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캐슬욱 Aug 18. 2019

홍콩에서 꼭 먹어봐야 할 빵

파인애플 번(菠蘿包; 뽀로바오)

   모처럼 주말에 비비안과 쉬는 날이 맞아 우리는 어떻게 시간을 보낼까 고민하다가 점심 식사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비비안은 내가 홍콩에 온 다음 아직 뽀로바오(菠蘿包; 파인애플 번)를 먹어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너 아직 뽀로바오 안 먹어봤어?" 비비안이 물었다.

    "응 맞아. 맨날 먹어본다고 하고 아직까지 안 먹어보고 있었네."

    "그렇구나. 그럼 우리 오늘 뽀로바오 먹으러 가자. 집 아래 베이커리에서 사 먹어도 되지만, 우리 아직 점심을 안 먹었으니까 식당에 방문해서 먹는 게 더 좋을 것 같아. 어디가 맛있는지는 우리 엄마가 더 잘 알고 계실 테니, 내가 한번 물어볼게."

    뽀로바오는 홍콩을 대표하는 홍콩식 빵이다. 뽀로(菠蘿)는 파인애플을, 바오(包)는 빵을 뜻한다. 직역하면 "파인애플 빵"인데, 이름과는 달리 빵 안에 파인애플이 들어있지는 않다. 뽀로바오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빵의 생김새가 파인애플과 닮았기 때문인데, 빵의 윗부분이 오돌토돌하여 그 모습이 꼭 파인애플의 겉모습과 닮았다. 맛있는 뽀로바오는 이 부분이 적당히 달콤하며 바삭바삭하고 안쪽 빵은 솜처럼 부드럽다. 뽀로바오의 기본 형태는 빵 안에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지만, 기본형을 반으로 가른 뒤 그 안에 재료를 채워 넣은 "친구들"이 많이 있다. 디저트나 간식보다 식사 느낌으로 먹는 햄을 넣은 햄 뽀로바오(餐肉菠蘿包), 돼지 바비큐 뽀로바오(叉燒菠蘿包) 등이 있고 팥 뽀로바오(紅豆菠蘿包), 커스터드 뽀로바오(奶黃菠蘿包), 버터 뽀로바오(菠蘿油; 특별히 뽀로야오라고 부른다)도 있다. 사실 빵을 반을 가른 뒤 어울리는 재료를 넣으면 되는 것이니, 만들어낼 수 있는 뽀로바오의 종류는 무궁무진하다. 뽀로바오는 에그타르트와 함께 홍콩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빵이자, 즐겨먹는 빵 중 하나로 보통 아침이나 애프터눈 티로 차나 커피를 곁들여 먹는다. 우리나라의 소보로빵과 매우 비슷한데, 차이점이 있다면 빵 위의 바삭바삭한 부분의 두께가 얇고 표면에 전체적으로 넓게 깔려있다는 것이다. 

 뽀로바오 가운데를 가르고 버터를 넣은 뽀로야오. 사진출처: flickr

    "엄마가 방금 좋은 식당을 알려줬어. 지금 살고 있는 신계(新界; 카오룬 반도 위쪽의, 선전과 인접해 있는 비교적 최근에 개발된 지역)에서 살기 전, 우리 엄마는 카오룬 반도의 몽콕(旺角)에서 오래 살아서 그쪽을 잘 아는데, 몽콕에 홍린(康年餐廳, Hong Lin)이라고 하는 차찬텡(茶餐廳; 음료, 빵, 음식 등 다양한 홍콩 음식을 파는 홍콩 스타일 음식점) 식당에서 파는 뽀로바오가 맛있대. 옛날에는 대부분의 차찬텡에서 직접 빵을 구워냈는데 요즘에는 큰 공장이 있는 한 회사에서 빵을 공급받아서 직접 빵을 굽는 식당이 드문가 봐. 근데 홍린에서는 직접 빵을 굽는다고 해. 갓 구워낸 빵을 바로 주문해서 먹을 수 있으니까 좋을 거라고 엄마가 추천해 주셨어. 여기로 가볼까?" 비비안이 나에게 물었다.

