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異性)을 향한, 서로를 위한
올해로 마흔 중반을 넘겼습니다. 내년이면 결혼한 지도 15년에 접어듭니다. 제가 더 조마조마했던 유치원 입학식의 딸들은, 어느덧 친구들이 전부인 나이가 되었습니다.
딸 둘의 아빠이자 남편으로 세월을 채우면서, 적지 않은 시간을 '이성(異性)의 감정'을 돌보는데 보냈습니다.
처음 세상을 마주하며 제가 기억하지 못하고 기억해야만 하는 '엄마의 품'에서, 배우지 못하고 가진 것 없던 '불쌍한' 엄마를 어떻게든 공감해야 했습니다. 덕분에 '등 따시고 배부른' 시절을 살고, 고등교육을 받고, 취업해서 밥벌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부모님 곁을 떠나 지금의 아내를 만나고, 부모님의 그때와는 다른 가정을 꾸렸습니다. 부족하지 않지만, 타인의 시선에서 늘 부족해 보이는 가정. 아내는 '막내 고등학교 졸업까지는 육아에 전념하고 싶다'는 다짐과 동시에 '경력단절여성'의 불안감을 안고 '안쓰러운 삶'을 이어 갑니다.
중학교 입학 후, 다행스럽게 '나는 누구인지'를 찾아가는 여정을 시작한 첫째 딸과 언니의 후속 편을 준비하고 있는 둘째 딸 또한 조금씩 부모와 다른 공간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건강하게 정을 떼고 행복하게 멀어지기 위해서, 저 역시 부딪히고 흔들리지만, 꾸준히 거리두기의 예습, 복습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불쌍함은 '막연한 안쓰러움'이고, 안쓰러움은 '구체적인 불쌍함'입니다.
어머니와 함께 했던 어린 시절과 결혼 전까지의 생활은 듬성듬성한 기억과 무의식, 친구, 학업, 사랑이 전부였던 '이기적인' 제 시간 속에서 흐릿하게 남아 있습니다. 동시에 아내와의 시간은 많은 것이 분명하지만, 때로는 비워내고 싶은 서로의 감정까지도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고 때론 피하고 싶었던 가여운 어머니의 세월, 이해한다며 ‘아는 척’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는 애처로운 아내의 오늘을 함께하며, 이성(異性)의 삶이자 여전히 서투른 우리의 감정을 마주하게 됩니다.
지금의 저와 멀어지고 있는 아이들도 겪게 되겠지만, 오늘보다는 서로에게 덜 안쓰러웠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평생을 함께해도 결코 동감할 수 없을지 모르는, 이성을 향한 연민, 긍휼, 미안함이 서로를 위한 사랑의 또 다른 모습이 되길 바라봅니다.
불쌍하다는 말을 썩 내켜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나와 상대를 위한 측은함과 연민을 날 것 그대로, 아프지만 바로 알 수 있게 전해주곤 합니다.
"이 두 쪽은 요를 싸고 이 세 쪽은 이불을 싸는 것이다. 손톱은 잘라서 여기에 넣는 것이고, 발톱은 이 주머니에 넣고, 이것으로는 발을 싸고, 이것으로는 손을 싸는 것이야."
수의를 딸 앞에 펼쳐 보이며 중얼거림처럼 이어지는 어머니 말씀 맨 끝은 내가 호사를 좀 부렸다, 는 것이었다.
- 신경숙 님의 '자거라, 네 슬픔아' 중에서 -
오랜만에 함께 잠을 자던 딸에게 전한 엄마의 마지막 안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