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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슬욱 Jan 31. 2020

설에 한 해의 안녕을 기원하다

수선화

    "이거 뭐야? 양파인가?" 외출 뒤 집으로 돌아오니 의문의 구근이 거실에 놓여 있었다. 동그란 모양에 크기도 비슷해서 꼭 양파 같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양파와는 다르게 고동색 빛깔의 흙이 표면에 잔뜩 묻어있었고 곳곳에 초록색 싹이 조금씩 나오기 시작하는 것도 보였다. 양파가 아닐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식물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는 나로서는 이 의문의 식물을 "양파"로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너 수선화 처음 보는구나? 이거 양파 아니야! 수선화야. 설날에 홍콩 사람들이 엄청 많이 키우는 식물!" 비비안이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수선화를 처음 본 나는 첫 만남부터 수선화에게 양파가 아니냐고 물어보는 실례를 범하고 말았다.

    "중국 문화에서 활짝 핀 꽃은 복, 재물을 상징해. 홍콩 사람들도 설 당일에 활짝 핀 꽃을 집에 놓으면 한 해 동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어. 그래서 사람들은 설 연휴가 다가오면, 설날에 꽃이 필 수 있도록 시기를 맞춰 난화, 백합, 복숭아꽃 등 다양한 식물을 집에서 키우는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게 수선화야." 비비안이 말했다.

    설의 수선화는 꼭 수경 재배를 한다. 보통 개화 후 관상용으로 식탁이나 책상 위에 올려놓는데, 흙에서 키우면 크기가 너무 커져 미적으로 좋지 않고, 관리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수경 재배를 하더라도 수선화는 상당히 잘 크기 때문에, 가만히 놔두면 길이가 너무 길어져 예쁘지 않다. 따라서, 재배한 지 열흘 정도가 지났을 때, 수선화의 성장을 조절하는 특별한 가루를 물에 타서 줘야 한다. 가루가 녹은 물을 섭취한 수선화는 성장이 저해되어, 싹이 약 10cm~12cm 정도로 관상에 적당한 길이로 성장하게 된다. 가루를 탄다고 해서 꽃의 숫자가 줄어들거나 크기가 작아지지는 않고 싹의 길이만 짧아지니, "마법의 가루"인 셈이다.

수선화의 성장을 저해시키는 "마법의 가루"를 탄 물을 주는 모습 (좌), "마법의 가루" 포장지 (우).

    수선화는 특별한 관리가 필요한 꽃이 아니라 키우기가 매우 수월하다. 매일 몇 가지의 과제(?)만 수행하면 된다. 구근 표면을 깨끗한 물로 씻은 뒤 물을 갈아주는데, 물은 구근이 자작하게 잠길 정도로 주면 된다. 그다음 햇빛이 잘 드는 창가에 놓기만 하면 된다. 재배 첫날, 비비안 아버지는 흙이 묻어있던 고동 빛깔의 표면을 제거하고, 싹이 다양한 곳에서 틀 수 있도록 구근의 불필요한 부분을 잘라서 손질했다. 몇 년 전, 집에서 수선화를 재배하기 위해 "수선화 기르기 수업"을 수강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30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수선화는 부드러운 흰색 속살을 드러냈다.

    싹이 나오기 시작한 수선화는 생각보다 성장 속도가 빨랐다. 재배한 지 일주일이 지나자 싹은 손가락 길이만큼 자랐고 밑동에서 싹이 두 갈래로 나오기 시작했다. 열흘이 지나자 밑동이 유관으로 쉽게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두꺼워졌고, 싹이 세 갈래로 나오기 시작했다. 2주일이 지나자 싹은 손가락보다 길어졌고, 완두콩 모양과 비슷한 꽃봉오리가 밑동에서 올라왔다. 17일이 지나자, 싹이 6~7갈래로 나오기 시작했고 다른 꽃봉오리도 관찰되었다. 21일이 지나자 드디어 첫 수선화가 개화했다. 설의 수선화는 꼭 흰색 수선화를 기르며, 꽃잎이 하나라 간결한 홑 수선화와 잎이 두 겹 세 겹 있어 화려한 겹 수선화가 있다. 겹 수선화는 보통 두 겹짜리를 기르며, 세 겹 이상 되는 수선화는 아주 특별한 종으로, 화분 하나 당 10만 원 이상에 거래되기도 한다.

여러 갈래로 풀이 나오고 있는 모습(좌), 첫 꽃봉우리 (우).

   

 두세 송이만 개화했을 뿐인데, 생각보다 향기가 강하여 수선화 근처에 다가가기만 해도 그 향기가 나를 반겼다. 수선화 곁을 오고 갈 때마다 괜스레 꽃에 코를 들이밀고 향을 맡기도 하고, 기상하자마자 잠에서 깨기 위해, 혹은 잠자리에 들기 전 수선화 향기를 자장가 삼아 한 번씩 향기를 맡기도 했다. 설 당일이 되자, 꽤 많은 수선화가 개화를 마쳤다.

처음으로 개화한 세 송이의 수선화.

"향이 생각보다 강하네?" 내가 비비안에게 말했다.

"응, 맞아. 수선화 향 엄청 세. 키워보니까 소감이 어때?" 비비안이 내게 물었다.

"확실히 처음부터 개화할 때까지 직접 기르니까, 자연스럽게 꽃에 대한 애정이 많이 생기네. 계속 신경 쓰면서 맨날 물을 갈아주고, 닦아주고, 해가 잘 드는 자리에 놓고... 언뜻 보면 별거 아닌 것 같아도 매일, 꾸준히 하기 쉽지 않은 일이잖아. 그래서 그런지 처음 꽃이 피었을 때 너무 뿌듯했어."

"맞아. 확실히 그냥 구매하는 것보다 직접 기르는 게 나아. 꽃이 있으니까 설날 분위기가 확 사네."

"그렇지? 정서적 안정에도 좋다. 다음에는 다른 식물도 길러보자." 생명력 넘치는 수선화 꽃과 함께 한 해의 안녕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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