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만 홍콩 시민이 거리로 나오다
2019년 6월 16일, 아침 9시 반쯤 눈을 뜬 비비안과 나는 식빵 한쪽과 커피로 간단히 아침 식사를 했다. 평소와는 달리 비비안의 기분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피곤해서 그런 걸까? 약간은 긴장해서 그런가? 아니면, 무섭고 불안한 마음이 평화로운 주말 아침을 지배해서였을까?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갈색빛을 띠는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보았지만, 여전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의 오른쪽 눈 옆으로 땀 한 방울이 천천히 흘러내렸다. 닦아주고 싶었지만, 그녀 스스로 닦게 놔두었다. 6월 중순의 홍콩. 하루 종일 30도가 넘어 푹푹 찐다. 아침, 저녁에도 도무지 시원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도 더위에 힘이 드는지 하루 종일 혓바닥을 내놓고 헥헥거린다. 천천히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휴식을 취했다. 방 안에는 밤새 가동한 에어컨이 남긴 찬 공기의 흔적이 아직까지 남아 있어 조금 낫다. 환기를 위해 문을 열고 카메라와 작은 수첩, 펜, 물통, 손수건을 가방에 넣고 나갈 준비를 한다.
정오 무렵 우리는 집을 나섰다. 대문을 나서자마자 후끈한 공기가 우리를 반긴다. 얼굴에 있는 모든 모공이 열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며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한다. 비비안은 여전히 표정이 안 좋다. 더위, 긴장감, 불안, 걱정 등 복합적인 감정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해 본다. 약속 장소인 타이 와이로 가기 위해 MTR (홍콩 지하철) 역에서 열차를 탑승했다. 점심 식사를 먼저 하기 위해 약속 시간보다 한 시간 정도 일찍 나왔다. 지하철은 들어가자마자 땀이 다 마를 정도로 냉방이 세다. 몇 분만 앉아있으면 땀은 금세 마르고, 추위를 느낄 정도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니 비비안도 약간은 진정이 되는 듯했다. 유난히 겁이 많은 비비안. 오늘 일정에 부담을 느끼는 것 같다. 지하철 탑승 후 약 15분 만에 타이 와이 역에 도착했다. 우리는 역 밖으로 나가 역전에 있는 홍콩식 음식을 파는 현지 식당에 들어가 점심 식사를 했다. 둘 다 밥 위에 달걀 프라이와 돼지고기가 올라간 메뉴를 주문했다. 실내에는 냉방이 되는 듯했지만, 이미 손님들로 가득 차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야외 좌석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가뜩이나 먹는 양이 적고 속도가 느린 비비안인데, 오늘은 입맛까지 없어 보였다. 내 밥그릇은 이미 바닥을 보이고 있는데 비비안의 밥은 아직 한가득이다. 다른 메뉴를 먹을 걸 그랬나, 잠시 후회한다. 비비안이 양식을 먹고 싶다고 했는데 내가 홍콩식 음식을 먹고 싶다고 해서 온 식당이었다. 평소에 홍콩 음식을 자주 먹는 비비안이기 때문에 밖에 나가서는 홍콩식 음식을 잘 안 사 먹으려고 한다. 그래도 오늘은 왠지 홍콩 음식을 먹어야만 할 것 같았다.
