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의 참사(慘史)

비극은 사건(事)일까, 기억(史)일까

by 앓아야 안다

"아무 일이 없었던 그때의 일상처럼 무뎌질까 봐, 그게 제일 두려워요."


누구든 잊고 싶거나 혹은 잊고 싶지 않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 아픔은 비교의 대상도 아니며, 우위를 가리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조악한 세상은 알량한 '숫자'로 아픔의 정도를 판단하거나 재단하기도 합니다.


고인이 되신 박완서 작가는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참척의 고통을, 무심한 세상과 절대자에게 절절하게 호소했습니다. 자식을 잃은 부모는 자식을 빼앗아 간 무언가에게 무엇이든 '저지를'지 모릅니다. 내 자식을 잃은 것만큼 인류의 가장 큰 비극과 참사는 없기 때문입니다.





잊을만하면, 아니 결코 잊을 수 없는 아이들의 참사는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납득하기 어려운 아이들의 비극은 사건(事)이 아닌 기억(史)이기 때문입니다.


참사로 인한 아이들과 유가족은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는 원초적 절망 속을 헤매고 있지만,

참사를 일으킨 가해의 영역은 '유야무야' 휘발되고 태연하게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그럴 때마다, 광기 어린 개탄스러운 감정을 도무지 글이나 말로는 드러내기 어려운 심정입니다.


따라서, 참사는 끊임없이 쓰고 남기며, 잊지 않고, 잃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기억했으면 합니다.

지금도 가정, 학교, 사회의 무관심 속에 스스로 생을 마감하거나 극단의 고립을 버텨내는 또 다른 참사를 겪는 아이들이 존재합니다.





일상을 유지하고 회복하는 일.

참사가 지나간 자리에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가장 어려운 일이자, 떠난 이에게 미안함을 놓지 못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미약하지만, 그들을 위한 우리의 양심의 소임은 참사의 '참사(史)'를 기록하고 꾸준히 꺼내어 보는 일임을 자각합니다.


때로는 일 년보다 무거운 하루를 지나며, 투덜거리는 일상을 소모해 버리는 저를 마주합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일상이 온전하게, 정확하진 않지만 무던하게도 지극히 평범했던,

어렴풋이 언젠가 그때의 일상이 되길 간절히 바라고 있을지 모릅니다.


"나도 너랑 같아."
- 영화 '너와 나' 중에서 -
"때론 텅 빈 페이지가 가장 많은 가능성을 선사하죠."
- 영화 '패터슨' 중에서 -



상실 이후의 일상을 살아내고 지난한 과정을 견디기 위해서,

저도 당신과 다르지 않게, 그때의 일상을 다시, 새롭게 남기고 싶습니다.


무심한 일상을 살아내는 패터슨이 시로 숨을 쉬는 하루
다시 돌아오지 못했지만, 어쩌면 다시 만날지도 모르는, 너와 나





19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 붕괴사고로 등교 중인 무학여고 학생들이,

1999년 06월 30일, 씨랜드 청소년 수련원 화재로 소망유치원의 아동들이,

1999년 10월 30일, 인천 호프집 화재로 중고등학교 동아리 학생들이,

2000년 07월 14일, 부산부일외고 수학여행 버스사고로 같은 반 친구들이,

2014년 04월 16일, 세월호 침몰로 수학여행길에 오른 단원고 2학년 친구들이,

그리고 제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참사와 비극의 희생자들이,


가족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아득하지만, 꾸준히 쓰고 채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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