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또다른 일상으로의 초대
2026년이 시작되었다.
매번 같은 생각을 하지만, 싱가포르의 습도와 온도는 시간을 지나치게 성실하게 밀어낸다. 마치 벽에 기대어 있던 시계가 누군가의 손에 떠밀려 앞으로 넘어지듯, 하루가 하루를 재촉한다. 이곳에서는 계절이 시간을 나누지 않는다. 시간은 단지 흘러갈 뿐이다.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라지는 이유는 특별히 붙잡아 둘 만한 기억이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기억할 만한 사건이 없으면, 마음속에는 인덱스가 생기지 않는다. 그러면 기억은 한 장 한 장 넘겨지는 대신, 책을 한 움큼 쥐고 한꺼번에 넘긴 것처럼 사라진다.
사계절이 있는 나라는 적어도 네 개의 인덱스를 가진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 네 개의 표식에 시간은 잠시 멈춰 서서 자기 이름을 적어 놓는다. 하지만 이곳은 늘 덥고, 늘 습하다. 계절이 없는 대신 시간은 가속도를 얻는다. 시간 × 나이 × 환경. 그 곱셈의 결과는 생각보다 정확하다. 나는 그 계산식을 몸으로 체험하고 있다.
오늘 부고를 하나 받았다.
친한 친구의 아버지였다. 예전에 그 친구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빈소를 찾은 적이 있다. 조문객들 사이에서 우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게 충분했다. 이번에는 아버지였다.
여기에 있다는 이유로 빈소에 가지 못했다. 가지 못한다는 사실보다, 가지 못하는 데 익숙해지고 있다는 점이 더 마음에 걸렸다. 미안함은 시차처럼 뒤늦게 도착했다.
그 부채의식이 번져 나갔다. 한동안 연락하지 않고 지내던 사람들에게 새해 인사를 보냈다. 안부를 묻는다는 명목으로, 기억의 저편에 꽂혀 있던 인덱스를 하나씩 꺼내 들었다. 오래된 페이지에는 여전히 그들의 얼굴이 남아 있었다. 몇 줄의 메시지가 오가고, 짧은 근황이 덧붙여졌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나도 그들의 기억 한쪽에 박혀 있던 조각을 잠시 돌려받았다. 아주 작은 조각이었지만, 비어 있던 부분이 메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퍼즐의 마지막 조각처럼 정확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빠져 있던 자리는 더 이상 구멍이 아니었다.
이렇게 생각해 보니, 부채의식이 꼭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가 아직 서로의 인덱스 속에 남아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완전히 잊히지 않았다는, 아주 조용한 증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