식사를 마치고 약속 장소인 타이와이역 내부에 있는 홍함 (紅磡, Hung Hom) 역 방향 승강장으로 갔다. 6명의 비비안 친구들은 이미 도착해 있었다. 오늘은 우리를 포함한 9명의 일행이 함께 움직일 계획인데, 아직 K가 도착하지 않았다. 우리는 승강장 내에서 K를 기다렸다. 가뜩이나 사람들로 붐비는 홍콩 지하철 역인데 오늘은 사람이 더 많았다. 1~2분 간격으로 열차가 승강장으로 끊임없이 도착했지만, 열차는 승객으로 가득 차 있다. 어제는 약 100만 명의 홍콩 시민이 홍콩섬에 모였다고 하는데, 오늘은 그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몰려나올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비비안 친구들의 표정은 밝았다. 비비안도 친구들을 만나자 비로소 긴장이 풀렸는지 입꼬리가 올라가고 눈에는 웃음기가 번진다. 친구들은 나에게 외국인인데 왜 오늘 함께 가게 되었냐고 질문했다. 나는 "저는 자유를 지지하기 때문이에요"라고 대답했다. 내 말을 들은 친구들은 나에게 고맙다고 이야기했는데, 당연히 가야 할 장소이기 때문에 특별히 나에게 고마워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K가 도착했다. K는 일행에게 미안하다고 이야기했고 우리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홍콩 사람들은 지각에 관대한 편이다. 열 대 이상의 열차를 떠나보내고서야 비로소 우리는 열차에 탑승하여 이동했다. 타이 와이 역도 사람으로 북적이긴 했지만 열차를 못 탈 상황까지는 아니었는데, 홍콩섬 라인의 환승역인 몽콕 역의 상황은 달랐다. 통로가 인파로 가득 차 있었고 앞으로 나아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무리에 껴서 슬금슬금 앞으로 나아가다 보니 승강장으로 내려갈 수는 있게 되었지만, 아래는 문제가 더 심각했다.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승강장에 꽉 차있었는데 문제는 역으로 들어오는 열차 역시 승객들로 가득 차 있어, 각 열차에 한두 명 정도만 추가로 탑승할 수 있었다. 우리는 30분 이상을 열차를 타기 위해 하염없이 기다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고민 끝에 리더십이 있는 C가 홍콩섬 역방향으로 몇 개 역을 간 뒤 열차를 타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우리는 그렇게 하자고 대답했다. 몽콕 역에서 7개의 역을 뒤로 간 콰이퐁 (Kwai Fong) 역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홍콩섬으로 가는 열차에 탑승할 수 있었다.
콰이퐁 역에서 출발한 열차는 몇 개 역을 지나자, 이내 승객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고 몽콕 역에 도착했을 때는 우리가 경험했던 것과 같이 더 이상의 사람이 들어설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열차는 몽콕 역을 지나 조던, 침사추이 역을 지나갔지만 내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같은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는 듯했다. 애드미럴티 (金鐘, Admiralty) 역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열차 안에 있는 승객 반 정도가 내렸다. 우리는 오늘의 목적지인 완차이 (灣仔, Wan Chai) 역으로 가기 위해 종점인 센트럴 (中環, Central) 역까지 한 정거장을 더 가서 파란색 홍콩섬 라인으로 환승했다. 애드미럴티 역에서 내리지 않은 나머지 반이 센트럴에서 내렸고 승객들은 센트럴 역 안에 있는 인파에 녹아들었다. 몽콕 역처럼 이곳 역시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어렵지 않게 열차를 탑승할 수 있었다. 하지만 완차이 역에 다다르자 상황은 조금 달라졌다. 하차하는 승강장부터 사람으로 가득 차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되었는데, 지상으로 나가는 것조차 쉽지 않아 보였다. 별 다른 방법이 없어서 인파에 섞여 천천히 지상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중간에 에스컬레이터가 있었지만 안전상의 이유로 멈춰 있었고 사람들은 그 위를 계단을 올라가듯이 천천히 걸어 올라가고 있었다. 에스컬레이터 계단을 다 오르니 상황은 조금 나아졌다. 아직도 사람이 많긴 했지만, 사람 사이에 공간이 조금 생겼다. 30분 정도의 사투 끝에 완차이 땅에 발을 내딛을 수 있었다. 출구 앞, 홍콩섬 북부의 동쪽 끝과 서쪽 끝을 잇는 중심 도로는 행진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 큰 도로가 사람들의 행렬로 가득 차는 게 신기할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모였다. 행진의 시작점이 시작점이 코즈웨이 베이 (銅鑼灣, Causeway Bay) 인지, 틴 하우 (天后站, Tin Hau)인지, 포트리스 힐 (炮台山, Fortress Hill)인지, 노스 포인트 (北角, North Point)인지, 아니면 동쪽 끝의 차이완 (柴灣, Chai Wan)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거리 곳곳에는 민주당 소속으로 추정되는 정치인들, 각 대학교의 학생 대표들, 시민단체 회원들이 단상 위에 올라가 연설하고 있었고, 그 옆을 지나가는 시민들은 연설에 호응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주로 행정장관 캐리 람의 사퇴 요구, 송환 법 철회, 일국양제 준수에 관한 것이었다.
