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대중교통과 자동차
수요일에 홍콩에 도착한 뒤 금요일까지 비비안은 아침 일찍 일하러 갔다가 밤늦게 들어왔고, 나는 나 대로 홍콩에 막 도착했던 터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으며, 한가득 가져온 짐 정리도 해야 했기 때문에 어디를 나갈 여유가 없었는데 주말이 되어서야 비로소 여유가 생겨 외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홍콩에서 맞은 3월 중순의 첫 주말은 생각보다 날씨가 쌀쌀했다. 밖에만 나가도 습식 사우나에 들어온 것 같이 더워 야외활동을 할 수 없을 거라고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기온은 20도 정도로 한국의 봄, 가을 날씨였고 바람도 뜨거운 공기를 머금은 바람이 아닌,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반팔, 반바지 차림으로 밖에 나갔다가 꽤나 차가운 바람이 맨살에 부딪치는 걸 느끼곤, 집에 다시 들러 긴 바지로 갈아입고 걸칠 옷을 가지고 나왔다. 첫나들이 장소로 어디를 갈지 고민하다가, 센트럴과 더불어 여행객들에게 가장 유명한 침사추이에 가기로 했다. 집 아래에 있는 마온샨 역에서 2층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침사추이까지 쉽게 갈 수 있었다. 2층 버스는 환승하지 않고 한 번에 가지만 주말이라 시내 쪽이 막혀 지하철보다 시간이 더 오래 걸리고, 지하철은 2층 버스보다는 빠르지만 환승을 3번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어떤 대중교통을 이용할지 고민하다가, 환승을 하더라도 빨리 도착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지하철을 타기로 결정했다.
“오늘 우리 몇 번이나 환승해야 돼?” 내가 약간은 걱정스럽게 물었다.
“아마 3번? 4개 호선을 거쳐야 하니까 3번 갈아타야 하네.” 비비안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3번이나? 꽤 많이 갈아타야 하네.”
“맞아. 그런데 걱정 안 해도 돼. 홍콩 지하철은 환승할 때 시간이 별로 안 걸려.”
홍콩이라는 도시를 대표하는 키워드를 하나만 꼽자면 “높은 인구밀도”다. 서울의 약 2배 정도밖에 안 되는 좁은 땅에 현지인들이 부대끼면서 사는 것도 모자라, 세계 각지에서 오는 여행객들로 홍콩은 일 년 365일 붐빈다. 지하철은 홍콩의 높은 인구밀도를 가장 빠르게 느낄 수 있는 장소다. 중심가의 거의 모든 지하철 역은 사람들로 바글바글하다. 이런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더 효율적으로 승객을 실어 나르지 않는다면, 지하철 역은 인파에 묻혀 정상적인 운행을 할 수 없다. 따라서, 홍콩 지하철 시스템은 “최단 시간에 최대의 승객을 실어 나를 수 있도록” 최적화되어 있으며, 이에 따라 홍콩 지하철에서만 볼 수 있는 흥미로운 특징들이 있다.
먼저 홍콩 지하철은 배차간격이 매우 짧다. 우리나라 지하철은 출퇴근 시간대를 제외한 보통 시간에는 배차간격이 5분 이상 되는 경우가 많은데, 홍콩 지하철의 경우 배차간격이 짧아 대부분 3분 이내로 다음 열차가 도착한다. 만약 눈 앞에서 전동차를 놓친다고 하더라도 다음 열차가 들어와 바로 승차할 수 있기 때문에 승객들은 무리하게 열차를 타려고 서두르지 않는다.
다음으로, 홍콩 지하철의 에스컬레이터는 속도가 매우 빠른데 체감상 우리나라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속도의 2배는 되는 것 같다. 사실 지하철 역에 있는 에스컬레이터뿐만 아니라 쇼핑몰, 관광지, 심지어 아파트 등에서 운행되는 에스컬레이터의 속도 또한 매우 빠른데, 홍콩은 사람으로 안 붐비는 곳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나마 익숙해졌지만, 처음 홍콩의 에스컬레이터를 탔을 때 속도가 너무 빨라 넘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타고 내릴 때 아주 조심해야만 했다.
마지막으로, 홍콩 지하철은 노선 간 환승 거리가 매우 짧다. 한국 지하철의 경우, 환승 거리가 짧은 역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역도 많다. 예를 들어, “고속터미널” 역의 9호선과 7호선 사이의 거리는 매우 길어 환승하려면 어림잡아 10분 정도는 걸린다. 하지만 홍콩의 지하철은 한국 지하철처럼 환승 거리가 꽤 되는 역들도 있지만 (예를 들면 “카오룬텅(Kowloon Tong)”역이나 “애드미랄티(Admiralty)”역 츈완라인(붉은색)과 쿤통라인(연두색) 환승 시), 몇 개의 역을 제외하고는 걸어서 3분 이내면 다른 호선으로 환승할 수 있다. 특히 조던이나 몽콕 같은 구룡반도 중심가에 있는 역은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반대편에 다른 호선이 다닐 정도로 환승 거리가 가깝다. 따라서, 홍콩 지하철에서 환승을 여러 번 해도 번거롭지 않고,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는다.
