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새끼, 너하고 싶은 거 해

내 다시 살면, 울 엄니의 엄니로 태어날 거구만

by 앓아야 안다
"미숙아..."
"네가 그 꽃다운 나이에 오빠들 뒷바라지한다고 청계천에서 미싱 돌리고, 얼굴 핼쑥해져서 월급 따박따박 받아 올 때마다, 엄마 가슴이 찢어졌었어."
"너무 착한 내 딸, 마음껏 안아 주지도 못하고, 고맙단 말도 못했다, 미숙아."


소설과 영화 '82년생 김지영'에서 지영은 친정엄마의 엄마가 되어, 가여운 엄마이자 딸을 위로합니다.


자식의 입장에서 엄마는 왜 그리 사셨을까, 위로보다는 측은한 마음이 앞섭니다.

다시 태어나면 '엄마의 엄마'로 태어나고 싶은 마음.

불쌍한 울 엄니가 아닌 금 같은, 옥 같은 내 새끼, 안쓰러운 내 아가로 '엄마'를 바라봅니다.





중학교 1학년, 초등학교 4학년 딸을 키우면서

그 꽃다운 시절 나의 어머니는 어떠셨을까 생각하다, 어머니를 지금의 제 딸처럼 들여다봅니다.

처참한 전쟁을 겪고 학교도 제때 다니지 못한 채, 한 번도 따뜻하게 잡아주지 못한 손으로 공장에서, 밭에서, 식당에서 부르트고 굳고 못생겨진 내 딸의 손톱과 손가락 마디마디.


아들이자 남편 그리고 대한민국의 남성으로 살아가면서,

딸과 아내 그리고 대한민국 여성의 삶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어찌어찌 이해하는 척한다고 해도,

아이를 낳고 그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엄마'를 남성인 제가, 결코 대신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조물주가 여성에게만 절대적으로 허락한 엄마의 역할입니다.





2025년도 여느 해와 다르지 않게 저물어 갑니다.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아픔과 슬픔이 존재하고, 젠더 간 세대 간 갈등이 그렇지 않아도 팍팍한 일상을 잠식하기도 합니다. 타인에 대한 비난과 혐오, 끝이 보이지 않는 경쟁과 다툼, 거짓과 탐욕으로 점철된 관계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또 지난한 해를 견뎌내야 한다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지만 제법 소박한 엄마의 사랑을 앞에 두고 싶습니다. 며칠 남지 않은 올해의 마지막은 엄마의 엄마가 되어, 불쌍한 딸내미로 감히 당신의 삶을 보듬어 주려 합니다.


김지영 도서.jpg 아직도, 여전히 존재하는 우리의 김지영들


엄마 가슴.jpg 영화 '82년생 김지영' 중에서, 딸 지영이 친정엄마의 엄마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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