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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슬욱 Feb 12. 2021

온 도시가 빨강으로

홍콩의 설 문화

    홍콩김서방은 일 년 전, 홍콩에서 비비안의 가족들과 설을 보냈었다.

"홍콩 사람들은 추석보다 설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내가 비비안에게 물었다. 

"맞아. 사실 두 명절 다 중요하긴 한데, 설을 조금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 비비안이 대답했다.

"그래? 신기하다. 한국에서는 설날이랑 추석 둘 다 비슷하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홍콩 사람들이 설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을까?"

"설은 아무래도 새로운 해의 시작을 알리는 명절이라 그런 것 같아. 또, 새로운 시작을 기점으로 운이 바뀐다고 믿어. 그래서 사람들은 유명한 절에 가서 좋은 운을 받게 해달라고 기원하곤 해. 작년에 운이 안 좋았다면, 올해는 좀 좋게 해달라고 빌고 작년에 운이 좋았다면, 올해도 계속 좋게 해달라고 비는 식이지." 비비안이 말했다. 우리도 집 근처에 있는 체공절 (Che Kung Temple)에 가서 향을 올리고 바람개비를 돌리며 소원을 빌고 왔다. 체공이라는 인물을 모시고 있는 이 절은, 바람개비를 돌리며 소원을 비는 풍습으로 유명하여 설날이 되면 각계 유명 인사들이 방문하여 의식을 행하고 간다. 설은 홍콩의 최대 명절이라 그런지, 설과 관련된 문화가 굉장히 많았다. 그중 이번 화에서는 빨간색과 관련된 설 문화를 소개해 드리고자 한다.

    중화권에서 빨간색은 좋은 색이기 때문에 빨간색 속옷을 새로 사 입고 새해를 맞이하면 길운이 들어온다고 생각한다. 설이 다가오자 홍콩 쇼핑몰 안에 있는 속옷 가게들은 경쟁하듯 빨간색 속옷을 가게 앞 가장 잘 보이는 진열대에 갖다 놓고 판매에 열중했다. 눈에 잘 띄는 빨간색 속옷이 가게 앞에 떡하니 진열되어 있어서 약간은 민망한 기분도 들었다. 비비안이 기념 삼아 하나 구매하자는 걸, 색이 너무 강렬해 부담되어 거절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경험 삼아 한 벌 구매하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지오다노 매장 앞에 걸려있는 빨간 속옷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홍콩 사람들도 세뱃돈을 주고받는다. 특이한 점은 세뱃돈을 빨간 봉투에 넣어서 준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빨간색 바탕 위에 또 다른 길색인 금색으로 글씨가 적혀있다. 홍콩에 있는 기업들은 경쟁적으로 사람들에게 자사 이름과 로고가 박혀있는 빨간 봉투를 나눠준다. 기업 입장에서도 설은 봉투를 통해 자사를 홍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주로 직장에서 관련 산업 기업의 봉투를 받아오는 편이다. 예를 들어 패션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면 구찌, 프라다, 페레가모의 빨간 봉투를, 금융업에 종사하고 있다면 스탠다드차타드, HSB의 빨간 봉투를 받아 오는 식이다. 세뱃돈은 손윗사람이 손아랫사람에게 나누어주는 것은 우리나라와 같지만 세배를 하면 돈을 주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홍콩에서는 손아랫사람이 세뱃돈을 받으며 좋은 뜻을 지닌 네 글자를 크게 말하며 주는 사람의 행복과 안녕을 기원해야 한다. 

다양한 종류의 봉투들. 우측 사진과 같이 자신의 성이 적힌 봉투를 구매하여 세뱃돈을 주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좋은 의미를 지닌 어구를 빨간색 종이에 적어 문에 붙여놓는다. 어구는 긴 것도 있지만 사자성어가 일반적이다. 빨간색과 사자성어가 좋은 운을 부른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종이 역시 다양한 기업에서 무료로 나누어 주는 경우가 많으며, 대형 마트나 일반 소매점에서도 쉽게 구입할 수도 있다. 나와 비비안은 몽콕 역 앞에서 한 비영리 단체가 붓으로 문구를 직접 써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행사에 참여하며 종이를 받아왔다. 받아온 종이는 방 문 앞에 붙여놓았다.

방문에 붙여놓은 빨간 종이 (좌), 아파트 입구에 붙어 있는 빨간 종이 (우)
마트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다 (좌), 거리에서 사람들에게 나눠주기 전 먹물을 말리고 있다 (우)

    비비안은 홍콩에서, 나는 한국에서 지내게 된 지도 어느덧 일 년이 다 되었다. 온 도시가 빨간색으로 물든 홍콩에서 다시 설을 맞이할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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