즐거워하더라. 그리고 홍콩에서 버스기사들은 돈을 꽤 많이 받아. 한 달에 20,000 HKD(약 388만 원 정도) 정도 받고, 꽤 안정적이야. 근데, 부모님은 조금 안 좋아하시는 것 같더라고.” 캐시가 약간은 걱정스럽게 이야기했다.

“왜 안 좋아하신대?” 나는 질문을 건네는 이 짧은 시간 사이에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버스 기사가 되려고 해서 그런 게 아닐까, 추측해봤다.

“홍콩에서 버스기사랑 손님이랑 꽤 마찰이 잦은 편이야. 몇몇 손님들은 버스기사가 느리게 운전하면 느리게 운전한다고, 빠르게 운전하면 빨라서 위험한 것 같다고 버스기사에게 불만을 표출해. 그것 때문에 싸우는 경우도 많고. 부모님은 그런 게 좀 걱정이 되나 봐. 그래도 그 정도는 버스에 대한 열정이 훨씬 더 큰 매튜니까, 충분히 극복해 낼 수 있다고 생각해.”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음식점의 대기시간은 상당히 길어서 약 45분 정도를 대기하고 나서야 식당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음식점에 들어가서 메뉴를 고르면서, 캐시가 했던 말을 곱씹어 보았다. 동시에, 안정적인 직장도, 수입도 없이 홀로 홍콩에 온 나를 받아준, 지금 내 옆에 있는 비비안을 바라보며 비비안이 나한테 갖고 있는 마음도 캐시가 그녀의 남자 친구에게 갖는 마음과 비슷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런 그녀에게 불현듯 감사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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