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어져야 보이는 것들
"몰라"
"별로"
"아니"
작년에 중학교 1학년이 된 딸에게 어렵게 접촉을 시도하나, 매번 돌아오는 반응입니다.
이런 상황을 너그럽게 '이해하는 척' 넘기려는 제 마음도 맥없이 흔들립니다.
어린 시절, 목소리만 들어도 불안했던 제 아버지의 기억을 걷어내고,
딸의 젖먹이 시절부터 초등학교 졸업까지 다정한 아빠의 틈이 벌어지지 않도록 메워 나갔습니다.
하지만, 중학교 입학과 동시에 걷잡을 수 없이 멀어진 딸과의 거리를 부정하며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를 속으로 삭이며, 묵직한 서운함을 딸에게 밀어냅니다.
사십 중반의 나이를 지나면서, 낯설지만 '이게 진짜 내 모습인가'라는 생경함과 대치합니다.
부모님과 선생님 말씀 잘 듣고 번듯한 직장에 들어가서, 결혼해서 아이 둘 정도 낳고 열심히 저축하여 '내집 장만'을 실현하는 것이 '대한민국 표준인증'인 양 생각했습니다. 세상이 그럴싸하게 포장해 놓은 '진열대' 같은 삶.
제 자리에서 무던하게 노력하여 이뤄냈다고 자부한 '값진 결과'가 어쩌면, 여전히 살아보지 못한 '온전한 제 삶'을 찾는 과정이며, 오십을 바라보는 지금에서야 '수단과 목적'을 구분하는 눈이 길러지고 있음을 무심히 깨닫게 됩니다.
엄연히 저와는 다른 독립된 존재로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
부모로서 소임은 거창하지 않은 삼시 세끼를 챙기며, 조금씩 멀어지는 관계의 거리 두기임을 '굳게' 다짐합니다.
호환마마보다 무섭다는 중학교 2학년이 될 딸은 여전히 어떻게 하면 세상에서 가장 투박하고 퉁명스러운 표정과 어투로 반응할지 고심하며 대답할 겁니다.
"몰라"
"별로"
"아니"
"내가 알아서 할게."
부모와 멀어지며 스스로 살아갈 아이들이,
오만한 어른과 교묘한 세상이 정해놓은 길을 되든 안 되든 무작정 거부할 수 있는 배짱과 오기 혹은 '깡다구'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동시에 사춘기 딸도 사십춘기 아빠에게 '진짜 아빠 인생'을 사시라는 메시지를 바등거리는 몸놀림으로 전하고, 저 또한 그에 화답합니다.
"아빠도 알아서 할게."
"자전거를 살 거예요."
"보조바퀴 없는 걸로요."
"이미 탈 줄 알거든요."
- 영화 '와즈다(2014)' 중, 여자는 자전거를 탈 수 없는 나라에서 '와즈다'의 세상 밖 용기
돌아가신 은사님께서, 생전에 저에게 누누이 하신 말씀이 떠오릅니다.
"졸업 후 사회생활하면서 여러 사람들 만날 텐데, 대학교 학번 따위는 먼저 물어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제 시선에 매몰되지 않고 세상을 마주하는 태도와 사람에 대한 겸허한 마음을 잃지 않는 것.
사십춘기를 지나는 제가 사춘기의 성장통을 겪는 딸과, 멀어지지만 놓치고 싶지 않은 '와즈다의 자전거'입니다.
** 글을 남긴 후 알게된 이야기가 있습니다.
니체는 '인간의 정신은 낙타의 정신에서 사자의 정신으로, 그리고 사자의 정신에서 아이의 정신으로 발전 해가는것'이라고 보았습니다.
누구든 자신의 삶이 다른 무언가에 의해서 잠식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