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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슬욱 Jul 12. 2019

홍콩 사람들의 정체성과 영국의 책임

나라 없는 슬픔

    홍콩 사람에게 “너는 중국 사람이야, 홍콩 사람이야?”라고 물어본다면 대다수가 “홍콩 사람”이라고 대답한다. 홍콩 사람들은 스스로를 중국 사람들과 다르다고 생각한다. 성숙한 시민의식, 잘 정돈된 도로, 편리하면서 선진적인 도시행정, 세계를 선도하는 금융 중심지로 기능하는 홍콩은 중국 본토의 모습과는 확실히 다르다. 홍콩의 공식 명칭은 “중화인민공화국 특별행정구역”이다. 이 명칭을 통해 알 수 있듯이, 홍콩은 중국에 속한 도시이긴 하나 중국의 다른 도시들과 확실히 구별되는 지위를 가지고 있다. 사회주의가 아닌 자본주의 사회이며, 상당히 제한적인 형태이긴 하나 소수의 시민들은 투표권도 가지고 있으며, 정치와 법 등도 중국 본토와 다른 형태로 운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특수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엄밀히 따지고 보면 홍콩은 1997년 영국 식민지 지위에서 벗어나 중국에 종속된 도시이며 중국 영토의 일부다. 따라서, 누군가가 홍콩 사람에게 “당신은 중국 사람이야, 홍콩 사람이야?”라고 물을 때, 대다수의 홍콩 사람들에게는 납득할 수 없는 사실이겠지만, 자신을 "중국 사람”이라고 해야 옳다.

홍콩섬 완자이(灣仔, Wan Chai) 근처 트램 역 풍경

    중국의 영토라는 “공식적”인 지위와 자신은 중국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비공식적”인 홍콩 사람들의 의식 사이에서 첨예한 가치 충돌이 발생하고 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갈등의 골은 깊어지고 있다. 홍콩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중국이 어느 정도 경제적인 성장을 이룩했다고 할지언정, 그들이 홍콩 사람들이 기대하는 여러 가지 의미의 바람직한 “시민”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반대로 중국 사람들의 입장에서 홍콩 사람들은 중국 정부에 협조적이지 않은 콧대 높은 사람들이다. 홍콩의 발전을 이룩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광동 지방에서 이주해온 광동 지역 사람들이며, 넓게 보면 중국 인종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한족이다. 그러나 이들은 갈라놓은 지난 150년이라는 세월은 두 지역을 아예 다른 국가로 간주해도 될 만큼 다른 모습을 띄게 만들었으며, 이러한 차이는 홍콩 사람들의 정체성에 대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게 되었다. 사실 홍콩 사람들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는 중국 영토로 귀속된 후뿐만 아니라 영국 식민지 시대 때부터 이미 존재했다고 할 수 있는데, 1997년 이전에도 홍콩 사람에게 “당신들은 어떤 사람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이 질문에 명쾌하게 대답을 내릴 수 있었던 홍콩 사람은 매우 드물었을 것이다. 그 당시 홍콩은 공식적으로는 “영국 식민지”였으므로 “영국 영토”였지만, “식민지”라는 지위 때문에 홍콩 사람들은 당연히 영국 본토 사람들과 같은 대접을 받을 수 없었다. 영국 정부는 홍콩 사람들에게 영국 시민 자격을 부여하지 않았으며, 투표권도 없었다. 따라서 홍콩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심각한 정체성 혼란을 겪게 되었다. 그들은 “영국 시민”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중국 사람”도 아니었으며, “홍콩 사람”일 수도 없었다.