우리는 사람들 무리와 함께 오늘의 목적지인 애드미럴티 역으로 행진했다. 34도가 넘는 찌는듯한 더위에 사람들까지 밀집되어 있어 더위는 배가 되었다. 더위 때문인지, 분위기 때문인지, 아니면 삶의 터전에 대한 걱정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홍콩 섬에 도착하기 전에는 밝은 표정이었던 비비안의 친구들은 웃음을 잃은 채 무표정으로 거리를 걷고 있었다.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걷고 있을까? 1997년 이후 홍콩은 중국과 상당히 밀접한 관계가 되었다. 하루에 수백 명의 중국인들이 홍콩으로 유입된다. 많은 사람들이 돈 많은 중국인들이 홍콩의 집값을 올려놓았다고 믿는다. 카오룬 (Kowloon) 역에는 얼마 전 중국 본토로 연결되는 초고속 열차 (High Speed Railway) 역이 생겼다. 이제 홍콩에서 기차를 타면 중국의 어느 도시든 갈 수 있다. 몽콕 버스 터미널에서는 광동 각지를 연결하는 버스가 운행되고 있다. MTR은 선전과 맞닿아있는 출입국 사무소까지 연결되어, 카오룬 반도 끝 홍함에서 1시간 이내에 선전 접경지대에 도착할 수 있다. 중국 사람들은 홍콩에 하루 일정으로 쇼핑 여행을 온다. 홍콩 사람들도 하루 일정으로 선전에 여행을 다녀온다. 홍콩 대학에는 수많은 중국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선전에서 홍콩으로, 홍콩에서 선전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도시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홍콩에 살고 있는 시민조차도 이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끝없는 터널을 기약없이 걸어가고 있는 느낌일 것이다. 걸어서 30분 정도면 닿을 거리를 약 2시간이 지나서야 도착했다. 정부 관련 건물들이 모여 있는 애드미럴티 역 앞에서 시민들은 계속해서 시위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비비안의 친구들은 이 곳에 남아 저녁까지 시위를 계속할 생각이었지만, 나와 비비안은 많이 지쳐서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이 날 다행히 경찰과의 무력 충돌은 없었으며, 시위 또한 평화롭게 진행되었다.
그 날 이후 약 5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11월 초가 되었고 홍콩의 날씨도 많이 선선해졌다. 해가 떠있는 낮에는 30도에 근접하는 날도 있을 정도로 덥긴 하지만,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홍콩은 일 년 내내 더운 줄로만 알았는데, 바람이 불면 생각보다 많이 시원하다. 이 바람은 쌀쌀한 겨울을 경고하는 바람일까 아니면, 겨울 뒤에 올 따뜻할 봄을 알리는 신호탄일까. 이것 역시 알 길이 없다. 6월 16일, 200만 명의 홍콩 시민이 홍콩섬에 모였던 시위는 최대 규모의 시위로 기록되었고 그 후 주말마다 홍콩에서는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시위 장소는 홍콩섬뿐만 아니라 구룡반도의 몽콕, 침사추이 그리고 신계의 사틴, 타이포 등 다양하다. 시위는 점점 격렬해졌다. 시위대는 공공기물을 파손하고, 지하철 역 출구에 불을 지르고, 중국 정부를 지지하는 가게를 부순다. 경찰은 이들을 진압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몇 달 전에 경찰은 처음으로 총을 사용했다. 위협탄이었고, 하늘에 발사한 것이었지만 상황은 악화되고 있다. 얼마 전에는 경찰이 시위에 참여한 고등학생의 가슴에 실탄을 발사했다. 시민들은 경찰에 더욱 분노하고 있다. 비비안의 갈색 빛깔이 도는 눈동자에서는 아직도 생각을 읽을 수가 없다. 시위는 주말마다 꾸준히 일어나고 있지만,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다. 송환법 자체는 철회되었지만, 진전이 없다고 느낀다. 이 사람들 손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비관론이 머리를 지배하고 있고, 홍콩 사람들도 그렇게 변해가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