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 키메리즘 리뷰

모호해지는 나와 타인의 경계

by realbro
XL 마이크로 키메리즘 - 리즈 바르네우 저




키메라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괴물로 사자의 머리, 염소의 몸, 뱀의 꼬리를 가집니다. 생물학적으로는 서로 다른 종류의 부분들로 구성된 개체를 의미합니다.


이 책에서 다루는 마이크로 키메리즘도 비슷합니다. '나'라는 개체는 '나의 유전자'를 가진 세포로만 구성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다른 개체의 세포가 함께 신체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다른 세포는 주로 계통상 가까운 어머니, 자녀, 형제자매, 조상 등에게서 유래했으며 적은 양이지만 각자의 신체에서 역할을 다하고 있습니다.




자기와 비(非) 자기의 구분


면역은 비(非) 자기로부터 자기를 지키는 과정이라고 배웠습니다. 내 세포가 아닌 것들을 침입자로 간주하고 내쫓거나 죽이는 과정입니다. 그렇기에 피아를 구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각자의 몸에는 미생물을 포함한 다양한 개체와 타인의 유전자를 가진 세포도 함께 살아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면역은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이루어지는 것일지 궁금합니다.


우리 몸은 하나의 DNA로 이루어진 단일 민족 사회가 아니라 다양한 민족이 어우러진 다원적인 사회 같습니다. 외부로부터 유래했지만 다원적인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을 받으면 그때부터는 면역체계로부터 공격을 받지 않게 되는 것일까요?


심지어 두 개의 유전적 프로필을 가진 사람의 사례가 소개되는데요(사라진 쌍둥이 형제 배아의 유전자를 가지는 경우), 어느 것이 본인의 유전적 정체성을 가지는지, 나아가서 어느 것이 본인의 자아를 결정하는지 저자는 의문을 제기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며 조금 과장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본인의 정체성이 유전 물질(DNA)의 유일성에서 나온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DNA는 각자의 특성 중 하나이고 두 개의 유전 프로필을 가진 사람은 독특한 특성을 가지는 것이지요.


나아가 자아와 의식에 대해 생각하면 더욱 유전적 프로필과의 관련성이 옅어진다고 봅니다. 유전자가 동일한 일란성쌍둥이도 같은 자아를 가지지 않습니다.


자아는 어디로부터 오며 도대체 어디까지가 나인지도 불분명합니다. 뇌 신경망에서 의식이 발현되는 것이라 추정하지만 뇌의 일부만 있어도 나인지, 혹은 전체가 있어야 나인지 모호합니다.


결국 자기의 구분도 모호한데 자기와 비(非) 자기의 구분이 명확하다는 가정이 이상한 생각인 것 같습니다.




암세포와 마이크로 키메라 세포


수정체가 자궁에 안착하기 위해 생각보다 충격적인 과정을 거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궁 내막을 파괴하고, 혈관과 영양을 찾아 증식하여 태반을 형성하는 영양막 세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암세포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시 바로 다음에 종양 세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암세포는 DNA의 결함으로 인해 발생한다고 하는데, 암을 보면 이러한 공격적인 증식의 속성을 지닌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그렇지 않은 암은 눈에 띄지 않아 생기는 생존자 편향 때문일까요?)


여하튼 공격성과 증식성을 지닌 다양한 암세포는 영양막 세포의 특성이 발현된 것인지, 혹은 수렴 진화처럼 우연히 비슷한 속성을 지닌 것인지 궁금합니다.


또한 암세포와 마이크로 키메라 세포의 다른 공통점도 있습니다. 혈액 또는 림프액을 통해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정착하는 "전이"입니다. (마이크로 키메라 세포와 암세포 모두 전이한다고 소개가 되는데, 이는 그들만의 특성인지 혹은 일반 세포도 전이가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지도 궁금합니다)


그리고 둘 다 면역 체계를 회피합니다. 하지만 마이크로 키메라 세포는 정착한 곳에서 적응하고 그곳의 규율을 따르는 반면, 암세포는 본인의 페이스대로 증식합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일론 머스크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