    "그래. 거기로 가보자" 어느 뽀로바오가 맛있는 지조차 모르는 나였기 때문에, 알겠다고 따라나서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MTR(홍콩 지하철)을 타고 몽콕으로 향했다. 어제는 맑았지만 오늘은 아주 흐리고 간헐적으로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기도 했다. 열차는 주로 야외에 놓인 철로 위를 달렸는데, 열차 창문으로 보이는 홍콩 풍경이 꽤 인상 깊었다. 홍콩의 고질병이라고 할 수 있는 주택 문제를 아는지 모르는지, 창밖으로 보이는 홍콩의 수많은 아파트들은 무표정으로 하늘 높이 솟아있었다. 그 옆으로는 학교, 운동장, 병원, 식당 등이 아주 촘촘히 모여있었는데, 서울의 2배도 되지 않는 제한적인 땅 안에 이 모든 것이 들어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이 건물들은 서로를 마주하며 홍콩 사람들의 빠른 생활 리듬에 맞추기 위해 가파른 숨을 내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환승을 두 번이나 하긴 했지만, 좁은 배차간격 및 짧은 환승 거리 덕분에 약 40분 만에 몽콕 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지하철에서 내렸지만 여전히 날은 흐렸고 빗방울이 한두 방울씩 떨어지고 있었다. 지하철역과 이어져 있는 육교는 몽콕 역을 중심으로 문어다리처럼 뻗어 수많은 몽콕의 거리들에 닿아 있었다. 주말이었으므로, 몽콕에도 역시 필리핀, 인도네시아, 태국 등지에서 온 가정부들이 모처럼 휴일을 맞아 삼삼오오 모여 소소한 소풍을 즐기고 있었다. 그들은 각자 집에서 음식을 준비해 와 돗자리를 펴 놓고 그 위에 음식을 놓고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인상 깊었던 건 그중 상당수의 사람들이 휴대폰을 들고 가족들과 영상 통화를 하며 타지에서의 외로움을 달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육교 위를 5분 정도 걸은 뒤, 홍린 식당에 도착했다. 빵으로 유명한 가게답게 홍린 식당 입구에는 갓 구워낸 빵들을 진열해놓고 있었는데 뽀로바오뿐만 아니라, 에그타르트, 닭고기 타르트, 식빵 등 다양한 빵이 진열되어 있었다. 빵들을 잠시 구경한 뒤 식당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가게 앞에 진열되어 있는 다양한 종류의 빵들

    2시 반 정도 된 점심시간이 지난 애매한 시간인데도 식당 안은 붐볐다. 사실 홍콩 사람들은 점심을 거르고 점심보다 조금 더 늦은 시간에 애프터눈 티를 식사와 함께 즐기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이 시간에 식당이 붐비는 게 이상하지는 않았다. 식탁과 의자의 크기가 작고, 자리 간 간격이 좁으며, 북적이는 전형적인 홍콩 식당이었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나누며 앞에 놓인 음식을 부지런히 먹고 있었고, 식탁 사이사이에 난 좁은 길로 식당 직원들이 끊임없이 음식을 운반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약 1m 정도 되는 철로 된 큰 쟁반을 머리에 이고 식당을 분주하게 오고 가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 쟁반 위에는 갓 구워낸 빵들이 가지런하게 올려있었다. 홍콩의 식당들은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기 위하여 1인당 소비해야 할 최소 금액을 정해놓은 경우가 꽤 있는데, 홍린도 1인당 18 hkd(약 2,700원)을 써야 했다.

전형적인 홍콩 스타일 음식점이었던 홍린

    "뽀로 바오 말고 또 먹어보고 싶은 빵 있어?" 식당 안을 둘러보고 있던 나에게 비비안이 물었다.

    "음 글쎄... 에그타르트?"

