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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슬욱 Aug 22. 2019

홍콩 시장에서 찾은 로컬푸드

성완 전통시장

    홍콩에는 가이시(街市)라고 하는 전통 시장이 있다. 가이(街)는 거리, 시(市)는 시장을 뜻하니 가이시는 “길거리 시장”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데 그 모습은 우리나라 전통시장과 매우 비슷하다. 가이시 안에는 과일가게, 야채가게, 정육점, 빵집, 약국, 한약방, 생선가게 등등 다양한 가게가 들어와 있어 홍콩 현지 사람들은 필요한 물품을 사기 위해 가이시를 많이 찾는다. 무엇보다 가이시는 “싸다”. 바나나 5-6개가 달린 한 송이에 약 11 hkd(1,650원), 청경채나 가이란 등 데쳐서 먹는 야채 한 단에 약 10 hkd(1,500원)로 매우 저렴한데 이는 “Taste” 나 “Market place” 등 홍콩 현지 대형 마트 브랜드에서 파는 제품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도 상당히 저렴하다. 가이시 안에는 꽤 다양한 종류의 음식점도 있는데 보통 홍콩식 밥집, 국수가게, 디저트 가게가 들어와 있다. 식당 역시 홍콩의 다른 일반적인 음식점과 비교해 보았을 때 가격이 상당히 저렴하고, 맛도 있어 항상 사람들로 붐빈다. 푸짐한 양의 식사에 한잔의 음료까지 제공되는 곳이 많다.

    우리 회사 사람들은 거의 매일 점심을 먹으러 가이시에 간다. 특히 남자 동료들이 가이시 음식을 좋아하는데, 여자 동료들은 매일 가이시에 가게 된다며 불평하기도 한다. 음식값이 저렴하고 양이 많은 가이시 음식이지만 솔직히 말하면 식당이 청결하지는 않고, 워낙 사람이 많고 북적여 편히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장소는 아니다. 하지만 가이시에서는 사람 냄새가 난다. 점원들은 분주하게 음식을 나르고 치우고, 주방에서는 끊임없이 음식을 만들어 내며, 손님들은 시끄러운 틈 사이로 주문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인다. 식당에서는 다른 기다리는 사람들을 빨리 받기 위해 다 먹은 손님에게 빨리 나가라고 재촉하기도 하고, 다 먹은 접시를 재빠르게 치우기도 하지만 그런 점원에게 단골손님들은 천천히 해도 되지 않겠냐며 능청스럽게 농담을 건네기도 한다. 점원은 바쁜 북새통 속에서 아무 표정 없이 급하게 일하다가도 손님에게 이런 농담 한 마디를 들으면 잠시 긴장을 늦추며 입가에 웃음을 짓는다. 매일 집에서 지하철 4번을 갈아타야 다다를 수 있는 성완으로 출근해야 하기 때문에, 출근하기도 전에 지친 기분이 들 때도 있지만 '가이시에서 어떤 음식을 먹어볼까'라는 기대감으로 순탄치만은 않은 출근길을 견뎌내곤 한다.

성완에 있는 가이시 내부

    성완의 가이시는 회사에서 5분 정도 거리에 있다. 1층, 2층에는 일반적인 식료품점이 주로 들어서 있고, 3층에 식당이 있다. 넓은 홀에 푸드코트 형태로 많은 가게들이 들어서 있으며 모두 비슷한 홍콩식 음식을 팔고 있다. 그 가게들 중 안쪽에 우리 회사 사람들의 단골집인 동키(棟記, Dong Kee)가 있다. 홍콩 음식점에는 기(記) 자를 많이 쓴다. 이 글자는 우리나라 음식점에서 많이 쓰는 "~네" 혹은 "~집"과 비슷한 의미이다. 우리가 주로 먹는 메뉴는 11시 30분부터 14시 30분까지 판매하는 점심식사 메뉴로, 음료가 포함된 식사를 40 HKD(약 6,000원)에 즐길 수 있다. 우리나라는 식사를 할 때 먹는 반찬의 가짓수가 많지만 홍콩은 그렇지 않다. 큰 접시를 하나만 사용하고, 그 안에 밥과 반찬을 모두 담아 먹는데 이를 딥다우판(碟頭飯, rice on a plate)이라고 한다. 이렇게 음식을 한 접시에만 담는 이유를-홍콩에서는 기본적으로 밥과 함께 먹는 반찬의 가짓수가 많지 않으며,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손님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청소하는 시간을 최대한으로 단축하기 위함-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음료는 레몬티, 커피, 밀크티 등이 있다. 식당 방문 전에 다른 음료를 마셔볼까 생각하다가도, 더운 날씨에 마시는 차가운 밀크티를 워낙 좋아하여 항상 시원한 밀크티를 주문하게 된다. 40 HKD로 제공되는 점심 식사는 총 9개인데 이 중 독자분들에게 맛있게 먹었던 음식 네 가지를 소개해드리고자 한다.

