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의 주어와 목적어

용서의 주체

by 앓아야 안다

"내가 알아서 할게."

올해 중학교에 입학한 첫째 딸의 모든 대답은 획일적이며 명확합니다.

처음 사춘기 딸을 마주하는 처음 아빠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합니다.


방문은 노크 없이 감히 먼저 열 수 없으며, 고심 끝에 꺼낸 질문에 돌아오는 답변은 한결같습니다.

아침식사를 거르고 등교시간에 임박해서 일어나기를 반복하며, 늦은 시간까지 잠이 오지 않는다며 불안정한 하루를 이어갑니다. 서너 명의 친구들과의 관계에 모든 것을 쏟아붓더니, 결국 말라버린 감정이 바닥을 드러냅니다. 딸에게 다가서는 문턱은 교도소의 철문만큼 무겁고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시간 좀 지나면,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올 거야."

사춘기 자녀를 먼저 겪은 주변의 조언으로 스스로를 위로하지만, 오래가지 못합니다.

'시간 좀 지나면'이 언제가 될지 조급해집니다.





사춘기 여자 아이들의 감정과 마음은 초단위로 급변하나 봅니다.

1학기 내내, 가족만큼 소중하던 친구들 무리에서 딸아이만 혼자서 떨어져 나오게 됩니다.

딸은 그 이유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해결책은 고사하고 문제에 접근조차 할 수 없습니다.

하루, 일주일, 한 달, 곰곰이 이유를 생각해 보지만, 초초한 마음에 '내 잘못이야'로 결론을 내립니다.

결국, 상처를 입은 사람이 상처를 준 사람에게 용서를 구합니다.


"내가 부족해서, 내가 약해서 상처를 받는 게 당연하고, 이렇게 반성하고 있으니, 이쯤 되면 용서해 줘."

"도무지 난 모르겠는데, 더 이상은 힘들고 지치니, 내가 사라져 줄게."





지난하고 고된, 언제 끝날지 모르는 지금 이 시간을 버텨온 아니 버티고 있는 우리와 그들이 있습니다.


전학, 이사, 이직, 이민.

도망치듯 떠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학교폭력의 피해 학생이 그렇고,

지역개발의 피해 주민이 그렇고,

내부고발의 피해 직원이 그렇고,

사회참사의 피해 국민이 그렇습니다.


피해를 입은 사람이 피해야 하는 걸까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요?

어떻게 실마리를 풀어 갈 수 있을까요?




영화'벌새'의 중학생 은희와 한문선생 영지는

성수대교가 무너져 버린 현실에서 각자 무너지는 삶의 고민을 마주합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까. 어느 날 알 것 같다가도 정말 모르겠다.
다만, 나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 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


영화 '벌새'에서, 사과하지 않는 친구에 대한 미움과 사랑
수없이 흔들리는 은희를, 한없이 받아주는 영지


매거진의 이전글그 사람이 살았던 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