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거나 떠나갈 곳을 만들어 주는 일

잃어버린 고향

by 앓아야 안다

어린 시절 명절이 되면, 서울에서 나고 자란 저는 고향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시골 할머니 댁에 가기 위해서 분주했던 친구들은 귀성길을 향했지만,

일찍이 돌아가신 친가와 외가 조부모님들의 부재로, 저는 '귀성길과 귀경길'의 의미조차 헷갈리곤 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지 가족들과 시끌벅적한 여느 집의 명절과 달리,

친구들이 떠난 집 앞 골목 그리고 친척들과 관계가 소원한 우리집의 내력(?)으로 일상보다 조용한 명절을 지나곤 했습니다. 차례상을 준비하시는 어머니에게만 늘 어울리지 않은 분주함이 느껴졌습니다.





삼십 중반의 나이에 5살, 2살 딸들과 서울을 떠나 강화도로 이사를 결심했을 때,

아이들에게 고향을 만들어 주고 싶었습니다. 주민등록증에 적힌 행정구역이 아닌 귀성길 같은 고향.

비단 명절 같은 행사가 아니라도, 쉼이 필요할 때, 오롯이 나의 시간이 필요할 때 돌아갈 곳, 그런 공간을 마련해 주고 싶었습니다. 떠나더라도, 돌아올 수 있는 곳.


어떤 아이들과 청년들은 내가 살고 있는 곳이 '떠나야 하는 곳'이기도 하고,

어떤 아이들과 청년들은 내가 살고 있는 곳이 '버텨야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떠나더라도 돌아올 곳이 있으면 좋겠고,

버티더라도 떠나갈 곳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농어촌 혹은 지방의 아이들은 '인서울'에 입성해야,

다시 말해서 나고 자란 고향을 떠나야 학교와 동네 주변에 자랑스러운 현수막이 내걸립니다.


반대로, 제가 서울을 떠나 지방으로 이동한 것은 '대체 왜?'라는 반응이 앞섭니다.

대한민국의 성공지표라 할 수 있는 '부동산과 교육'을 스스로 포기한 것과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중요하다고 떠들어대는 무언가를 스스로 포기하고, 무모하고 치기 어린 선택을 한 저에게도

'돌아오거나 떠나갈 곳'이 필요했고, 저를 닮은 아이들도 어쩌면 저와 비슷한 길에 접어들지 몰라서 '돌아오고 떠나갈 곳'을 만들어 주려고 합니다.





"언제까지 평생 피해 다닐 것이여?
"니는 정면을 안 봐."

- 영화 '변산' 중에서 -


고향.jpg 촌스러운 고향을 버리고 서울로 향하고 싶지만, 다시 또


평생 피해.jpg 나 자신을 피해서 헤매며 찾으려고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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