    "그래 에그타르트도 하나 먹자. 그리고 내가 너한테 추천해주고 싶은 빵이 하나 있거든. 이것도 홍콩에서 유명한 빵인데 한 개 주문할 테니 같이 먹어보자."

    "그래 좋아. 음료는 뭐 시킬까?"

    "여기 네가 좋아하는 홍다우뱅(紅豆冰) 있으니까 그거 마시자" 

    "그래 좋아"

뽀로바오

   홍다우뱅은 우리가 흔히 먹는 팥빙수 팥에 우유를 넣고 그 위에 잘게 자른 얼음을 넣은 음료로, 홍콩에서 꽤 대중적인 음료이다. 홍다우(紅豆)는 팥을, 뱅(冰)은 얼음을 뜻한다. 주의해야 할 점은 얼음을 빼고 음료를 마시는 게 아니라 숟가락을 이용해 팥, 우유, 얼음을 함께 떠서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얼음을 음료와 함께 먹어야 하기 때문에 홍다우뱅에는 보통 크기의 얼음이 아닌 작은 얼음이 담겨 나온다. 음료의 맛은 팥빙수 맛과 매우 비슷했다. 우리는 장난 삼아 "녹은 팥빙수 음료"라고 부르곤 했다.

홍다우뱅

    뽀로바오와 함께 에그타르트와 칵테일 번을 주문했다. 세 빵의 가격은 모두 6 HKD(약 900원)로 한화 1,000원이 되지 않아 아주 저렴했다. 홍콩의 에그타르트는 피가 쿠키처럼 부드러운 것과 포르투갈식 에그타르트처럼 얇은 겹이 겹겹이 붙어 있는 바삭한 것 두 종류가 있는데 홍린의 에그타르트는 전자였다. 홍콩 에그타르트의 특징은 한 번 씹으면 곧바로 계란 향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안에 들어가는 커스터드에 계란 비율이 높다는 점이다. 홍콩에서는 에그타르트를 단탓(蛋挞)이라고 부르는데 단(蛋)은 계란을, 탓(挞)은 타르트를 표현하기 위해 음만 따온 글자이다.

에그타르트

    칵테일번(雞尾包)은 뽀로바오와 더불어 홍콩을 대표하는 빵이며 약간은 맛이 자극적이라서 아이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다고 한다. 가이메이빠오(雞尾包; 계미포)라고 하며 가이메이(雞尾)는 닭의 꼬리를, 빠오(包)는 빵을 뜻한다. 제빵사가 이 빵을 처음 만들 때, 빵 안에 들어갈 속을 코코넛을 비롯한 여러 가지 재료를 섞어가며 만들었다고 하는데, 제조하는 과정이 여러 가지 주류를 섞어서 만드는 칵테일과 비슷하다고 하여 칵테일 번(Cocktail Bun)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홍콩 사람들은 Cocktail(Chicken's tail) Bun(Bread)을 직역하여 가이메이빠오(雞尾包)라고 부른다. 빵 안의 속은 코코넛이 많이 들어있어 코코넛 향이 풍부하게 났으며 달면서 짠 게 특징이었다.

칵테일 번

    "내가 재미있는 거 말해줄까?" 빵을 거의 다 먹어갈 때쯤, 비비안이 내게 말을 걸었다.

    "뭔데?"

    "침사추이에 있는 홍콩 우주박물관 있잖아. 우리 전에 가봤는데 기억 나?"

    "응 기억나지. 반구 모양 건물 말하는 거 맞지?"

    "응 맞아. 그 건물이 꼭 뽀로바오처럼 생긴 것 같지 않아?"

    "생각해보니까 그렇네."

    "그치. 그래서 홍콩 사람들은 그 박물관을 "뽀로바오"라고 불러." 비비안은 웃으며 내게 말했다.

    "그렇구나. 재미있네. 나도 앞으로 그 박물관, 뽀로바오라고 부를게."

뽀로바오와 닮은 홍콩우주박물관. 사진출처: http://museu.ms/museum/details/16335/hong-kong-space-museum


이전 06화 홍콩 완탕면의 세 가지 비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