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고 지는 것 말고, 그 전의 온전한 것
"현실적으로 좀 생각해 봐."
"틀린 말은 아닌데, 현실은 그렇지 않아."
사십 중반의 세월을 지나오면서, 간혹 제 꿈에 대해서 쭈뼛쭈뼛 말할 때가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사십 중반의 남성이라면, 직장에서 관리자로서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며 직원들을 이끌어야 하고, 가정에서는 아이들 교육과 노후준비를 위해서 '딴생각'을 하지 않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뜬금없이 팔자 좋게 '꿈'을 이야기하니,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마냥 위축되나 봅니다.
삼십 중반, 도심의 아파트를 떠나 시골의 주택살이를 결심할 때도
치솟는 서울집값을 무시하고 '꿈이니 이상이니'하는 치기 어린 낭만 따위에 금세 후회할 짓을 하는 거라며 손사래 치던 주변이 있었습니다.
"아빠는 이담에 크면 뭐 될 거야?"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첫째 딸아이가 불쑥 던진 날 것 그대로의 질문에 어물쩍 넘어갔지만, 정작 저 스스로도 무척이나 궁금했습니다. 이미 다 컸는데, 크면 뭐 될 거냐는 물음에 답하지 못하는 것 보니, 아직 다 큰 게 아니었구나.
'도대체 하고 싶던 게 있기는 했었나, 하고 싶은 걸 묻고 고민한 적은 있었나.'
학교 졸업하고 밥벌이하다 때 되면 결혼해서 아이 낳고 처자식 굶지 않게 살면 잘 사는 거지, 복에 겨운 소리를 한다며 다그치던 어른들의 소리가 대신 답을 해주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꿈'은 늘 '현실'의 저기 뒷구석 어딘가에 있었고,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의미인지 소모된 감정을 떠안고 다시 현실의 자리로 돌아옵니다.
그러다 문득, 어느덧 제 키만큼 자란 딸아이에게,
"딴생각 말고, 학교 졸업하고 좋은 회사 취업해서 능력 있는 남자 만나고 서울에 똘똘한 집 한 채 마련해서 남부럽지 않게 살아."라고 차마 말할 수 없는 저를 대면합니다.
언젠가 "아직은 한창 꿈꿀 나이고, 일단 꿈은 크게 꿔야 해!"라는 말에서,
왠지 꿈은 진짜 꿈일뿐이겠구나 라는 '현실적인' 생각이 제 안에 곰팡이처럼 비루하게 피어있음을 목도합니다.
끝도 없이 줄지어선 노란색 학원버스에 아이들을 실어 나르며,
4년제 대학까지 나왔으면 비전을 갖고 나만의 길을 찾아 진취적으로 나아가라며,
지금의 자리에 안주하지 말고 임원까지 도전하면서 틈틈이 재테크도 관심 갖고 공부하라며,
노인빈곤율이 세계 최고 수준이니 몸 성하면 뭐라도 좋으니 일해서 자식들한테 손 벌리지 말아야 한다며.
꿈이 현실을 이기기는 하나요?
꿈과 현실이 승부를 내야 하는 싸움인가요?
각자의 꿈이 실현됨과는 별개로, 그 꿈이 세상의 익숙함과 '현실'이라는 무력감에 소외되고 유기되지 않기를.
비록 현실은 남루하고 비천하며 거짓되더라도, 사람은 그 현실을 넘어서는 꿈같은 무엇이기를 바랍니다.
손열매 : 방금 뭐예요? 정전기 같은 건가?
어저귀 : 굳이 설명한다면 친교적 교력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살아 있는 것들이 살아 있는 것들을 돕고 싶어 하는 마음.
- 첫 여름, 완주(김금희 저, 2025) 중에서, 열매와 어저귀와 대화
주제 파악은 국어책에서만 배우고, 사람의 주제 파악은 각자의 몫으로, 각자의 몫을 완주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