차를 몰고 시내에 나가면 좋았겠지만, 비비안의 가족 중 차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웬만한 홍콩 사람들은 자동차가 없는데, 차를 비교적 쉽게 소유할 수 있는 우리나라와 대조적이다. 홍콩의 도로는 대부분 2차선이나 4차선으로 매우 좁아 많은 차들이 다닐 수가 없다. 게다가, 사람들이 거리로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와 도로를 침범하기도 하고, 신호를 무시하고 도로를 건너는 경우도 더러 있기 때문에 도로는 항상 혼잡하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인구밀도”다. 홍콩 인구조사기구에 따르면, 2018년 기준 홍콩의 인구밀도(인구/km2)는 6,732로 대한민국(515)의 약 13배다. 이러한 상황에서 누구나 차를 쉽게 구입하고 소유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좁은 도로는 차와 사람으로 막혀 마비될 것이고, 사람들은 하루 종일 교통체증에 시달릴 것이다. 이런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 홍콩 정부는 매우 제한적인 사람만이 자동차를 소유할 수 있도록 특단의 조치를 취해 놓았는데, 이는 바로 엄청난 세금이다.
홍콩에서 자동차 가격 자체는 그렇게 비싸지 않지만, 구입과 동시에 엄청난 양의 세금을 정부에 내야 한다. 위의 표를 참고해 보면, 200,000 HKD(우리나라 3,000만 원) 짜리 자동차를 사면, 똑같은 금액을 세금으로 내야 하니, 결국 차 가격은 6,000만 원으로 두배가 된다. '돈을 좀 더 번 다음에 사면되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자동차를 구매한 다음이 더 문제다.
홍콩은 땅이 매우 귀하기 때문에 주차요금도 비싸다. 백화점, 쇼핑몰, 공원 등에 갈 때 내야 하는 주차요금도 매우 비쌀뿐더러, 거주하는 아파트, 주택의 주차 공간도 사용 요금이 있다. 우리나라는 공짜로, 혹은 관리비만 내면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 주차장에 별문제 없이 차를 댈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홍콩은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의 주차장을 이용하더라도 상당히 비싼 주차요금을 내야만 한다. 위에 첨부한 사진을 예로 들면, 한 달 주차비는 3,800 HKD(약 55만 원)이다. 홍콩은 신기하게 주차 공간을 판매하기도 하는데, 사진의 주차 공간을 구매하려면 1,750,000 HDK (약 2억 5천200만 원)을 내야 한다. 따라서, 자동차를 소유하는 것 자체만으로 웬만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감당할 수 없는 돈을 매달 지불해야만 하기 때문에 돈이 아주 많은 사람이 아닌 이상 홍콩에서 자동차를 소유하기는 힘들다. 덕분에 홍콩 거리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인도에 비해 차도는 비교적 한적하고 출퇴근 시간대를 제외하면 교통체증이 상대적으로 심하지 않다.
홍콩 정부는 시민들의 차 소유를 엄격하게 제한하는 대신, 엄청나게 편리한 대중교통 서비스를 제공한다. 사람들로 늘 북적이고 중심가로 갈수록 자리에 앉아서 가는 경우가 드문 지하철이긴 하지만, 배차간격이 짧고, 환승도 빠르게 할 수 있으며, 에스컬레이터의 속도도 빠르기 때문에 이용하는 데 큰 불편함은 없다. 버스 같은 경우에도 거의 모든 버스가 2층 버스라 상대적으로 많은 승객이 한거번에 탑승할 수 있어 효율적이고, 배차간격도 짧아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되며, 홍콩에 안 가는 곳이 없다고 해도 될 정도로 홍콩 전역을 누빈다. 따라서, 홍콩 사람들은 자가용이 없다고 하더라도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홍콩의 다양한 장소를 쉽고 편리하게 다닐 수 있다. 우리도 지하철에 몸을 실으니, 신도시인 마온샨에서 구룡반도의 중심가인 침사추이까지 약 40분 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중심가로 갈수록 지하철에 사람이 많이 타 전동차 안이 복잡하고 정신없긴 했지만, 북적이는 도로와 바쁜 사람들의 모습이 홍콩이라는 도시의 색깔이자 매력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