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과 관심 사이 그리고 용기
"평균 78점이면 겨우 중간 턱걸이 한 거야, 분발해야 돼!"
"올해도 열심히 했겠지만, 큰 것 한방이 없어서 승진은 내년에 다시 한번 보자고."
"아쉽게도 귀하는 당사에서 요구하는 인재상과 달라, 모시지 못하게 되었음을 말씀드립니다."
학교와 직장에서, 1년을 마감하는 성적표를 마주하는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저마다 만족과 실망 혹은 그 사이 어딘가에 위치하겠죠.
노력하고 애쓴 만큼 괄목한 성장을 거둔 이도 있고,
최선을 다했지만 기대이하의 성적을 받아들여야 하는 이도 있습니다.
평가를 해야 하는 사람도,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사람도 모두 지난한 과정을 견디는 시기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타인과 사회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했으니까요. 그런데, 문득 고래는 칭찬을 받아서 춤을 춘 건지, 아니면 즐겁게 춤을 추다 보니 칭찬을 받은 것인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이 주변의 긍정적인 평가와 인정을 받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것이 제 일의 목표와 지향점이 될 수는 없습니다. 평가와 인정은 제 몫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의 본질보다는 겉으로 드러난 작은 일부의 외피를 보고 어쭙잖은 평가와 판단이 넘쳐나는 주변을 살아내고 있습니다. 물론 저에 대한 걱정과 호의로, 성장의 밑거름이 되는 조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조금 고집스럽고 유별난 것만 줄이면, 지금보다는 더 인정받을 텐데."
"지금 하는 것 말고 2~3년만 욕심내고 고생하면, 몇 단계는 위로 올라갈 거야."
아무리 긍정적인 평가와 인정이라 하더라도, 그 사람에 대한 관심이 먼저 아닌가?
관심이 누락된 평가와 인정은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로 치부되기 마련입니다.
비록 제가 걷고 있는 길이 흙투성이 공사 중이고 주변의 시선 또한 달갑지 않지만,
타인의 평가와 인정 따위에 주눅 들지 않는 용기가 발현되길, 스스로 다독이려고 합니다.
한 때, 빈센트 반 고흐의 모든 것을 탐닉할 때가 있었습니다.
얼마나 외로웠을까, 얼마나 괴로웠을까, 그래도 얼마나 행복했을까.
늘 부족하다고 느낀 자신의 그림이 소외된 사람들에게만은 절실한 위로가 되길 희망했던 사람.
37년의 짧은 생,
미치광이라는 주변의 시선과 단 한 점의 그림밖에 팔지 못한 부족한 인간임을 알면서도
끝까지 자신의 길을 놓지 않았던 용기.
"우리에게 시도할 용기가 없다면, 삶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니?"
세상 누구도 인정하지 않았던 고흐의 삶과 그림을 유일하게 관심과 애정으로 지켜봐 준
동생 태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