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를 위한 관심이 여러 소수들에게 전해질 때
어제와 다르지 않은 하루가 지났고, 다시 1월로 새로운 반복이 시작되었습니다.
뻔한 목표와 괜한 기대보다는,
'보통의' 시간을 견디며, 다정하지 않은 현실에서 나를 지키기 위한 '무던한' 믿음 하나를 챙기려고 합니다.
2026년의 첫 시작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던 무관심의 관심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구부러진 빨대'는 1930년대 미국의 한 발명가에 의해서 처음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발명가의 어린 딸이 높은 테이블 위의 주스를 마시려고 할 때, 주스컵에 꽂힌 빨대가 입에 닿지 않았습니다. 주스를 마시려고 빨대를 구부리면 음료가 나오지 않고, 컵을 기울이면 음료가 쏟아지는 불편이 반복됩니다. 고심 끝에, 빨대 윗부분에 주름을 만들어 구부러지는 빨대를 고안해 냅니다.
물론, 당장 구부러진 빨대를 보급하기 위해서 공장들은 생산 공정의 변경과 비용의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하지만, 한 명의 어린 자녀를 위해 시작된 구부러진 빨대는 이후,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서 생활하는 병원의 환자들에게 획기적인 병실 필수품으로 자리매김합니다. 결국, 몇몇 소수를 위한 관심이 오늘날 다수가 그 혜택을 누리는 선한 영향력을 만들어 냅니다.
1990년대 농구대잔치 시절, 대학팀들의 농구 돌풍이 시작됩니다. 특히, 연세대 농구팀은 서장훈, 문경은, 우지원, 이상민 선수들이 주축이 되어 우승까지 거머쥡니다. 하지만 당시 영광의 선수들 뒤에, 주목받던 신인 박승일 선수는 늘 벤치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냉혹한 스포츠 생태계의 숙명이지만, 주전선수로 활약하지 못하면 도태되는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박승일 선수는 연세대 농구팀의 환희의 순간과는 무관한 듯 졸업 후 실업팀으로 자리를 옮기지만, 주전의 자리는 여전히 소원합니다. 결국 스스로 농구코트를 떠나 실업팀에서 직장 생활을 이어가다, 농구 지도자를 위해 미국 유학길에 오릅니다. 이후, 국내 최연소 농구코치로 선임되어 제2의 농구인생을 막 시작할 무렵, 안타깝게도 '루게릭병' 진단을 받게 됩니다.
운동선수로, 운동신경세포가 점차 퇴행하는 루게릭병을 앓게 된 것은 '사망선고'와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22년간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희귀 질환을 앓고 있거나 앓게 될지 모르는 소수의 환자들을 위한 전문요양병원 설립을 추진합니다. 몸도 성치 않은 상황에서 그 힘든 일을 왜 네가 해야 하느냐는 가족들의 만류에, 박승일 선수는 말했습니다.
"내가 시작해 놓으면, 이 일은 누군가 반드시 이룰 거야."
'희망'이란 단어는 부정할 수 없는 긍정의 표현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희망'이 던지는 의미에서 허탈한 이질감이 느껴지곤 합니다.
희망을 말할 때마다, 있지도 않은 절망을 만들어 내야 할 것만 같습니다.
혹은 막연한 희망 앞에서, 누구나 겪는 일상의 고단함이 나와는 무관했으면 하는, 완전무결한 허황된 삶을 쫓게 되곤 합니다.
어쩌면 나에게 닥친 고난이 내 것임을 순응할 때,
오늘을 부정하지 않고 반복의 일상을 살아 내며, 겉만 번지르르한 희망에 잠식되지 않은 겸양한 자신을 마주하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연말연시가 되면 '독자에게 위로와 희망을 줄 수 있는 글'을 써달라는 원고 청탁을 받곤 한다.
답장을 쓴다.
"절망을 밀어낼 희망과 위로를 말할 자신이 없어 사양합니다. 너른 양해 바랍니다."
희망이 없어도, 누구나 자기 삶의 제약과 한계를 안고 또 한 해를 살아가야 한다.
-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2022, 김영민 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