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화
"이거 뭐야? 양파인가?" 외출 뒤 집으로 돌아오니 의문의 구근이 거실에 놓여 있었다. 동그란 모양에 크기도 비슷해서 꼭 양파 같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양파와는 다르게 고동색 빛깔의 흙이 표면에 잔뜩 묻어있었고 곳곳에 초록색 싹이 조금씩 나오기 시작하는 것도 보였다. 양파가 아닐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식물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는 나로서는 이 의문의 식물을 "양파"로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너 수선화 처음 보는구나? 이거 양파 아니야! 수선화야. 설날에 홍콩 사람들이 엄청 많이 키우는 식물!" 비비안이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수선화를 처음 본 나는 첫 만남부터 수선화에게 양파가 아니냐고 물어보는 실례를 범하고 말았다.
"중국 문화에서 활짝 핀 꽃은 복, 재물을 상징해. 홍콩 사람들도 설 당일에 활짝 핀 꽃을 집에 놓으면 한 해 동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어. 그래서 사람들은 설 연휴가 다가오면, 설날에 꽃이 필 수 있도록 시기를 맞춰 난화, 백합, 복숭아꽃 등 다양한 식물을 집에서 키우는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게 수선화야." 비비안이 말했다.
설의 수선화는 꼭 수경 재배를 한다. 보통 개화 후 관상용으로 식탁이나 책상 위에 올려놓는데, 흙에서 키우면 크기가 너무 커져 미적으로 좋지 않고, 관리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수경 재배를 하더라도 수선화는 상당히 잘 크기 때문에, 가만히 놔두면 길이가 너무 길어져 예쁘지 않다. 따라서, 재배한 지 열흘 정도가 지났을 때, 수선화의 성장을 조절하는 특별한 가루를 물에 타서 줘야 한다. 가루가 녹은 물을 섭취한 수선화는 성장이 저해되어, 싹이 약 10cm~12cm 정도로 관상에 적당한 길이로 성장하게 된다. 가루를 탄다고 해서 꽃의 숫자가 줄어들거나 크기가 작아지지는 않고 싹의 길이만 짧아지니, "마법의 가루"인 셈이다.
수선화는 특별한 관리가 필요한 꽃이 아니라 키우기가 매우 수월하다. 매일 몇 가지의 과제(?)만 수행하면 된다. 구근 표면을 깨끗한 물로 씻은 뒤 물을 갈아주는데, 물은 구근이 자작하게 잠길 정도로 주면 된다. 그다음 햇빛이 잘 드는 창가에 놓기만 하면 된다. 재배 첫날, 비비안 아버지는 흙이 묻어있던 고동 빛깔의 표면을 제거하고, 싹이 다양한 곳에서 틀 수 있도록 구근의 불필요한 부분을 잘라서 손질했다. 몇 년 전, 집에서 수선화를 재배하기 위해 "수선화 기르기 수업"을 수강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30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수선화는 부드러운 흰색 속살을 드러냈다.
싹이 나오기 시작한 수선화는 생각보다 성장 속도가 빨랐다. 재배한 지 일주일이 지나자 싹은 손가락 길이만큼 자랐고 밑동에서 싹이 두 갈래로 나오기 시작했다. 열흘이 지나자 밑동이 유관으로 쉽게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두꺼워졌고, 싹이 세 갈래로 나오기 시작했다. 2주일이 지나자 싹은 손가락보다 길어졌고, 완두콩 모양과 비슷한 꽃봉오리가 밑동에서 올라왔다. 17일이 지나자, 싹이 6~7갈래로 나오기 시작했고 다른 꽃봉오리도 관찰되었다. 21일이 지나자 드디어 첫 수선화가 개화했다. 설의 수선화는 꼭 흰색 수선화를 기르며, 꽃잎이 하나라 간결한 홑 수선화와 잎이 두 겹 세 겹 있어 화려한 겹 수선화가 있다. 겹 수선화는 보통 두 겹짜리를 기르며, 세 겹 이상 되는 수선화는 아주 특별한 종으로, 화분 하나 당 10만 원 이상에 거래되기도 한다.
두세 송이만 개화했을 뿐인데, 생각보다 향기가 강하여 수선화 근처에 다가가기만 해도 그 향기가 나를 반겼다. 수선화 곁을 오고 갈 때마다 괜스레 꽃에 코를 들이밀고 향을 맡기도 하고, 기상하자마자 잠에서 깨기 위해, 혹은 잠자리에 들기 전 수선화 향기를 자장가 삼아 한 번씩 향기를 맡기도 했다. 설 당일이 되자, 꽤 많은 수선화가 개화를 마쳤다.
"향이 생각보다 강하네?" 내가 비비안에게 말했다.
"응, 맞아. 수선화 향 엄청 세. 키워보니까 소감이 어때?" 비비안이 내게 물었다.
"확실히 처음부터 개화할 때까지 직접 기르니까, 자연스럽게 꽃에 대한 애정이 많이 생기네. 계속 신경 쓰면서 맨날 물을 갈아주고, 닦아주고, 해가 잘 드는 자리에 놓고... 언뜻 보면 별거 아닌 것 같아도 매일, 꾸준히 하기 쉽지 않은 일이잖아. 그래서 그런지 처음 꽃이 피었을 때 너무 뿌듯했어."
"맞아. 확실히 그냥 구매하는 것보다 직접 기르는 게 나아. 꽃이 있으니까 설날 분위기가 확 사네."
"그렇지? 정서적 안정에도 좋다. 다음에는 다른 식물도 길러보자." 생명력 넘치는 수선화 꽃과 함께 한 해의 안녕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