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교육의 본질을 새롭게 하는 일
'전교 1등은 꼭 1명이어야 할까요?'
'각자 잘하는 것으로도 전교 1등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학교에서 '전교 1등'이라고 하면,
의심의 여지없이 '공부 1등'을 의미합니다.
학교에서 공부는 학생의 기본 의무이자 필수불가결한 활동입니다. 전교 1등은 당연히 공부 1등이며, 공부 외에 전교 1등이 필요할까 라는 반문이 듭니다. 백번 양보하여, 필요하다 치더라도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지, 냉소적인 반응도 앞섭니다.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도 모르는 영양가 없는 농담에 불과합니다.
'전인적 인성 교육'
'성실-근면-협동'
'사회적 관계와 공동체 의식'
상투적이지만 익숙한 교훈처럼 학교는 공부 외에도 다양한 가치를 익히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학생들은 교과목뿐 아니라, 선생님과 친구들 사이에서 혹은 격동(?)의 사춘기를 거치면서, 삶의 기본기를 체득합니다. 더욱이 저와 같이 '국민학교' 시절이 아닌, '초등학교'를 경험한 지금 시대의 아이들은 각자의 고유한 개성으로 다양한 색깔의 학교를 만들어 갑니다. 다만, 아이들이 지닌 가능성의 공간만큼 '기-승-전-입시'로 결부되는 교육환경의 좁은 시야가 '전교 1등=공부 1등'이라는 고루한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중학교 1학년, 초등학교 4학년 딸들을 키우면서 주변의 아이들을 마주하면,
공부 외에 잘하는 것들은 각양각색이며 원석처럼 다듬어지지 않아서 더욱 소중한 존재로 다가옵니다.
아이들 각자가 좋아하고 즐겨하는 무언가로 다양한 '전교 1등들'이 나올 수도 있겠구나, 전교 1등이 반드시 1명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장자크 루소(1712~1778년)의 '에밀'을 만나면서, 한 명의 아이가 온전하게 성장하기 위해서 교육이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지 바로 볼 수 있었습니다. 영국의 서머힐 스쿨, 한국의 꿈틀리 인생학교, 미국의 미네르바 대학교 등 생경하고 낯설지만, 오래된 교육의 본질을 다시 세우는 학교를 만날 수 있습니다. 또한, 최근 국내의 여러 고등학교에서 IB(국제 바칼로레아) 프로그램을 시범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보기 중 적절한 것을 골라서 줄 세우는 상대평가를 탈피하고, 토론과 탐구를 바탕으로 다양한 사고를 서술하는 절대평가를 지향하는 학습과정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곳에 늘 1등은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 자리는 유일무이한 1명에게만 허락되어, 나머지 99명을 소외시키곤 합니다.
아이들 모두가 전교 1등을 경험하는 학교와 교실을 상상해 봅니다. 돌아보면, 어제의 상상이 오늘날 대부분 실현이 되었으니, 조금씩 두드려 볼만도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