전형적인 홍콩식 밀크티(좌), 통키의 메뉴판(우)


#1. 폭찹 덮밥

    쥬파판(猪扒飯)이라고 불리는 돼지고기(폭챱) 덮밥은 홍콩 사람들이 아주 즐겨먹는 음식 중 하나이다. 쥬파(猪扒)는 광둥어로 폭챱을, 판(飯)은 밥을 뜻한다. 밥을 접시에 깔고 위에 쥬파를 올린 뒤 약간의 채소, 소시지 등을 곁들여 먹는 음식이다. 소스가 올려 나오는 경우도 있고 계란 프라이나 볶은 파 등이 나오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가게마다 다르다. 쥬파(猪扒)는 홍콩에서 아주 대중적인 돼지고기 요리로 돼지갈비 혹은 목살 부위를 두툼하게 잘라 구운 것이다. 쥬파의 활용법은 아주 다양한데, 쥬파판처럼 밥 위에 올려 먹기도 하고, 광동식 혹은 운남식 쌀국수에 올려 먹기도 하며(쥬파민), 간장 양념을 하여 밥반찬으로 먹기도 한다. 성완 가이시의 쥬파판은 큼지막한 쥬파와 소시지 두 개, 약간의 브로콜리에 잘게 자른 마늘이 들어간 칠리소스가 듬뿍 올라가 있었다. 쥬파는 아주 부드러웠고 칠리소스는 밥과 아주 잘 어울렸다.


#2 카레라이스

    '한국 카레가루를 쓴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맛이 비슷했다. 한국 카레를 외국에서 맛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왠지 모르게 반가웠다. 특징이 있다면 카레에 소고기가 엄청나게 많이 들어있다. 사실 한국에서는 외식할 때 고기가 적은 경우가 많은데, 여기는 ‘이래서 남는 게 있나’ 싶을 정도로 소고기가 많이 들어 있었다. 기본적으로 홍콩 고깃값이 한국의 고깃값보다 싼 것도 있지만, 이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엄청나게 많은 고기양이었다. 살코기와 함께 도가니가 들어가 있다. 주로 탕으로 먹던 도가니가 들어있어 약간은 어색하기도 했지만, 부드러우면서 쫄깃한 도가니와 카레의 궁합은 꽤 좋았다. 쌀은 길쭉하며 찰기 없이 흩날리는 쌀이었다.

한국 카레와 거의 비슷했던 홍콩 가이시 카레라이스
쌀은 흩날리는 쌀이었으며, 고기가 상당히 많이 들어있다.
이렇게 도가니가 들어가 있다.

#3. 돼지고기가 올라간 튀긴 면

    가이시에서 먹었던 음식 중 가장 특이하면서도 인상 깊었던 면 음식으로, 욕시차우민(肉絲炒麵)이라고 한다. 욕시는 자른 돼지고기를, 차우민은 볶음국수를 뜻한다. 여기서 면을 주목해야 하는데, 삶은 면이 아니라 튀긴 면이다. 튀긴 면 위에 자른 돼지고기, 파, 버섯 등을 넣고 만든 걸쭉한 소스를 올린 음식이다. 소스는 우리나라 중식당에서 쉽게 먹을 수 있는 유산슬의 소스와 매우 비슷하여 먹는 데 이질감이 없었다. 면을 튀겨서 그런지 먹다 보면 조금 물리는 느낌이 있고 식사 말미에는 상당히 느끼했지만, 튀긴 면의 식감과 걸쭉한 소스의 조합은 바삭함과 부드러움이 공존하는 식감이어서 맛도 있고 먹는 재미도 있었다. 이 식감은 시리얼에 우유를 부어 먹을 때나, 탕수육 위에 소스를 부어 먹을 때의 느낌과 상당히 비슷했다. 바삭함을 느끼고 싶을 땐 소스를 조금만 묻혀서 먹고, 부드러움을 느끼고 싶을 땐 소스를 흥건히 묻혀 먹었다. 역시 고기 양이 많아 마음껏 고기를 집어 먹을 수 있었다.

튀긴 면이 인상적이었던 肉絲炒麵.


#4. 오징어튀김밥

    오징어 튀김, 삶은 양상추, 밥이 함께 나오는 음식으로 오징어를 잘게 썬 마늘과 함께 튀긴 것이 인상적이었다. 광둥어로는 蒜香炸鮮魷飯라고 한다. 蒜香은 마늘향, 炸은 튀김, 鮮魷는 신선한 오징어, 飯은 밥을 뜻한다. 마늘 덕분에 오징어에서는 잡내가 전혀 나지 않았고 오징어 튀김 사이사이로 씹히는 게 일품이었다. 식탁마다 주황빛 도는 고추 소스가 있어서 오징어에 찍어먹어 보았는데 궁합이 상당히 좋았다. 우리나라 고추장보다 조금 더 묽었으며 맵지는 않았다. 오징어튀김은 반찬보다는 안주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에어컨이 없어 실내 공기는 뜨거웠고, 벽마다 붙은 수많은 선풍기들만이 분주하게 식당 안의 열기를 식히고 있었다. 선풍기 엔진 소리는 식당 안 홍콩 사람들의 리드미컬한 광둥어 소리, 부엌에서 새어 나오는 요리 소리, 천장에 붙어 환풍기 소리와 뒤섞여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는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밥을 다 먹기가 무섭게 점원이 식탁으로 다가와 접시를 치워갔고, 우리 뒤에는 네 명으로 구성된 한 일행이 자리가 나길 기다리며 우리를 힐끔 쳐다보며 서있었다. 컵 안에 밀크티와 함께 조금 남아있는 얼음조각들은 도시의 덥고 빠르고 복잡한 분위기에 녹아내리고 있었고, 밀크티는 녹은 얼음과 섞여 매우 옅은 갈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이 얼음과 남은 밀크티를 구출하듯이 단숨에 한 입에 털어 넣으며 도시의 빠른 리듬에 맞춰 바쁜 발걸음으로 시장을 빠져나왔다.

가이시 내부. 넓고 사람으로 북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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