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해지면 초라해지지만,

관계의 안전거리

by 앓아야 안다

운전을 하다 보면 서로의 안전을 위해서 지켜야 할 여러 약속들이 있습니다.

신호와 제한속도 단속 카메라의 과태료 때문이 아닌 스스로의 안전을 위한 자발적 약속.

저 개인적으로 가장 준수하고 있는 운전습관이지만, 누구든 간과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는 것,

'자동차 간의 안전거리'입니다.

어쩌면 이 작은 운전습관이 도로 위의 일상을 유지하게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중학교 2학년과 초등학교 5학년, 사춘기 '심화과정'과 입문과정을' 지나는 딸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예고는 되었겠지만, 갑작스럽게 찾아온 거리 두기로 어려움을 겪었고, 겪는 중입니다.


부모의 보호가 절대적인 영유아 시기를 보내면서, '떨어질 수 없는 밀착의 거리'에 익숙해 있던 탓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다 사춘기로 멀어져야 하는, 아니 당연히 멀어질 수밖에 없는 거리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그 사이의 보폭을 맞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익숙해지면 편안할 줄 알았는데, 그 익숙함을 유지할 수 없으니 초라해집니다. 생경한 초라함과 함께 '부모와 자녀의 안전거리'를 떠올려 봅니다.


걸음마를 배우던 영유아 시기를 지나 등에 맨 책가방만 보이던 초등학교 입학 후, '도대체 쟤가 왜 저래?' 하는 10대를 거칠게 지나갑니다. 같지만 다른 20대의 성장통을 겪을 것이고, 자신을 찾아가는 30대 그리고 지금의 저와 같은 40대를 늙어가겠죠.


차량속도에 따라 차 간 안전거리가 늘어나 듯, 영유아 때는 0만큼, 사춘기의 10대는 10만큼, 성인이 되는 20대는 20만큼 안전거리를 늘려나가 봅니다. 부모의 속도는 느려지지만 아이들의 속도는 빨라지기에, 부모는 평소의 속도를 유지만 해도 아이들은 저 멀리 달아나니, 다행입니다. 서로의 안전을 위해서.





부모와 자녀 그리고 가족, 그 거리에 대해서,

어쩌면 우리는 그 거리 덕분에 조금은 '잊게 되는' 것 같습니다.

좋았던 순간이든, 아픈 기억이든.


"자식 묘를 찾는 일만큼, 힘든 일이 더 있을까?"
"늘 이렇다니까, 꼭 한 발씩 늦어."
- 영화 '걸어도 걸어도' 중에서 -
좁히려 하지만 멀어질 수밖에 없는 그 거리, 그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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