2019년 6월 16일 송환법 반대 시위로 200만 명의 시민이 홍콩섬에 모였다

    이 혼란의 근본적인 원인은 홍콩의 지역적 특수성과 영국의 제국주의 식민지 정책 때문이다. 영국이 식민지로 홍콩을 점령하기 이전에 홍콩은 인구 몇 만 명밖에 되지 않는 작은 어촌 마을일 뿐이었는데 영국이 중국과 벌인 1차 아편전쟁 이후 1842년 중국과 맺은 난징조약을 통해 공식적으로 홍콩을 자신들의 식민지로 편입한 뒤 홍콩은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영국인을 비롯한 서양 사람들이 홍콩섬으로 유입되기 시작하고 본토 사람들-그중 대다수는 광동 지역 사람들이었다-도 홍콩 땅에 발을 디디기 시작하면서 발전을 거듭하며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다. 이때 중국에서 유입된 홍콩 사람들에게는 정체성에 대한 문제가 조금 덜 했을 수도 있다. 중국 본토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다가 홍콩으로 이주해온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중국과 홍콩이 다르다고는 생각할 수 있을지언정 본인의 정체성만큼은 스스로를 “중국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으리라고 생각해 본다. 하지만 그 아랫세대로 내려가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지는데, 그들은 영국 식민지 홍콩에서 태어난 한족이기 때문이다. 

    서구 열강이 식민지 전쟁을 벌이던 시기에 그들이 식민지 사람들에게 행했던 행태와 비교해 보았을 때, 영국은 홍콩에서 대량 학살을 일으킨 것도 아니고 홍콩 사람들을 본국으로 끌고 간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이 홍콩에서 행했던 일들은 상대적으로 "신사적"이었다고도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홍콩은 영국의 아시아 전초기지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했으며, 이에 따라 영국은 홍콩 땅에서 상당한 군사적, 경제적 이득을 취해갔다. 1980년대에 중국의 국제적인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 영국은 홍콩에 대한 문제로 중국과 골머리를 앓게 되었다. 영국은 홍콩에 대한 지위를 확실하기 정하지 않고 “중영 공동선언”을 통해 “일국양제” 혹은 “고도의 자치권”이라는 애매한 위치를 부여한 뒤 1997년 홍콩 땅에서 발만 쏙 빼고 나가면서 홍콩 사람들에게 자신 스스로를 누구라고 규정할 수 없는 정체성에 대한 아픔을 남겼다.

도시 곳곳에 남아있는 영국 식민지 잔재. 우측에 보이는 건물은 Tai Kwun(大館)이라고 하며 영국 식민지 시절에 영국 경찰 건물을 비롯한 사법부, 감옥 등이 있었던 곳이다.

    식민지를 경영하고 지배해온 주체에게 “식민지에 대한 사후처리를 확실하게 했어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건 세상 물정을 너무 모르는 일 아니냐며 면박당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150년 이상을 지배해온 땅에 대한 지위를 확실히 하고 떠나는 건 그들의 책임이었다고 생각한다. 홍콩은 중국과 끊임없이 갈등하고 있으며, 말 그래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국과 영국 사이에 체결한 “중영 공동선언”은 1997년 이후 50년 동안만 유효한 협정으로 50년 후인 2046년 이후 홍콩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기 때문에 2046년 이후 홍콩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문제 역시 영국이 확실히 해결하지 않고 떠난 탓에 홍콩 사람들은 2046년 이후 본인들의 거취 문제에 대해 확신할 수 없게 되었으며 다가오고 있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더 기가 막힌 건, 중국과의 대립 때문에 꽤 많은 홍콩 사람들이 1997년 이전의 영국 식민지 시대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2019년 6월 9일, 12일, 16일에 있었던 송환법 반대 대규모 시위에서도 몇몇 홍콩 시민들은 영국 국기를 거리고 가지고 나와 흔들면서 영국 식민지 시대로 돌아가는 것이 낫다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는데, 이를 통해 영국이 얼마나 악랄하게 홍콩을 지배하면서 교묘한 형태로 이익을 취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으며 궁극적으로 영국이 자신들의 식민들에게 원했던 모습이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홍콩이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전혀 예측할 수 없지만, 확실한 건 영국이 홍콩 사람들에게 남긴 상처는 150년 동안의 식민 시절뿐만 아니라, 그들이 떠난 1997년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침사추이에서 바라본 홍콩섬; 경제 발전과는 별개로 홍콩 사람들은 경제 발전과는 별개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 끊임없이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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